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의 참모습 - 불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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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참모습 - 불교문화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9.16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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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t Publication Society 시리즈 - Buddhist Culture, the Cultured Buddhist

불교사상과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지난 2천5백여 년 동안 세계의 광범한 지역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삶을 인도하는 지침이 되어왔다. 그러나 재가불자로 머물면서 몸소 겪는 경험과 터득만으로는 삶에 대해 제대로 안목을 갖추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잘 균형 잡힌 인간이라는 이상에 더욱 접근하기 위해선 적어도 불법(佛法)에 있어 문화적 기초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우리의 실상을 자신과 남들에게 드러내 보인다. 사고방식과 생활양식, 도 예술 ․ 종교 ․ 도덕 ․ 의식 ․ 학문 등을 통해 드러나는 문화는 곧 우리 심성의 표출이다. 이렇게 볼 때 문화는 수단이라기보다 목표라 해야 할 것이다.
문화인은 길러진다. 영어에서 문화를 뜻하는 ‘culture’라는 단어도 ’자라다, 기르다‘는 뜻을 가진 말에서 생겨난 것이다. 불교에서 문화의 완전한 구현체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인간진화의 절정, 가능한 최고의 경지까지 성장한 사람이다. 그는 일체의 자기본위주의를, 즉 모든 탐욕과 증오와 미망을 비워냈으며 흠 없는 청정과 이기심 없는 자비행을 구현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그에게는 유혹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기심과 열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세력이든 집단적 세력이든 그는 세력을 위해 타협하지도 않는다.
이 세상에는 고귀한 인물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억지를 써서 고귀해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법에서는 도덕적 훈련과 정신적 계발에 진전이 있는 가, 그래서 ‘자아’나 그것이 내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워졌는가, 그 정도만큼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고귀함이란 인간성에 내재한 완전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펼쳐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일상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오계를 준수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탐욕과 증오를 줄여간다. 동시에 자애와 연민, 정직과 진실성, 순결과 진중함 등의 좋은 습관을 키워나간다. 건전하고 꾸준한 습관이야말로 훌륭한 인품의 기반이 되고 그런 인품의 바탕 위에서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고귀하고 문화적인 불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런 불자는 몸과 말과 마음을 올바로 닦은, 다시 말해 계행을 갖추고 품위 있고 세련되고 자비로운 인간이 되어 스스로 평화롭게, 남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법인 것이다.
자라나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좋은 일에 적극적이고 정열적이며 부지런해야 한다. 불교에는 게으름이나 무기력이 설자리가 없다. 우리는 어느 때나 법의 모든 양상을 자기 안에서 계발해내고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이렇게 성숙해지면 저절로 권리와 의무를 잘 챙길 줄 아는 문화적 사회 구성원이 될 것이다. 불교는 개개의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말을 건넨다. 대중운동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대중들’이란 개개의 남녀가 모인 집합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든 진정한 발전을 이루려면 개개인의 변화로부터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불교적 문화 배경을 가진 스리랑카 같은 경제적 개발도상국들이 안고 있는 도덕적 문제도 이런 식으로 보아야 풀린다. 진실한 재가불자는 세속적 생활 속에서도 성스러운 팔정도에 근거해서 개인적 발전을 도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법, 즉 비법(非法)에 의한 발전은 결국 개인과 사회와 국가에 재난과 고통과 괴로움을 초래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비법에 의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업을 부인하면 뿌리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사람들이 업의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드는 것은 물질적 이익에 급급하고 맹목적으로 감각적 쾌락을 탐하기 때문이며, 인간과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 불가항력의 궁극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무지로 인해 인생을 단 일회성으로 착각한 나머지, 덧없는 인생에서 본능이 끌어가는 대로 ‘한껏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고 보자’, ‘사회법만 지키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편의주의 철학을 수용하게 될 것 또한 당연하다. 하지만 금력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데 이를 보면 세간법(law)은 진정한 법(Dhamma)이라 할 수 없다. 이런 근시안적이고 잘못된 관점이야말로 끝내는 개인과 사회의 긴장을 야기하고 불안과 갈등을 유발하며, 방종 ․ 탈법 ․ 범죄를 확산시키고 만다.
