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해남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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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해남에서 온 편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9.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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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에서 온 편지 - 이지엽 (1958 ~ )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 하고 지난 설에도 안 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니 안, 쑥 한 바구리 케와 다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 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돈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이지엽 시인은 전남 해남 출신이다. 1982년『한국문학』1984년『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했다.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윗 작품은 남도사투리의 진한 정서와 진정성이 배어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설시조다. 이 시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시를 쓰기 몇 해 전 남도 답사의 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엄니도 하늘로 간 ‘애비’를 따라나섰고, 고향집도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시적 화자는 편지글 형식으로 수녀인 딸에게 노모가 삶의 애환을 전라도 사투릴 섞어 말하고 있다. 내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삶의 애환이 더욱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부모가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자식이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어찌 같으랴. 오늘도 홀로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노인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오게 한다. (오영호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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