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서역 전파의 실크로드 관문 - 테르메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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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서역 전파의 실크로드 관문 - 테르메즈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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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여행작가)
▲장건의 서역을 그린 그림
▲장건의 서역을 그린 그림

 

사마르칸트에서 테르메즈까지는 400km의 좁은 고갯길로, 7세기에 당나라 현장이 인도로 갈 때 지나갔던 길이다. 테르메즈는 중국 전한(前漢, 기원전 202년~ 서기 8년) 때 월지국(月氏國)에 속해 있었다. 장건(張騫)은 한 무제의 명령을 받고 기원전 139년경 서역으로 떠났으나 10여 년 만에 비참한 몰골로 귀국했다. 장건의 임무는 흉노에게 맞서기 위해 중앙아시아에 있는 대월지와 동맹을 맺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간에 흉노에게 사로잡힌 장건은 그 곳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내며 흉노 여인과 혼인해서 자식까지 낳았다. 가까스로 흉노를 탈출한 장건은 한혈마로 유명한 대완을 거쳐 대월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흉노에게 밀려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대월지는 한나라와 동맹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아무 소득 없이 대하(박트리아)를 거쳐 남쪽으로 돌아오던 장건은 다시 흉노에게 잡혀 고생끝에 겨우 탈출해 빈손으로 돌아왔다. 출발할 때 함께 간 100여 명의 부하 가운데 단 한 명만 장건의 처자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적달성은 실패했지만, 장건은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교역로와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중국에 알리는 공을 세웠다. 그 후 장건은 다시 서역으로 파견돼 고대의 동서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한 영웅으로 남게 된다.

▲카라 테파는 2세기에 조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동굴 수도원이다.
▲카라 테파는 2세기에 조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동굴 수도원이다.

테르메즈에서 강을 건너면 아프가니스탄의 박트리아 지방이다. 기원전 4세기에 인도로 진격하던 알렉산더대왕이 세계에서 가장 동쪽에 건설한 알렉산드리아-옥수스라는 도시가 있었던 곳이다. 또한 청색 안료로 사용되는 청금석 산지로 유명하여, 이 광석을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에 널리 수출하던 곳이다.
사마르칸트를 출발해서 먼지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큰 고개 하나를 넘어 키타브에 도착한다. 데카나바트 이후로는 완전 사막지대다. 중간중간에 강이 흐르고 오아시스 촌락들이 나타난다. 척박한 땅에서도 삶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테르메즈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고고학박물관에 들러야 한다. 이곳에는 3~4세기의 불교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테르메즈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간다라(파키스탄 페샤와르)를 거쳐 카이버 고개를 넘고 바미얀 지방을 거쳐 사마르칸트 쪽으로 올라가는 경유지로 이 부근은 불교 관련 유적지가 많으며 불교관련 유물도 많이 출토되었다. 638년경 인도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른 현장은 대당서역기 범연나국(梵衍那國) 편에서 대석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왕성 동북쪽 산의 후미진 곳에 돌로 만들어진 입불상이 있다. 높이는 140~150척이며, 금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동쪽에 사원이 있는데, 이 나라의 선왕이 세운 것이다. 또한 사원 동쪽에는 유석(鍮石-청동)으로 만들어진 입불상이 있는데, 높이가 100여 척이다. 몸을 따로 주조한 후에 그것을 모두 합하여 완성한 것이다.”

▲3세기경의 불교 사원인 페이요즈 테파(Fayoz Tepa)
▲3세기경의 불교 사원인 페이요즈 테파(Fayoz Tepa)

 

혜초도 왕오천축국전에서 이곳 범인국(犯引國)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 옛날 신라와 당나라의 구법승들이 바로 이 길을 따라 아무다리야강을 건너서 발크, 바미얀, 카불을 거쳐 카이버고개를 넘고 폐샤와르와 카슈미르를 거쳐 인도로 갔다. 
2700년의 고도인 테르메즈에는 인도 불교와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중앙아시아 불교 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파야즈테파’, ‘주르말라 대탑’, ‘카라테파’, ‘달베르진테파’ 등 여러 불교 유적이 산재해 있다. 테파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3세기경의 불교 사원인 페이요즈 테파(Fayoz Tepa)는 1989년에야 발견되어 일본의 도움으로 복원되었다. 

