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청신사 · 청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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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청신사 · 청신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6.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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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요즘 애완동물 대신 애완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외출 자제로 집안 머묾이 길어짐에 따라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치유하기 위해서란다. 
원예 치료에 관심이 많은 아내는 앞뜰이나 뒤뜰 가리지 않고 화초 가꾸는데 프로 솜씨다. 실내엔 작으면서 예쁜 다육식물을 많이 기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러 종의 공기정화식물도 키우고 있다.
그중 하나가 스파트필름(Spathiphyllum)이다. 오뉴월에 여덟 송이 꽃이 피었다. 마치 촛불을 켜고 하양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꽃대의 키를 약 6㎝ 정도 높인 고고한 자세로 나를 보란 듯이 순백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심스레 눈길을 건넨다. 꽃이 수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선정에 든 부처님의 등 뒤에서 코브라가 고개를 들고 일산日傘을 받쳐 든 형상과 닮았다.
어이하여 이런 모습으로 하얗게 피었을까. 그것도 여덟 송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를 알 수 없다. 하양은 빛의 합合이지만 얼핏 흰옷을 입고 팔정도를 수행하는 재가불자 또는 심우도의 하얀 소를 연상케 한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느껴지면서 마음의 심연에 잘 새겨둔 경구警句가 저절로 떠올랐다. “흰옷을 입고 감각적 욕망을 즐기지만,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며, 의심을 뛰어 넘고, 의혹을 끊고, 두려움 없음을 성취하고, 다른 법에 의지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正法]에 머무는 자(중부 M35, 56, 73, 74).”라는 정형구이다. 
경전의 주석서에서는 흐름에 든 님(예류자)와 한 번 돌아오는 님(일래자)라는  유학의 두 가지 경지를 설명하는 정형구라고 풀이하고 있고,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이런 재가불자를 ‘청신사’, ‘청신녀’로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증지부』(A1:13:6∼7)에서 으뜸가는 청신사 10명 중의 한 분으로 보시 제일의 수닷따 급고독(아나타삔디카) 장자를, 또 청신녀 10명 중의 한 분으로 다문多聞 제일의 쿳줏따라(Khujjuttarā)를 칭찬하고 계신다. 그녀는 꼬삼비의 ‘우데나’의 왕비 ‘사마와띠’의 하녀의 신분이지만, 부처님 말씀을 많이 듣고 예류자가 되어 그 가르침을 왕비와 500명의 시녀들에게 들려 준 정법의 재가 전승자이다. 
청신녀 ‘쿳줏따라’가 들어서 전해준 부처님의 말씀 112개의 경을 모은 경전이「이띠웃따까, Itivuttaka」(한역, 如是語經)이다. 이 경들에는 불교의 교학과 수행에 관계된 가르침은 실려 있지 않고, 금생의 행복이나 내생의 행복보다는 깨달음의 체득과 열반의 실현이라는 궁극적 행복에 관한 법문들이 주류를 이룬다. 인간의 평등, 성(性) 평등, 생명체의 평등, 출·재가의 평등을 담고 있어서 현대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재가불자들에게 삶의 지표가 될 것으로 보여 진다.
「금강경」에는 보살승에 굳게 나아가는 선善남자나 선善여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가 청신사와 청신녀의 의미와 같은지, 다른지 의문이 있던 차에 초기경전(A8:54)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삼보에 대한 믿음, 업과 과보에 대한 믿음과 계행을 갖춰 선정의 토대를 튼튼하게 한 이들을 선善남자, 선善여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머지않아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한 반야바라밀의 공덕 쌓기에 돌입할 것이다. 
믿음은 가장 값진 재산으로 윤회의 바다를 건너게 하는 배, 계행은 마음의 밭갈이, 자비심은 복을 담는 그릇에 비유할 수 있다. 지혜는 태양처럼 검은 소를 모두 쫓아 버리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다. 
오늘을 사는 재가불자 모두 이 넷을 구족하여 청신사, 청신녀로 변모하기를 서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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