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농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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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인이 들려주는 내 마음을 젖게 하는 시 "농무"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9.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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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 - 신경림 (1936 ~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충북 충주 출생인 신경림 시인은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했다. 동국대 교수를 지냈다. 윗 작품은 그의 첫 시집 「농무」의 표제이기도 하다. 이 시는 1970년대 우리나라가 산업화로 농촌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소외되고 억압받는 농민들의 비애와 울분을 토로한 시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러나 강요된 희생 속에서 절망과 울분을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 열악함에서도 극복 의지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단순한 분출의 나열이 아니고, 농촌 현실을 풍자와 역설, 사실적이고, 시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도 짙게 깔려 있다. 또한 현실 비판적인 시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축약하면 낙후된 농촌에서 농민들은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지으며 꺽정이처럼 울부짖기도 하고, 서림이처럼 해해대대기도 하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아 피폐해가는 현실을 절묘하게 시로 승화시켜 노래하고 있다. 당시 농촌의 삶을 리얼하게 형상화한 시이기에, 한국 시단과 독서계에 큰 충격과 감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은 우리나라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제주의 농촌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오영호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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