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지금 이대로가 극락정토"
상태바
봉려관스님 탄신 155주년기념 제6회 신행수기 가작 "지금 이대로가 극락정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7.22 14: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혜숙

 

올해도 어김없이 초파일 연등이 보현사 앞마당에 가득 피어납니다. 바람에 물결 출렁이듯 화려한 듯 소박한 듯 가만히 연등을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걸림이 없고 내안을 들여다 볼 여유도 생깁니다. 
오늘도 나는 법당에 있는 부처님 전에 향과 초를 올리고, 부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려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철없던 유년시절에는 친구의 권유로 기독교에 심취하여 성가대 활동과 주일학교 선생님,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는 시어머님 손에 이끌려 사월초파일에 처음 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롭게도 대웅전에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왜 이제야 왔느냐”고 저를 그윽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하고 맞아주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가 같은 것이고, 종교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진리’는 모두 똑같다는 생각으로 불교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저는 슬하에 아들을 둘 두었습니다. 자녀양육으로 정신없이 세월이 지나고, 큰 아들이 군대에 입대할 때 쯤 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관음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에 계신 돌부처님들을 뵙는 순간, 나도 모르게 환희심과 내 안의 그 어떤 열정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관음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불교문화대학을 다니면서 불교의 교리를 배우게 되었고, 해월봉사회 총무를 맡기까지 하면서 신행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합창단에 들어가서는 ‘단장’의 소임까지 맡으면서 정말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렇게 합창단장을 맡아서 활동할 무렵, 공무원이던 남편이 어느 날 건강검진을 하였는데, 담당 주치의가 재검 이야기를 했다는 말에 이상하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그 우려대로 그만 남편은 일주일 후에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급함에 마침 서울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조카에게 부탁해 부랴부랴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온갖 상상이 다 일어났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 많아서 이런 일이 있어났을까?”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온갖 부처님을 부르며 자책을 하면서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대병원 담당의사 선생님은 다행히 위암 초기라 로봇으로 수술이 가능하다고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제주에 내려와 그 다음날 관음사 새벽길을 올라가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 십번 아니 수 백번 오르던 길인데 왜 이리 멀게 느껴지던지......
주지스님이 뵙자고 해서 주지실로 갔는데 성효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고, 하던 대로 봉사 열심히 하면서 그동안 살아온 것처럼 하면 아무 탈 없이 부처님께서 보살펴 주실 것이니, 걱정 말고 수술 잘 받고 오라”는 말씀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이튿날부터 새벽기도를 가는데 일주문에 들어서면 양옆에 있는 부처님들이 새벽  이슬을 머금고 그 어느 때와 달리 인자하게 나를 반겨 주시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아 부처님께 더욱 매달리며, 기도하고 매일 서원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무사히 치료가 되어 건강을 되찾게 해주시면 더 열심히 봉사하고 선행을 베풀고, 자비행을 실천하겠노라”고 매일 부처님 전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항상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오르막을 걷고 있으며, 오르막의 끝에는 끝내 평탄한 길이 나올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술 일정이 잡혀 무사히 수술을 마치게 되었고, 남편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하며 5년이 지나서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 저는 이 말을 너무 좋아합니다. 내 몸을 이끌고 다니는 근본이 무엇인지, 그 근본이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큰 아들이 결혼을 한다고 데리고 온 며느리가,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하겠다는 말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두말없이 허락을 하였습니다. 작은 아들도 외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데 친구들이 기독교를 그렇게 전도해도 부처님 얼굴이 떠올라 기독교를 믿지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아들이 장가가서 3년 동안 애기가 없이 애태우던 중에는 성효 큰스님께서 두 번의 천도재와 기도를 해주셔서, 귀하디 귀한 손자를 얻었습니다. 이 모두가 부처님의 원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부처라고 하였던가요?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으로 우리를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님의 크나큰 원력을 저는 믿습니다. 믿다보면 느끼게 되고 느끼다 보면 깨닫게 된다는 스님의 말씀이 저를 자꾸만 절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더 이상의 슬픔도 더 이상의 기쁨도 필요치 않는 ‘있는 그대로가 최선’입니다. 연화장 세계에는 더 이상의 덧셈도 더 이상의 뺄셈도 필요치 않는 ‘지금 이대로’ 가 부처님의 극락정토입니다. 
부처님은 극락정토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만나고 신행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