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성(甘肅省) 천수(天水) 맥적산석굴(麥積山石窟)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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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甘肅省) 천수(天水) 맥적산석굴(麥積山石窟)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10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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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11)
▲(사진1) 맥적산 133굴 정면 불입상과 공양자상
▲(사진1) 맥적산 133굴 정면 불입상과 공양자상

 

우리나라 관광지 주차장은 관광객들의 편의를 생각해서 그 관광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세운다. 과거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야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에 손님에게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더해져  만들어진 관행이다. 해안선을 따라 가는 올레길을 걷다 보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드는 개발 현장을 목격하곤 한다. 개인 소유의 별장인 것 같은 집이나 카페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절벽 바로 위에 턱 자리한 것이다. 제주의 집들이 해안선을 따라 옹기종기 자리한 것이야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때는 지붕이 낮아 주변 환경에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산업화가 되고 난 후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이 하나 둘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고 덩치가 점점 커져 시원하게 보이던 바다와 산을 막아버렸다. 어쩌면 해안선을 따라 낸 해안도로가 개발을 부추긴 것일지도 모른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경관이 좋은 곳에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함께 카페와 식당도 늘어났다. 아니 카페와 식당이 먼저고 관광객이 나중일 수도 있다. 물론 모처럼 해안도로로 운전하면 시야가 탁 트여 가슴이 시원하고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도로를 지금보다 50m 정도라도 바깥쪽에 만들고 그 안에 새로운 건물을 짓지 못하게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뜬금없는 제주도 주차장 타령이냐 의아할 수 있는데 맥적산석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2014년에야 등재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종묘나 석굴암은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의 가치를 직접 비교할 수 없지만 맥적산석굴이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석굴암보다 늦어도 한 참 뒤인 2014년에 등재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에는 그 국가의 문화재 정책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곧 그 국가가 그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있는가도 중요한데, 20여 년 전 중국의 경제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달라 당시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할 여력이 없었고 맥적산석굴을 찾는 관광객의 수도 지금과는 차이가 많았다.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보존되는 데는 아마 베이징 올림픽이 큰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올림픽 이후 중국을 찾는 관광객 수도 훨씬 많아졌고, 경제 규모도 이전과 비교되지 않게 커졌기 때문에 자신들이 자랑할 만한 유적과 유물 보존에도 많은 신경을 쓴다. 
1996년 처음 실크로드 답사에서 접한 맥적산석굴과의 첫 만남은 아직도 생생하다. 천수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 좁은 시골길을 한참 가다보니 차창 밖 나무들 사이로 90도로 깎아지른 신비로운 산이 멀리 보였다. 조금씩 다가가니 사진에서 보았던 잔도로 연결된 석굴들이 점점 다가왔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맥적산석굴이 눈앞에 바로 펼쳐졌다. 지금 맥적산석굴 전체 모습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과거 이 주차장이다. 90도로 깎아지른 절벽에 거미줄처럼 잔도를 만들고 굴을 판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니 그런 곳에 굴을 팔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놀라움이었고, 그 대단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갔던 일행 모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은 그 주차장이 없어졌다. 맥적산이 보이지 않는 한참 아래에 주차장을 마련해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맥적산 입구까지 전기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후 조금 더 걸어 들어 가야하는데 다른 관광지에서처럼 행상들이 양쪽에서 손님들을 부른다. 순천에 있는 송광사나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천년 넘은 은행나무로 유명한 남양주의 용문사에 가면 일주문 밖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법당까지 시내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한다. 바람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노라면 점점 더 세상과 멀어지며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진2) 맥적산 133굴 입구 안쪽과 11호 불비상
▲(사진2) 맥적산 133굴 입구 안쪽과 11호 불비상

 

불적 순례에서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목적지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시간이 잘 짜인 단체여행에서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맥적산석굴에서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걸어가야 하면 불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적지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분명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정방폭포 양 옆 절벽 위에 주차장과 서복기념관도 맥적산석굴처럼 좀 더 먼 곳에 주차장과 기념관을 만들고 그곳은 그냥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림 4) 10호 불비상 조각 내용   (번호는 이야기가 일어난 순서)
▲(그림 4) 10호 불비상 조각 내용 (번호는 이야기가 일어난 순서)

맥적산석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는 굴은 133굴(사진 1, 2)이다. 석사와 박사논문을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과 관련된 팔상도와 석씨원류에 대해 썼기 때문이다. 133굴에는 비석처럼 생긴 불비상만 18개가 있다. 그 중 제10호 조상비(사진 3)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야기를 가득 새겨 넣은 불전 비상이다. 북위 때 만들어진 이 비상은 전체 높이 156㎝로 불비상 중 큰 편에 속한다. 중앙에 상하로 불상을 조각하고 그 양쪽에 불전 부조를 배치하였다. 중앙의 불상을 중심으로 보면 전체는 세 단으로 이루어졌다. 맨 윗단은 중앙에 흔히 석가모니불과 다보불이라는 이불병좌상이 있고, 그 왼쪽에 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는 장면, 오른쪽에 아육왕이 전생에 부처님께 보시하는 장면과 나무 아래서 사유하는 장면 및 열반 장면이 묘사되었다. 가운데 단에는 도솔천에서 하생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추정되는 교각보살을 두고, 왼쪽에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정 장면 및 연등불수기 장면이, 오른쪽에는 하얀 코끼리를 타고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의 태로 들어가는 승상입태상과 항마성도상이 표현되었다. 맨 아래 단의 설법상 왼쪽에는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설법하는 장면, 오른쪽에는 문수보살과 유마거사의 이야기가 새겨졌다. 맨 하단에는 사자와 천왕이 표현되었다. 이 상을 처음 보았을 때 관심은 주변에 표현된 석가모니와 관련된 이야기들의 배치(그림 4)에 어떤 연관이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그렇고 아무리 다른 불전 비상들과 비교하여도 가운데 단의 이야기들이 성불 이전에 일어난 것이라는 것 외에 특별한 규칙이 있지는 않다. 그리고 표현 방식이나 내용은 돈황 막고굴의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굴의 불전도나 북위 때 만들어진 운강석굴의 불전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각각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고 가서 확인하면서 보면 순례길이 훨씬 흥미로워질 것이다. 모르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그만큼 사랑하게 된다.    

▶(사진3) 맥적산 133굴 불전도가 새겨진 10호 불비상
▶(사진3) 맥적산 133굴 불전도가 새겨진 10호 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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