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기자의 영주칼럼(3) - ......자리물회와 인타라망(因陀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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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기자의 영주칼럼(3) - ......자리물회와 인타라망(因陀羅)......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10 15: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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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어머님은 손이 크셨다. 인부 10여명 정도를 동원해 제법 규모 있게 농사를 지었는데, 그때면 그분들을 먹일 일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보리가 익어가는 이 철만큼은 그런 걱정이 필요 없었다. 제철 맞은 벤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손질한 벤자리 몇 마리를 큰 솥에다 고듯이 푹 끓이면, 녹색 빛 도는 노란 기름기가 둥둥 떠오른다. 미리 풀어놓은 미역 정도만 올리고, 소금 간을 하면 그만이다. 입안 가득히 기름진 맛이 돌며 실처럼 부드럽게 풀리는 살, 벤자리는 오월에 맛볼 수 있었던 최고의 계절 진미 중 진미였다. 이때 덩달아 자리돔도 제철이 된다. 

아이들도 집사람도 별로 생선을 내켜하지 않았고, 하릴없이 부산한 도시생활에서 일부러 제철 벤자리를 찾아 먹을 일도 거의 없어져버렸다. 대신 보리 익어가는 이 때쯤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리물회를 찾곤 한다. 자리물회와 부속의 찬거리들이 차려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추억 속에서의 자리물회가 즉각 소환된다. 자신이 기억하는 맛이야말로 배타적이며 절대적인(?) 맛이 표준이 되고, 품평이 이어진다. ‘수저를 꼽아 넘어가면 제대로 된 자리물회가 아니’라는 다소 격한 품평으로부터 된장 맛이 약해지고 있다는 등등. 이뿐인가? 빙초산이 없어도 난리고, 죄피[재피]가 없어도 난리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제주사람 모두는 각각의 자리물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맛이라는 것도, 실상 팔 할 이상이 ‘기억’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얼마 전 식사자리에서 서울에서 출판사를 경영하는 지인과 자리물회를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 역시 무심코 기억속의 ‘그 맛’을 소환하고야 말았다. 대충 얼마 전에 먹었던 자리물회의 맛이 내가 어릴 때 먹던 맛과 달랐다는 내용. 그러나 상대가 나름 미식을 즐긴다는 이였기에 이야기가 길어지고 말았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관광 오는 내지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초장맛이 강한 내지의 물회와 제주의 된장 맛이 강한 물회가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제주의 자리물회 맛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문화접변의 살아있는 예가 아니겠냐는 다소 장황한 변설을 마쳤다. 스스로도 변설이 만족스러웠던지 길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그런데 그이가 말끝에 붙인 말이 놀라웠다. 자리돔 자체의 맛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문득 며칠 전 서귀포 보목리까지 가서 먹은 자리물회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맛이 이상해서 내 입맛이 변했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몇 해 전부터 방어가 북쪽으로 올라가 버린 일이나 제주 근해에서 심심찮게 잡히기 시작한다는 참치, 그리고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이름 모르는 형형색색의 생선들이 시장 좌판에서 보이기 시작한지 오래이다. 심지어 맹독성으로 알려진 푸른고리문어의 등장까지. 
제주바다가 바뀌고 있다. 제주바다에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인가? 바다 속 생물 한두 개 바뀌는 것 가지고 무슨 호들갑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바다 속 환경이 바뀌면 바다 속 생물이 바뀔 것이고, 생물이 바뀌면 먹을거리가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우리네 식습관까지 달라져가기 시작할 것이다. 식습관은 일종의 문화이며, 문화가 달라지면 우리네 정체성까지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지구 단위의 거대한 그 무엇인가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화엄경에 인타라망[因陀羅網]이라는 말이 보인다. 이 그물은 한 없이 넓고 매듭마다 구슬[寶珠]이 있는데, 그 구슬들은 서로 연결되어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 연결되어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추어주는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이며, 인간세상 역시 하나의 그물코처럼 연결된 연기(緣起)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 개념을 좀 더 철학적인 언사로 바꾸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모든 존재는 상호관계에 의해서만 그 존재성을 지닌다. 그래서 상호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란 무상할 수밖에 없다. 존재의 실질이란 실상 아무런 성질도 형상도 지니지 않고 오직 연기(緣起)의 그물로 몸을 싸고 있는 공(空)인 것.”
윤회란 것도 사실 일종의 그물이며 매듭이며 고리일 것이다. 그러니 그물의 어느 한 매듭이 풀리거나 끊어지면 전체 그물이 위태로워지게 되는 것이다. 자리 혹은 자리물회라는 매듭과 제주 정체성이라는 매듭은 고작 한 매듭 사이일 뿐이다. 자리 혹은 자리물회와 우리는 서로 비추고 비추어주는 관계인 것이다. ‘시인들의 시인’이라 불리는 백석(白石)은 선우사(膳友辭)라는 시에서 이 매듭이나 연기의 그물을 아름답고 소박한 언어로 갈파했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이 그물을 가장 잘 이해했던 시인이다.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그 무슨 이야기라도 다 할 것 같다
우리들은 서로 미덥고 정답고 
그리고 서로 좋구나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바람 좋은 한 벌판에서 
물닭이 소리를 들으며 
단이슬 먹고 나이 들은 탓이다
외따른 산골에서 소리개 소리 배우며 
다람쥐 동무하고 자라난 탓이다
  
우리들은 모두 욕심이 없어 희어졌다
착하디착해서 세괃은 가시 하나 
손아귀 하나 없다
너무 정갈해서 이렇게 파리했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는 마지막 연은 그야말로 경지라 할만하다. 텅 비어버린[空], 허허롭지만 충만한 우주관을 완벽하게 드러내준다. 
시인 백석이 사랑했던 여인은 함흥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할 당시 요정에서 만난 기생, 김진형이라는 여인이었다. 시인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주고 불러주었다. 훗날 백석은 북으로 떠나버리고 그녀는 서울에 남아 성북동 대원각이라는 요정의 소유주가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96년, 그녀는 우리나라의 정재계 거물들이 드나들었던 대원각과 주변 땅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게 된다. 길상사(吉祥寺)는 이렇게 생겨난 것이다. 
백석과 자야, 법정스님과 길상사라는 매듭, 그러니 이 일 역시 연기의 그물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나저나 이 시는 혼자 쓸쓸히 밥상을 마주해야할 때, 한번 되뇌어볼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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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밖의 세상 2020-06-19 11:38:15
흰밥과 가재미와 자리물회에 막걸리를 마시고 싶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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