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불만족의 본래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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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불만족의 본래면목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7.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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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여름 장마철에 접어들었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젖은 도로에서 미끄러짐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기상캐스터의 멘트(announcement)를 자주 듣게 된다. 
‘미끄러짐’을 생각하면, 미끄러운 욕실 바닥에 넘어져 타박상을 입어 고통스러웠던 느낌이 떠오른다. 그 원인을 미끄러운 바닥 탓이라고 생각하고 미끄러짐을 막기 위하여 바닥을 오톨도톨하게 만들었다.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거나 통증 속에서 울적한 채로 있느니, 차라리 일어나서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마치 화가, 음악가, 시인들이 고뇌에 빠졌을 때 오히려 훌륭한 작품을 만든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매일 겪는 이와 같은 사소한 골칫거리들과 대면하면, 어떤 이들은 우선 우리 인생이란 근본적으로 불만족스러운 것이라고 인식하고 거리두기 한다. 곁눈가리개를 씌운 말처럼 괴로움을 회피하거나 한술 더 떠 장밋빛 색안경을 쓰고 앞으로 괜찮을 거라고 낙관하기도 하고, 신앙심이 강한 이들은 초월적인 존재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고苦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는 상황에 따라 겪는 심리적, 정신적인 것들이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 싫은 것과 함께 함,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함도 유사하다. 생로병사는 실존적인 괴로움으로 그 본성이 다르다.
개개인의 업業에 따라서 개별적으로 겪는 고통이나 불만족은 괴로움 가운데 충격이 가장 크다. 고통의 질량이 다르다는 말이다. 사실 따져보면 이 몸뚱이[五蘊]이가 가장 무거운 고통의 덩어리이다.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미스터 트롯 임영웅의 ‘바램’ 노래 말의 일부이다. 내자와 함께 이 노래를 즐겨 들으며 흥얼거리기도 하는데, 이럴 때마다 눈물이 글썽해져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자아라는 틀을 짓고 ‘그 안에 들어앉은 삶(en-self-ed life)’에서는 괴로움(불만족)을 면할 길이 없다.”라는 게송偈頌이 찰나적으로 머리를 스치면서 ‘구불득고求不得苦’의 불만족을 해결하려고 과거에 헐떡였고, 지금도 헐떡이고, 또 앞으로도 헐떡거려야 하는 자화상이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어떤 형태로든 내안에 자아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면 괴로움은 그 틀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 수면 위로 드러날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오온五蘊이 조건 지어진 연이생緣已生임에도 그것이 ‘나의 것’이고, ‘나의 자아’라고 여겨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서 지금, 여기까지 걸어 온 것이 아닐까.  
‘고(苦, dukkha)’라는 성스러운 진리를 명상을 통해 알면 알수록 내안의  불만족스러운 상태를 좀 더 분명하게 보는 견처見處가 생겨났다. 불만족이 해소될 때 기쁨이 샘솟았으나 이마저 무상해서 얼마못가 역주행하고, 인연법에 의해 나타난 객진客塵에 불과함을 체득하고 있다.
나 역시 욕계의 중생이기에 감각적 쾌락의 즐김을 과감하게 놓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소욕지족의 마음가짐으로 여법如法하게 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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