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우수작 "인연이란 연결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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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우수작 "인연이란 연결고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7.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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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

 

결혼이라는 입재를 하다

전생에 아마 큰 은혜를 입었기에 금생에는 필연의 만남으로 연결고리는 이어졌을 것이다.
홀시아버지(당시 66세)와의 한 솥밥 인연은 꼭 30년(96세)이라는 세월 동안만 허락한 동고동락이었다. 결혼하는 날부터 외아들인 남편의 의무이며 특별한 권리 같은 것이 아버님 모시고 사는 삶이었다.
첫 출발점은 둘이서의 달콤을 꿈꾸는 신혼이 아닌 당연한 세 명으로 아버님을 책임지는 중년 아줌마처럼 그렇게 시작되었다. 
삶에 지표는 어떤 제목으로 입재를 해야 하는지를 인생에 물어도 문제만 있고 답이 안 보이는 게 흐릿한 안갯속에 서성대는 일이었다.
요즈음 며느리들은 시댁 어른들을 시월드(world)라고 칭하곤 하지만 내겐 지금도 그 단어는 낯설어 사치라는 생각이며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한가한 아줌마들이 넋두리 또는 신선놀음처럼 사치라고 생각이 멈추는 이유를 왜인지 모르겠다. 
주위에 복 밭이 적은 사람들을 보면서는 내 삶이 도둑질 당한 피해자라는 얕은 생각에 쓴웃음을 지어볼 때가 있었다.

기도만이 의지처

결혼을 하면 그 집안의 며느리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 평범한 여자들의 삶의 모습이다.
초등학생 때 현모양처를 장래희망이라고 조심스럽게 빈칸을 채웠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운 듯 볼이 빨개진다.
2남 1녀를 슬하에 두었기에 6명의 대가족이 한 집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애들을 키워야 되는 엄마의 의무, 내조를 해야 하는 아내의 의무는 공통점이지만 아버님을 시봉해야 하는 자부의 의무에 가장 큰 투자를 해야 했다.
나는 실체도 없고 며느리 자리가 가장 큰 평수를 차지해서 너른 복밭을 일구기에 몸도 마음도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삶이 이어졌다.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하루를 산다는 건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삼시 세끼 챙기는 육체의 노동은 일도 아님이다. 시집살이를 누워서 꼬리를 감는 것보다 더 힘들고 고추장 단지보다 더 맵다고 누구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올가미에 나를 가뒀다. 제주도만의 특별한 결혼문화와 제사문화 상조문화에 유독 큰 관심사인 아버님께서는 친척 집 어떤 일들도 전부를 전천후처럼 수눌음을 요구할 때마다 두 손 모아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을 의지처로 삼았다.
가문 잔치와 당일 잔치 치르고 뒷일 등으로 3일을 꼬박하면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어 긴 한숨을 내쉴 때 그 한숨 위에 관세음보살님이 앉아 계셨다.
친척 집에 상을 당했을 때 몇일장이 된다 해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을 하루같이 도와주기, 9촌까지의 제삿날을 기억해시며 음식 만들기는 물론이며 아버님 모시고 가서 새벽녘에 시께(제사) 집까지 ... 
가사노동이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효과가 보이지 않는 전체적인 삶의 양과 질이 무너지는 것이 10년이요 20년이요 30년을 한결같았음에도 내게는 늘 관세음보살님이 함께 해주셨다.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닌데 당신의 외며느리니까 당신이 살아 있으매 당신 몫까지 당연히 해내야 할 일들이라 하실 때도 관세음보살님은 내게 파이팅으로 응원해 주시곤 한다.
집안에 어른이 한번 말하면 다 해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싫은 내색은 엄두도 못 낸 일이었다. 어쩌면 고통의 순간들을 참아내니 감사한 일로 반환점이 되었다. 그 힘이 내게 메아리처럼 착한 며느리라는 호칭이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들이닥친 어떤 일도 긍정의 힘으로 척척 알아서 해내는 게 다반사가 되어 있었다. 별별 일상이 겉에서 보면 매일이 같은듯하지만 매일 속으로 들어가면 다른 일상을 어제에 오늘을 얹어 적응하는 기술이 필요로 한다.
관세음보살님의 자비행을 실천하려는 신심이 없었다면 부처님 경전에 전생 현생 미래상의 연결고리를 몰랐다면 나의 삶은 상상도 못하게 망가졌을 것이다.
제주의 여인으로 살기에는 돌멩이도 모가 생기면 안 된다. 파도에 닳고 닳아 깎이어 몽돌처럼 둥글어야 살아남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에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에 오신 관세음보살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힘은 작지만 큰 지혜를 현증가피로 분명히 일으켜 주시곤 하신다.
나의 기도의 힘은 칠흑 같은 밤 길에 광명의 빛을 밝혀 인도하게 해 주신다.
나의 기도는 나의 힘, 나의 기도는 나의 삶, 남을 위한 기도는 나의 기쁨, 남을 위한 기도는 나의 배려이다.
무재칠시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불자 중에 한 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은 나를 인도해 주셨다.
관세음보살님과의 만남은 삭막한 내 마음에 단물을 제공하는 오아시스이다.

