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라존자의 전설 깃든 영실 존자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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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라존자의 전설 깃든 영실 존자암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1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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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천 김대규 화백의 제주불교 화첩기행 [2]
글 _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존자암지는 서귀포시 하원동 산1번지에 있다. 볼래오름의 중턱이며 해발 1210고지에 해당한다. ‘존자(尊者)’란 불가(佛家)에서 석가세존의 직접 제자 중에 석가를 대신하여 불교를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제자에 한하여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존자암에 대해서는 옛 기록들이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1481) 불우(佛宇)편 : ‘존자암은 한라산 서령에 있는데 그 동에는 돌이 있어 스님이 행도하는 모양과 같으므로 속전하기를 수행동이라 한다.’ ▲이원진의 탐라지(1653) : 불우조(佛宇條) 첫머리에 ‘존자암은 예전에 한라산 영실에 있었는데 그 동(洞)에 돌이 있어 승이 행도(行道)하는 모양과 같으므로 속전하기를 수행동이라 하였다. 지금은 서쪽 산기슭[山麓] 10리쯤 밖으로 옮겼는데 곧 대정 지역이다.’ 이 밖에도 임제의 남명소승(南溟小乘, 1577),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 1601), 이형상의 남환박물(南宦博物, 1702) 등에도 존자암이 언급되어 있다.
존자암지는 1993년에 처음 발굴 조사를 했다. 발굴된 유적으로는 선방 건물터, 대웅전 건물 터, 목탑의 심초석, 국성재 제단의 유구, 부도 및 부도지, 비각지 및 담장지, 계단지, 단(壇), 배수시설 등이 있다. 유물로는 명문기와류, 평기와류, 청동 뚜껑, 벼루, 청자, 분청사기, 백자, 명문백자 등이 출토되었으며, 불구로는 사리장엄을 보존하는 구리그릇, 청동제 신장상(神將像)이 있다.
존자암지는 1996년에 제주도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에 대웅전, 국성재각(國聖齋閣) 및 선방을 복원하였고, 부도(세존사리탑, 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7호)도 다시 세웠다. 
발굴 당시에는 부도기단석은 흐트러져 있고 부도는 굴러 떨어져 있었다. 제주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도내 유일의 종 모양 사리탑이다. 8각 기단을 구축하여 그 위에 괴임돌을 놓고 탑신을 얹어 옥개석을 만들었다. 직경 23cm의 사리공(舍利孔)이 돌출되도록 만들어졌다. 옥개석과 보주는 같은 돌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옥개석과 보주를 같은 돌로 치석한 예가 없는 만큼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는 늦어도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제주도 유일의 부도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나 스님들 중에는 고려대장경 제30권 법주기(法注記)에 나오는 ‘16아라한이 각각 주처(住處)가 있었는데 6번째 발타라존자가 자기 권속 900 아라한과 더불어 탐몰라주(耽沒羅洲)에 많이 나누어 살았다.’는 구절을 인용하여 탐몰라주는 제주이며, 따라서 제주도가 우리나라 최초로 불법이 전해진 곳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발타라존자가 진짜로 제주도에 왔을까? 900인을 거느리고 왔다면 그 목적은 분명히 불법을 널리 펴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500여년 전 그렇게 많은 불자들이 와서 불법을 펼 만큼 제주도에 많은 인구가 살았어야 하는데 필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탐몰라주가 과연 제주도냐 하는 문제이다. 탐몰라주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는 불교적 우주관에서 유래된 상상의 나라이고 실제적인 지명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당시에는 탐라국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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