기고 - 전도몽상과 물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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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전도몽상과 물신성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5.0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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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시인
박인수시인

<반야심경>에 전도몽상(顚倒夢相)이란 말이 나온다. 전도(顚倒)는 바르게 보지 않고 뒤집어 보는 것이고 몽상(夢想)은 꿈이나 헛것을 현실이나 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즉 본디 그것이 가짜인데도 착각해서 진짜로 왜곡되게 인식한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의 뿌리가 바로 전도몽상이며 그래서 전도몽상에서 벗어나야 부처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열반(究竟涅槃))고 한다. 그런데 지금 온 나라에 전도몽상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있다. 
전도몽상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이른바 ‘사전도(四顚倒)’라고 하는데 ‘상락아정(常樂我淨)’이 바로 그것이다. ‘상(常)’은 본디 영원하지 않은데도 착각해서 영원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락(樂)’은 본디 괴로운 것인데도 착각해서 즐겁다고 여기는 것이며, ‘아(我)’는 본디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착각해서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며, ‘정(淨)’은 본디 더러운 것인데도 착각해서 깨끗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이 마르크스가 말한 ‘물신성(物神性)’과 묘하게 닮았다.  
우리는 ‘돈이 좋긴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 속엔 돈으로 필요한 물건(상품)을 넉넉히 샀거나 돈이 많아서 (큰 집이나 고급 자동차 들을 구입해서) 좀 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본질은, 돈이 좋은 게 아니라, 좋은 물건, 큰 집, 고급 자동차 들이 좋은 것이다. 좋은 물건, 큰 집, 고급 자동차 따위는 자본의 힘으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임금)를 받고 자신의 노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는 좋은 물건, 큰 집, 고급 자동차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다. 즉 노동의 가치는 상품에 가려지고(노동이 소외되고),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구입하는 도구에 불과한) 돈에 가려진다. 결국 우리는 상품의 가치는 물론이거니와 노동의 가치도 모두 돈의 가치로 환원하게 된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지적한 ‘물신성’ 개념이다. 노동의 가치가 상품에 가려지고(상품물신성), 다시 상품의 가치가 돈에 가려지는(화폐물신성) 전도몽상된, 즉 물신화된 사회.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지난 4월 21일 MBC <PD수첩>에서 방송된 ‘연예인과 갓물주’는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의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부 연예인들이 ‘갓물주(건물주)’가 되는 과정은 독점자본(재벌)이 자본을 축적하는 과정과 매우 닮았다. 건물 값의 70~80퍼센트를 대출받아 일단 건물을 산 다음 재건축으로 시가를 올린 뒤 되팔아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다. 집이 종부세 과세대상이 되면서 표적이 건물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합법적(이지만 비도덕적인) 탈세(개인 명의가 아닌 부동산 법인 명의)는 기본으로 이루어진다. 이게 주요 포털사이트와 각종 예능프로에 경쟁적으로 소개되면서 그들은 재테크의 신이 된다. 
그 결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상황으로 나타난다. 몇 십 년 동안 생계를 유지해 왔던 수단인 가게를 하루아침에 잃게 되는 실업자들이 생겨났고, 일반인들까지 덩달아 ‘갓물주’가 되기 위해 부동산 강의에 열중하게 된다. 쉼터이자 보금자리인 집이 투기 수단이 된 지는 이미 오래 전이지만 그 때는 일부 ‘투기꾼’의 행태였던 데 비해, 이젠 그 꼴이 일반화된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물신성은 완성된다. 하루빨리 전도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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