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책은 첫사랑과도 같고 거듭 읽는 책은 옛사랑과도 같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봤는데, 제법 그럴 듯하다. 독서를 빗댄 말은 많은데, 내게는 여행과 매우 흡사하다. 독서와 여행은 모두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일상에서의 탈출’이며, (거기에 더해서)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별 울림이 없는 책이 있고, 다 읽고 나서 다음에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책이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행지를 다 돌아보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다 돌아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 다시 한번 가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곳이 있다.
미리 계획을 세운 다음 차례대로 읽는 독서 방식이 있고, 책을 읽다가 어느 구절에서 문득 다른 책이 떠올라 읽던 책을 잠시 접고 새 책을 펼쳐 드는 경우도 있다. 여행 또한 미리 계획을 세운 다음 순서대로 여행지를 돌아보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삘받아’ 나를 끌어당기는 곳으로 대책 없이 경로를 바꾸는 수도 있다. 앞의 경우든 뒤의 경우든, 상황과 취향에 맞게 마련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것처럼 “많이 읽어라. 그러나 많은 책을 읽지는 마라.” 그렇다. 독서든 여행이든 매번 새 책이나 새 여행지를 택하는 것보다는 이미 읽은 책을 거듭 읽거나 익숙한 곳을 계속 찾아가는 방식이 윗길임은 물론이다. 매번 새 책을 읽거나 새로운 곳을 여행한다면 많은 책과 많은 여행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있으나 대개 남는 것은 ‘인상’일 것이지만, 읽은 책을 서너 번 거듭 읽거나 이미 가 본 곳을 계속해서 찾는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문득 ‘발견’을 하게 된다. 빗대어 말하자면,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칡뿌리를 씹는 것’의 차이랄까.
여행은 여행지의 온갖 구경거리를 보거나 맛집을 기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여행지의 삶을 통해 나를 성찰하고 삶에 대해 통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서는 글쓴이의 생각을 알거나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글쓴이의 생각을 통해 내 생각을 점검하고 수정하거나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다. 글쓴이의 생각을 비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글쓴이의 생각을 비판하려면 글쓴이의 생각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글쓴이의 생각을 정확히 알려면 글쓴이의 생각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함은 물론이다.
대학시절 세미나 교재로 택해 토론하면서 ‘참 잘 된 책이다!’란 느낌을 받았던 책을 지난해 여름에 다시 읽다가 3분의 2쯤에서 덮어 버렸다. 그러고는 ‘내 책꽂이’(홀로 어디론가 떠나게 되면 아무런 고민 없이 보따리에 싸서 가져갈 만한 책만 꽂은 곳)에서 빼 버렸다. 직접 쓴 글이 아니고 번역해서 편집한 글이라고는 하나, 그의 처신과 대비되는 글을 읽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자신은 지배계급의 기득권을 조금도 놓으려 하지 않으면서 마치 훈계하듯 ‘노동하지 않는 유한계급’을 나무라는 그의 태도에 실소가 나오고 역겹기까지 했다. 그 책이 빠진 자리엔 다시 예전처럼 김수영(정확히 말하면 『김수영 전집·2-산문』)을 꽂았다. 적어도 글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은 김수영만 한 이가 없지 싶다. 김수영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제껏 숨기고 살았던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본다는 것이기도 하다. 위선에 가득 찬 자신의 내면을.
“4월 혁명 후에 나는 세 번이나 신문사로부터 졸시를 퇴짜 맞았다. 한 편은 ‘과도정권’의 사이비 혁명 행정을 야유한 것이고, 한 편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야유한 것이고, 나머지 한 편은 청탁을 받아가지고 쓴 동시인데, 이것은 이승만이를 다시 잡아오라는 내용이 아이들에게 읽히기에 온당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통과가 안 됐다. 그런데 이 동시를 각하한 H신문사는 사시로서 이기붕이까지는 욕을 해도 좋지만 이승만이는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규가 있다는 말을 그 후 어느 글쓰는 선배한테 듣고 알았다.”(『김수영 전집·2-산문』에서)
김규항 선생은 한국에서 지식인이 되려면 김수영을 읽는 것은 통과 제의라며 “온갖 책을 다 읽어도 수영을 읽지 않았다면 지식인으로 결격”이라고 했다. 김수영을 읽는다는 것은 지배질서에 저항하고 자유를 추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수영의 뜨거움은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성격처럼 가질 수 있는 일상적 뜨거움”(김규항)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책꽂이엔, 김수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