 불교는 친절 ․ 연민[mettā-karunā] 같은 긍정적인 정서와, 분노 ․ 질투 같은 파괴적인 정서를 구분하여, 긍정적인 정서는 계발시키고 파괴적인 정서는 제거하도록 고무한다. 인간이란 이성과 감성을 둘 다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법을 설하실 때도 시나 우화 ․ 설화 같은 교화방편을 써서 때로는 이성에, 때로는 정서에, 때로는 상상력에 호소하고 있다. 불교문화도 정교한 교학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본생경 ․ 장로게 ․ 장로니게 같은 문학이나 철학 ․ 예술 ․ 건축 ․ 조각 등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예술은 정서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인류를 교화하는 주요 매체의 하나이다. 그림 ․ 희곡 ․ 조각 ․소설 같은 예술작품은 그 자체가 신선한 통찰력의 표출이자 다른 사람의 통찰력을 자극하게 되는 특수한 표현이란 점에서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예술가는 어떤 대상이나 경험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지나쳐버리기 쉬운 새로운 의미를 찾아냄으로써 삶에서 새로운 가치와 통찰력을 창조해낸다.
우리가 예술을 단순히 즐거움이나 감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선한 삶의 표현이며 아울러 그런 삶을 살게끔 도와주는 방편이라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들면 바로 그런 연유로 예술은 우리의 향상에 보탬이 된다. 예를 들어 삼매에 든 고요하고 평화로운 부처님 상(像)을 보면, 마음이 고양되고 심신이 솟아나며 법에 대해서도 숙연해지는 경험을 맛본다. 사실, 불법이 전해진 어느 나라에서나 미술적 표현이라면 으레 불상과 보살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불교문화는 시공을 초월한다. 2천5백 년 전 부처님 시대나 오늘날에나 늘 새롭다. 또한 그 문화는 그 자체로 구족하고 원융하며 유장하다. 불교문화는 각자 체험을 통해 확인 가능한 불변의 진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결코 진부해지는 일이 없다. 진보는 흔히 기존의 문화를 허물어뜨리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불교는 그 속성상 오히려 진보를 촉진함으로써 항상 새로움을 유지한다. 시속의 방편은 바뀔지언정 그 본질적 내용이 변하는 일은 없다.
 불교가 세계문화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중요하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합리성에 근거하고 개인적 체험으로 검증될 수 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서 그 어떤 오류도 찾아낼 수가 없다. 또 자업자득이라는 합리적 근거에 따른 개인의 향상을 전제로 하는 불교의 윤리관은 여타 윤리 체계를 뛰어넘어 일체의 도덕적 맹목성에서 벗어나 있다. 사회적으로도 불교는 어떠한 오도(誤導)도 범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미움이나 편협성을 보이는 일이 없었고 누구에게나 무량한 자비를 가르쳤다. 해탈에 이르는 문 역시 그곳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활짝 열려 있었다. 합리성과 보편적인 자비, 빛나는 고결성, 사회정의, 희망찬 원력, 그리고 자신의 노력에 의한 금생내 해탈.... 이러한 가슴 설레는 전언들이 불교가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인간의 사상과 행동을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사유하는 지성인에게 불교는 일체의 인생고로부터 벗어나는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균형 잡힌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지금 여기서 실행하기만 하면 인간 완성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자비행을 실천하는 자에게는 또 일체 중생을 포용하는 자비로운 눈을 열어주면서, 최고의 정신적 성취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향상에의 노력을 고취시켜 주었다.
사회 속에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는 불교의 위업을 대충 꼽아보기만 해도 삶이라는 예술을 공부하는 기회가 된다. 불교는 삶 전반을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그런 눈을 갖게 되면 삶의 잡다한 일들이 아무리 현혹하려 들지라도 실상을 바로 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불교 문화인은 선악을 구분하고 정사(正邪)를 판별하며, 진위(眞僞)를 꿰뚫는다. 그는 판단 재료를 능란하게 검토 평가하게 되며, 이 때 그의 불교 문화적 배경은 현명한 판단을 위한 밑바탕 구실을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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