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흐름과 역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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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흐름과 역류 사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5.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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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유현

송홧가루 날리는 아란야 과원에 가득했던 감귤 꽃향기도 윤사월에 접어들자 시들해지고, 맑고 화창한 봄은 저만치 가고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역병 사태로 어느 때보다 고달픈 5월에 근로자, 어린이, 어버이, 스승, 부부라는 문화적 개념을 단 하루만이라도 깊이 생각하며 사랑과 희망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사람, 누가 있겠는가.
코로나 19 이후 우리 일상은 참 많이 달라졌다. 개인의 삶도 그렇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도 많이 바뀌고 있다. 깊은 산 속의 사찰이라 다르지 않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2564년째 되는 올해 초파일 봉축행사가 윤 사월(양력 5월 30일)로 연기된 것도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허참! 이것 말고도 할 말이 많도다. 길이 막히고 끊겨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보고 싶어도 만나지 못해 흘린 고통의 눈물들이 시냇물을 이루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다. 거기엔 치솟는 파도가 물보라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상어와 도깨비가 우글댈 뿐, 망망대해는 아득하기만 하고 어느 쪽 기슭도 보이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생로병사가 거듭되는 중생들의 세상을 윤회의 바다로, 윤회의 거센 흐름을 거슬러 올라 파도가 미치지 않는 기슭을 열반에 비유한다. 
환갑 전까지만 해도 나는 어둠의 터널을 걷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사니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여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세 가지 원동력에 의지하여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 살아왔다. 
갈애에 바탕을 둔 탐욕으로 사는 뭇 삶들은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변화무상한 윤회의 바다에 표류하다가 겨우 뗏목을 발견하여 파도가 미치지 않는 저 언덕을 향해 이여차, 노櫓를 젖고 있지만 갈애와 거머쥠 때문에 멈추고 몹시 더디어서 잘 나아가지 못한다. 아직은 흔들림 없는 반야용선般若龍船에 오르지 못했음이라. 
산란하기 위해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도중에 연어의 체중은 반으로 줄고 몸엔 붉은 멍이 든다고 한다. 결기 있는 출격 대장부가 되어야만 세상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는 ‘역류도(逆流道: patisotagāmī)’를 실천할 수 있다.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과 업과 과보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청소부처럼 오염된 마음을 씻어내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갈애와 미세한 번뇌까지 몽땅 뽑아내지 못해 탐욕과 연결된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마치 잘려도 뿌리들이 손상되지 않은 나무가 수분을 공급받아 다시 자라나듯. 
갈애의 넝쿨은 여섯 문에서 일어나 여섯 대상에 스스로 달라붙어 자라다가 죽음에 이르러 그 수명이 다할 것 같지만 재생의 알음알이를 통해 그 싹을 틔우고, 또 다시 괴로움의 원천이 되어 흐르고 또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있으니 어쩌면 좋을지 화두를 붙들고 있다.
나 홀로 명상을 통해 참으로 연속적인 윤회가 허공에 핀 꽃과 같음을, 또 다섯 가지의 무더기[五蘊]로 이루어진 이 몸뚱이 안에 자기의 힘으로 상주하거나 불변하는 절대적인 실체가 없음을 지혜의 눈을 부릅뜨고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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