▲주르말라대탑
▲주르말라대탑

 

페이요즈테파는 폭이 34m, 길이가 113m이며,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각 구역은 거실, 식당, 법당으로 나누어져 있다. 규모로 보았을 때 이곳에는 20명 안팎의 승려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한다. 여기서 인상적인 유적은 1세기에 건립된 10m 높이의 탑으로 부처상이다. 1~3세기의 불교 조각도 보존되어 있는데, 그중 보리수 밑의 부처님이 두 명의 승려와 함께 있는 불상이 남아 있다. 또 카로스티(Kharoshthi)대본과 브람미(Brahmi) 대본이 새겨진 비문과, 동전과 도자기 조각도 발견되었다. 인근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다른 승원터의 기초도 발견되었다.

▲두 승려가 보위하는 부처님좌상(4세기)
▲두 승려가 보위하는 부처님좌상(4세기)

카라 테파는 페이요즈에서 남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바로 남쪽은 아무다리야강이고, 그 강 너머가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카라 테파는 아직 발굴중으로 복원이 되지 않은 모습이다. 칸칸이 작은 방들이 많아 마치 숙소를 연상시키는데, 아마도 수도승들의 명상실이었을 것이다. 
카라 테파(Kara Tepa)는 2세기에 조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동굴 수도원 중 하나이다. 지하의 방에서는 부처와 보살의 조각상, 용과 날개가 달린 사자상이 출토됐다. 그리고 지하 방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처님 벽화가 발견됐다.
주르말라대탑은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쿠샨왕조 시대에 건설된 이 대탑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조형물 중 하나이며, 테르메즈 불교의 번성과 쇠락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카라 테파는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9년 11월 우즈베키스탄 학술원 예술학연구소와 3년간 협약을 맺고 2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조사하여, 1∼3세기 쿠샨왕조 시대에 조성된 2개소의 석굴(예배당)과 함께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상건물지(승원)와 스투파(탑) 등을 확인했다.

▲테르메즈 역사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고고학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테르메즈 건립 2500주년 되던 2002년 4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테르메즈에서 출토된 2만7000여점의 고대유물과 페르시아어·아랍어로 된 1만6000여점의 고서적, 필사본, 목판인쇄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시대별로 세분화돼 있어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지역 격동의 문화 변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파야즈, 카라, 달베르진 등 불교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동서양 실크로드교류사의 세계적 권위자 가토 규조 교수(일본 오사카 민족학박물관 명예교수)의 업적을 소개하는 별실이 마련되어 있다.
▲테르메즈 역사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고고학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테르메즈 건립 2500주년 되던 2002년 4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테르메즈에서 출토된 2만7000여점의 고대유물과 페르시아어·아랍어로 된 1만6000여점의 고서적, 필사본, 목판인쇄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시대별로 세분화돼 있어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지역 격동의 문화 변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파야즈, 카라, 달베르진 등 불교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여기에는 동서양 실크로드교류사의 세계적 권위자 가토 규조 교수(일본 오사카 민족학박물관 명예교수)의 업적을 소개하는 별실이 마련되어 있다.

 

주르말라대탑은 전형적인 쿠샨양식으로 직사각형의 기단 위에 흙벽돌을 쌓아 올려 지어졌다. 원래는 8층 건물 높이인 26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이었다지만, 현재는 외탑이 벗겨지고 내탑이 외부에 드러난 상태다. 이마저도 본래 크기의 절반인 높이 13m, 둘레 14.5m의 벽돌더미만 남았다. 
주르말라대탑은 이슬람이 들어온 후 봉화대로 사용되다 버려졌고 최근에야 불탑으로 밝혀졌다. 여전히 밀밭 가운데 노출된 채로 방치돼 있어 계속 훼손되고 있다. 이렇듯 구도자들의 숭배를 받던 주르말라는 생자필멸, 존재무상의 부처님 가르침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 유적들은 인도 불교의 서방 전파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니까 불교는 간다라와 바미얀 지방으로 서쪽으로 갔다가 거기서 방향을 북쪽으로 바꿔서 테르메즈와 사마르칸트, 그리고 타쉬켄트까지 전파되었다. 또 다른 전파 루트는 간다라에서 카이버고개를 넘어 바닥샨으로 해서 파미르와 힌두쿠시 사이의 협곡을 지나가는 와칸주랑을 거쳐 타쉬쿠르간(총령진)으로 넘어간 다음, 거기서 서역남로(법현, 현장)와 서역북로(혜초)를 따라 장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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