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선 선생이 들려주는 제주의 고문서 이야기 ⑦ "차첩(差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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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선 선생이 들려주는 제주의 고문서 이야기 ⑦ "차첩(差帖)"
  • 문창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승인 2020.09.2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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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1×40.5cm허종렬(許宗烈) 향교 장의 차첩
(사진) 51×40.5cm허종렬(許宗烈) 향교 장의 차첩

 

[원문]
行縣監爲差定事
鄕校掌議差定不
察任向事合下仰
照驗施行須至帖者
右帖下前有司許宗烈準此
光緖九年三月日
差定
不入
帖[着押]
行縣監 [署押] 着名

[번역]
행(行) 현감(縣監)이 차정하는 일. 향교(鄕校) 장의(掌議)로 차정하니 임무를 가벼이 살피지 말고 반드시 첩대로 시행할 것이며 이 첩을 향교 전 유사였던 허종렬(許宗烈)에게 내리니 이에 따를 것.
광서 9년 3월에 행 현감이 차정한다. 
사양의 뜻으로 쓴 문서는 받지 말 것.

[해설]
광서 9년(1883) 3월 현감이 향교 전 유사였던 허종렬을 향교 장의로 임명한다는 첩이다. 고문서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서체에 있다. 위에서 내리는 문서는 보통 행서나 초서로 쓰는 경우가 많으며, 낮은 데서 위로 올리는 글은 바르게 해서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 차첩 역시 현감이 향교 유사(有司)였던 신분이 낮은 이에게 보내는 문서이기에 행서로 휘갈겼다. 
행(行) 현감(縣監)이란 행수법(行守法)에 의한 표기이다. 모든 관직에는 그에 따르는 품계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 어떤 관직에는 그 관직 자체의 품계보다 더 높은 품계의 관원, 또는 반대로 더 낮은 품계의 관원을 임명할 수 있다. 그중 품계가 높은 사람을 낮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고직비(階高職卑)의 경우를 ‘행(行)’, 반대로 품계가 낮은 사람을 높은 관직에 임용하는 계비직고(階卑職高)의 경우를 ‘수(守)’라 한다. 예를 들면, 정2품의 자헌대부(資憲大夫)가 종2품의 관직인 대사헌(大司憲)에 임용되면 자헌대부행사헌부대사헌(資憲大夫行司憲府大司憲)이라 하고, 반대로 종2품의 가정대부(嘉靖大夫)가 정2품 관직인 호조판서에 임용되면 가정대부수호조판서(嘉靖大夫守戶曹判書)라 하였다. 
장의(掌議)란 조선 시대 성균관이나 향교의 재임(齋任) 가운데 하나이다. 성균관의 동재와 서재 유생이나 향교의 거재 유생 등이 자율적으로 선발하여 유생들의 자치를 관장했다. 성균관의 경우 동재와 서재 각 1인씩 선발하며, 현임 장의가 후임 장의를 추천하면, 전임 장의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선출한다. 또한 성균관 자치기구인 재회(齋會)를 소집하거나 성균관 유생의 여론을 주도하곤 했다.
마지막에 쓰인 불입(不入)이란 대목이 상당히 흥미롭다. 동양 전통에서는 어떤 일을 거절하는 데에도 상당히 복잡한 절차들이 있었다. 거절의 방식인 사양(辭讓)에도 세 가지 종류의 사양이 있었다. 한 번 사양하는 것을 예사(禮辭)라고 하고, 재차 사양하는 것을 고사(固辭)라고 하며, 세 번 사양하는 것을 종사(終辭)라고 한다. 맨 끝의 불입(不入)도 이런 사양에 관한 말이다. 직역하자면 ‘서류를 들이지 말라’ 혹은 ‘서류를 받지 않겠다’는 말인데, 이런 벼슬을 받으면 의례 한 번쯤은 거절해보는 예사(禮辭)를 의식한 단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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