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첫 관문의 기도도량 - 사라사(紗羅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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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첫 관문의 기도도량 - 사라사(紗羅寺)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05.27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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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신문 30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사라사 (주지 진경 스님)
사라사 전경
사라사 전경

구도심권의 동쪽 망루격였던 사라봉(沙羅峯)을 동부두쪽에서 비탈길을 오른다. 길은 좁고 가파르다. 내려오는 차와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제법 곤혹스러울 정도의 외길이었다. 길 왼쪽으로 바다가 펼쳐져있고, 발아래로는 100년 가까이 제주 북쪽 바다를 지켰다던 산지등대는 여전히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있다.

서산사 주지 진경 스님
서산사 주지 진경 스님

‘사라’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읊조려보면 묘한 감칠맛이 난다. 사락사락, 마치 부드러운 비단 같은 것이 서로 스치며 내는 소리 같지 않은가. 몇 개의 돌계단을 천천히 걸어 오르면 왼쪽으로 좁은 문, 작고 아담한 일주문이 객을 맞아주는데 그런데 잠깐 무엇인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려다보니 사라사 (紗羅寺)라고 쓰인 고풍스런 현판이다. 사라봉이라고 할 때, 흔히 모래를 뜻하는 沙를 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비단을 뜻하는 紗라고 되어있다. 으레 사라봉에 있는 사찰이니, 당연히 모래 사(沙)를 쓰는 줄 알았던 것이다. 

사라사 일주문. 사라사라는 현판은 만농 홍정표선생의 필적이다.
사라사 일주문. 사라사라는 현판은 만농 홍정표선생의 필적이다.

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당한 수준의 고풍스런 예서이다. 과거 제주에서 이 정도의 예서를 써 낼만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화들짝 놀라 전서로 쓰인 낙관을 살펴보니 만농(晩農)? 만농이라면 홍정표선생, 구한말 제주 최고의 서예가였던 연농(硏農) 홍종시의 손자분이 아니신가? 그렇다면, 사라(沙羅)를 사라(紗羅)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처음 슬쩍 바꿀 줄 알았던 이는 누구일까? 여러모로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궁금해진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면 사찰 가장 높은 자리에 1996년에 세워진 원통전(圓通殿)과 그 너머에 1953년에 세워진 대웅전(大雄殿)이 나란히 북쪽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은 특이하게도 북쪽이 통유리로 되어있었다. 합장한 뒤 돌아서보니, 일망무제의 푸른 북쪽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관음보살을 등지고 여기에서 북쪽 바다를 굽어보고 있으니, 신도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여기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 어느 한 구석이 저절로 풀어지고야 말겠다. 
원통전 서쪽에는 이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은 돌로 벽면을 올렸는데, 지붕의 형태가 약간 특이했다. 그리고 좀 더 지나면 종각이 보이고, 내려가면 칠층석탑과 석등이 있는 마당이다. 비탈에 조성된 마당인지라 당연히 전망이 좋을 수밖에 없겠는데, 마침 대형여객선이 막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는 풍경이 석등 위로 걸쳐지고 있었다. 칠층석탑이나 석등은 제법 창연한 면모였는데 모양새가 범상치 않아보였다. 특히 칠층석탑은 키 큰 자작나무마냥 훤칠해서 그 앞에서 조리개를 풀었다 조이면서 셔터를 한참이나 눌러댔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선생 정도가 이 탑을 보았다면, 아마 ‘서구형의 미인’ 혹은 ‘키 큰 미인의 훤칠한 다리’ 같다고 한참 상찬했을 만한 생김새였다. 그 옆에는 석등 두 개와 콘크리트구조물 위에 커다란 물바가지처럼 생긴 화산석이 올라앉아 있었다.

원통전의 관음보살. 이곳에선 누구나 불심이 깊어질 듯하다.
원통전의 관음보살. 이곳에선 누구나 불심이 깊어질 듯하다.

 

-스님, 칠층석탑이 정말 잘 생겼습니다. 연화문까지 이렇게 정성스럽게 새기고, 제법 세월의 흔적도 좀 있습니다. 옆의 석등도 참 괜찮아 보입니다.
-잘 생긴 것 같나요? (웃음) 둘 다 신도분이 자신의 정원에 있던 것을 이리로 옮긴 겁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야겠죠. 우물 보셨나요? (아마 물바가지처럼 생긴 화산석을 말씀하시는 듯) 그게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입니다. 예전에는 이 물로 공양수 등 사찰 안 모든 일에 사용했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나오지 않아 그 기억을 잊지 않게 화산석을 올려두었습니다만. 

-우선, 사라사(紗羅寺)의 내력에 관한 말씀부터 여쭙겠습니다.
-일주문 곁에 있는 비석 두 개가 있는데 보셨습니까? 1953년 김태호 거사가 주축이 되고 금담스님의 모친 강순보살 외 여러 신도분의 불사원력이 모아져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한 대웅전·삼석전·요사채·조왕단을 건립하여 창건하였습니다. 이때 지어진 대웅전을 1977년에 다시 중수했고요. 이후 다시 금담스님의 원력으로 1996년에는 삼석전을 증개축하여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으로 개축하였습니다. 

-스님이 주석하신 뒤로 새해맞이 철야정진법회 등 기도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사라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행사나 프로그램이 있는지요?
-모든 게 다 중요하겠죠. 그런데 터가 그래서 그런지, 이곳을 찾는 많은 신도분이 백일기도 같은 기도를 위해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은 아시다시피 영주십경(瀛洲十景) 중 하나인 사봉낙조(沙峰落照)로 널리 알려진 장소입니다. 사라(紗羅)라는 이름도 바다 혹은 사라봉에 비치는 노을이 마치 비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런 경관을 활용한 프로그램 같은 것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것은 이곳이 공원지구 여서 더 이상 사찰환경을 확장하거나 하는 등 모든 행위가 제한됩니다. 하다못해 타종(打鐘)이라도 하고자 하면, 우선 민원부터 걱정해야하는 처지입니다. 저 역시 이곳의 경관가치를 잘 알고 있고 나름의 구상 역시 갖고 있습니다만, 이것저것 고려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웃음)

석등 위로 여객선이 막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석등 위로 여객선이 막 포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라사에 주석 중인 진경 주지스님은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하고 태고종 총본산인 선암사에서 계를 받았다. 약관의 나이에 출가해, 이곳 사라사에 주석한 햇수만도 20년을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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