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품은 국토 최남단 제일의 법화도량, 혜관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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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 품은 국토 최남단 제일의 법화도량, 혜관정사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05.1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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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신문 30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혜관정사 (주지 도월 관효 스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도내 유일의 적멸보궁, 칠보묘탑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도내 유일의 적멸보궁, 칠보묘탑전

 

5월에 5.16도로를 넘어가는 길, 싱그러운 신록이 막 오르기 시작했다. 살랑거리는 그늘 드리운 터널 숲으로 들어서면서 창문을 내리자 맑고 명랑한 공기가 밀려들어 온다. 서귀포 보목리 혜관정사를 찾아가는 길, 한라산은 가는 길 내내 시시각각으로 높거나 낮아지고 얼굴을 달리하며 오른편으로 따라붙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한라산은 늘 그랬다. 한 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높은 데서 바라보면 더욱더 높아 보이고, 낮은 데서 보면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만큼 한없이 낮아 보인다. 앞에 있는 듯하다가 어느덧 뒤에 가 있곤 한다. 한라산만 그러던가? 만법(萬法)이 그렇지 않던가. 

적멸보궁 칠보묘탑전 내부
적멸보궁 칠보묘탑전 내부

서귀포시 동쪽 끝을 빠져나가자 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덜컥 섶섬이다. 칼호텔 어귀에서 크게 동쪽으로 돌아가면, 제지기오름이 보이고, 이곳이 자리물회로 이름난 보목리. 포구를 외면하며 교량을 건너 왼쪽으로 들어서면, 오늘의 목적지 혜관정사.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여느 절과는 다른 공간배치에 놀란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엉뚱하게 요사채가 있음직한 자리에 있고, 낯선 생김새의 목조 건축물이 절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 요사채에서 뵌 관효주지스님은 사람 좋은 미소로 차를 권했다. 차 한 잔이 끝나자마자, 더 참지 못하고 올라오면서 본 낯선 공간배치에 관한 질문을 드렸다. 스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한번 찬찬히 둘러보시라고만 답하고는 내쫓듯 기자를 밖으로 내몰았다. 

스스로 생각해보고 찾아보라는 말씀이거니싶어, 요사채를 나와 여래전신칠보묘탑이라 편액된 건물로 향했다. 한라산과 바다를 동시에 굽어보는 터에 올라앉은 웅장한 전각, 팔정도를 뜻하는 팔각지붕 네 귀퉁이에는 용 위에 올라타 사방을 굽어보는 네 분의 부처(석가여래‧약사여래‧아미타여래‧미륵여래)가 중생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 나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장엄과 숭고였다. 오월의 양명한 햇살이 트인 지붕으로 쏟아져 내리며 목조 다보탑을 비추는 구조였는데, 기둥 하나 없이 시원하게 트인 88평의 공간은 장엄했다. 트인 지붕에서 나무의 결을 타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햇살은 차라리 숭고하다고나 해야 할까.
  일찍이 경주 석굴암의 장엄함은 햇빛에서 얻은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본존불 대신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복장(腹藏)한 목조 다보탑을 앉혔을 뿐, 같은 원리로 보였다. 그러니 혜관정사는 석굴암에 대한 일종의 재해석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얼마 전 기독교계에서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토 다다오가 설계하여 교회를 지었는데, 이제 불교계에서도 건축에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것인가? 다시 한 번 그윽한 천정을 넋 놓고 올려다보다가, 문득 이 칠보묘탑전이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곳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아니던가. 형상을 모신 대웅보전보다 진신사리 모신 적멸보궁이 더 고귀하지 않은가?
  적멸보궁의 안과 밖을 살펴보고 다시 느릿느릿 요사채를 향해 걸었다. 마시다 반쯤 남겼던 차는 식어있었고, 스님은 다시 진한 색으로 뽑아낸 보이차를 권한다. 그러고 보니, 그 잠깐 사이에 스님의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초면에 따뜻한 차를 권할 때는 파안(破顔)의 미소에 관후(寬厚)했었는데, 지금 다시 뵈니 아주 옹골차 보였다. 하기야 이런 엄청난 불사를 이뤄내야 했으니, 스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도월 관효 주지스님
도월 관효 주지스님

 

-스님, 사찰을 돌아보니, 이 사찰이 앉은 자리가 바다와 한라산이 동시에 조망되는 매우 귀한 터 같아 보입니다.
-이곳 보목리는 보리수가 많은 ‘개[浦]’라는 뜻을 가진 마을로, 불교와의 인연이 매우 깊은 곳입니다. 그뿐입니까? 바로 아래에 있는 제지기오름 남사면에는 이전에 궤(바위굴)가 있었고 거기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이 오름을 ‘절오름’이라 부르다가, 나중에 한자를 차용해 사악(寺岳)이라고 표기했다고 합니다. 또 이 절에 절을 지키는 사람(절지기)이 있어서 ‘절지기오름’이라 하던 것이 조금씩 변형되어 ‘제지기오름’이라 부르게 됐다 합니다. 그러니 혜관정사가 자리한 이곳은 불교와의 인연이 아주 오래되고 깊은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찰의 내력은 어떻게 되는지요?
-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으신 분은 원혜관스님이고요, 1960년 3월에 종단에 등록했습니다, 스님은 1963년 법화종 제주교구 종무원장과 법화종전편찬위원회위원장을 역임하셨고 1968년 법화종요를 간행했습니다. 1985년 종사법계품수와 1986년 원로위원에 추대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셨습니다. 스님이 입적하신 뒤, 밑 상좌들이 사찰 운영을 맡아왔는데, (내가) 와보니 건물이 거의 무너질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때부터 불사를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죠, 벌써 15년 전 일입니다. 그러다가 집을 짓던 목수의 부도로 인해 4년 정도 공사가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습니다. 5년 전부터 다시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건데, 무엇보다 기쁜 것은 혜관대종사 탄신 100주년에 맞춰 칠보묘탑전을 낙성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큰 역사를 치루시고 이제 한고비 넘기신 것 같은데요, 앞으로 스님께서 그리는 앞으로의 혜관정사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제 이곳에 혜관대종사스님의 뜻을 이어 법화성전 여래전신칠보묘탑을 이뤘으니, 도내외 불자들에게 살아 숨 쉬는 언제나 열린 도량을 만들어 나가보려 합니다. 그 일환으로 요사채 불사를 통해 템플스테이 도량으로 가꿔나가 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템플스테이가 불교를 이해시키고 배워주는데 주력했다면, 앞으로의 템플스테이는 인문학까지 포함하는 좀 더 열리고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혜관정사는 올레코스가 지나는 곳이고, 이곳 보목리는 정말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서 제주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외지사람들까지 많이 찾는 곳입니다. 가령 외지사람들이 제주로 휴가를 온다면, 이곳 템플스테이에서 며칠 머물며 공부하며 제주를 둘러보는 일도 상당히 매력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혜관정사 전경
혜관정사 전경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치는 것을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하던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寂滅)의 공간에 앉아 장엄하게 떨어지는 햇살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지만, 무엇보다 궁금해지는 것은 눈 내린 겨울날 한밤중에 밝은 달빛이 이 다보탑에 내리는 광경이다. 상상만으로도 머릿속에서 청량한 바람이 인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시절 인연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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