제주의 바람처럼

하심하는 마음으로 심지를 굳히는데 눈을 세상 밖으로 향하면 자꾸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린다. 산들바람이다가 박초바람이 되고 명지바람이다가 소소리바람이 되고 솔솔바람이다가 높바람이 되어 굴곡을 만드는 요란한 삶의 여정 제주의 바람길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다 관세음보살 명호를 부르는 짧은 기도와 명상기도에 바람같이 나타나서 갈증에 시달리는 나를 축 보하며 붙잡아 주신다. 다시 일어서서 언제 그랬냐 싶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온전히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 주신다.

아름다운 회향

함께 걸어가면서 전생의 빚을 조금씩 갚아가고 있었다. 나도 삶의 무게에 지쳐 있을 때 아버님께서는 건강염려증을 심하게 앓고 계셨다.
집에 있으면 엄습해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밤낮 없이 지속되고 병원의 문턱을 밟아야만 사라지는 이상한 병이다.
낮에 다녀온 병원인데도 한밤중에도 응급실 신세를 지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다며 어린애처럼 응석을 부리면 결국 링거 한 병 꽂으면 빙그레 웃으시며 걸어 나올 수 있는 병명이 우스워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날들의 일상사가 크고 작은 소동에 부딪쳐 있을 때도 관세음보살님은 항상 나를 지켜주신다.
아버님의 하루 삼시 세끼 밥상 위에 관세음보살이 계셨고 마당에 화분 흙 한 줌에도 앉아 계시고 꽃으로 피어 환하게 웃고 계신 님의 모습에 큰 힘을 얻습니다.
아버님께서 90세가 되던 해 나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생로병사가 대체 무엇이길래 약간의 치매가 동반된 건강염려증이라는 병이 깊숙이 지병으로 뿌리를 내리며 더욱 공포로 아버님은 떨고 계셨다.
“얼마나 아프면 죽어질 건고 아이고 죽어지켜 아이고”를 얼마나 외치던지...
“관세음보살님! 우러러 합장합니다. 우리 아버님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어느 날이 되더라도 그날은 꼭 오고야 말 날이 있을 겁니다. 공양 맛있게 잘 하시고 주무시는 잠에 아미타부처님 품으로 안길 수 있도록 큰 가피를 주십시오”
천일기도 발원문의 일부분이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저의 정성을 꼭 들어 주실 것을 믿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96세가 되시는 해에 나의 기도 발원을 어여삐 여기시고 모년 모월 모시에 주무시는 낮잠에 홀연히 아미타불 품안에 안기려 떠나셨습니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시는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아버님을 아픔 없는 고통 없는 극락세계에 가시도록 응답해 주셨습니다. 님의 명호를 수백수천수만 번의 부름을 듣고 천수로써 고통 없이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아버님과의 아름다운 30년 고운 인연을 회향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49재 중 5재 아침이었는데 꿈속에 놀러 오셔서 공양을 달라고 하시며 정성껏 차린 밥상을 드신 후 멀리 떠나야 한다고 하셨지요? 정토로 떠나시려 하셨나 봅니다.
극락세계로 가신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님이 떠나신지 올해가 5년인데 이미 극락세계에서 수목 한그루 심으시고 물을 주어 꽃을 피우고 계실 테지요. 아름다운 꽃향기를 피웠을 테지요? 아버님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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