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화를 볼때 주인공 역할을 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은 판사연기를 하다가 그 장면이 끝나면 또 전혀 다른 모습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카멜레온처럼 영화의 다른 장면마다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데, 어떤 때는 재벌이 되고 또 전혀 다른 걸인의 역할을 하다가 때론 멋진 배의 선장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사람은 역시 단 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다 찍은 후에는 서로 ‘고생 했다’ 라며 배우들과 함께 회식을 하며 마지막 날에는 다시 제자리로 원래인 역할인 남편, 아버지, 또는 자식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자신의 원래 진짜인가?
손주가 왔을 때는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또 자식이 오면 갑자기 아버지가 되고 또 삼촌이 된다. 그렇다면 얼굴도 똑 같고 이름도 같은 모습인데 순간순간마다 하는 역할도 다르다.
한 사람의 몸으로 여러 가지의 모습의 역할을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옷을 바꿔 입고 얼굴을 변화하며 보여 주지만 결국 그 한 사람이다.
불법에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란 부처님이 계시고 화하여 응신. 보신. 화신으로 나투신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서도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신데 눈이 천 개, 손이 천 개로써 이 세상을 다 관하시며, 나투시며 중생들을 이익되게 해 주신다.
우리의 몸 안에는 주인공인 불성이 들어 있다. 단지 보이지 않는 마음자리이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마음인 주인은 몸을 움직이며 물을 먹고 싶으면 물을 마시고 .가고 싶으면 가고 자고 싶으면 자며 몸뚱아리를 주인공이 자재로이 활용한다. 마치 자동차가 운전수의 심부름을 하며 움직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차는 심부름꾼이며 운전수는 주인이 심부름을 시킨다.
그래서 마음은 주인이 되고 몸뚱이는 시자가 되어 수행과 공부를 잘 지어간다면 그게 바로 불법이며 수행이다. 이 몸뚱아리는 깨닫기 위한 도구요 마음은 보리심을 내어 해탈의 문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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