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수필 - 나도 이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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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수필 - 나도 이제 할머니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09.29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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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교 _ 사)서귀포룸비니청소년선도봉사자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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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뭐하니?”
딸아이와 통화를 하고 있으려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손자 녀석의 목소리다,
내가 손자 녀석과 통화를 할 때“ 우리 민재 뭐하니?” 라는 말을 줄곧 썼었는데, 손자 녀석이 할머니가 늘상 하는 말을 따라 하는가보다.
어느 순간 뜨문뜨문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해 대는 것이 너무 이쁘기도 하고 너무 신기하기도 하다.
“할머니 뭐하니?” 엄마와 할머니와의 통화 사실을 알고 인사말을 건네는 손자의 목소리에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웃고 있자니 또 다시 들려오는 손자 녀석의 목소리, “할머니 보고 싶은 디~”
2017년 9월 26일은 “나 왔노라고!” 커다란 울음소리로 이 세상에 기적을 울리며 태어나던 날 그날이 우리 민재의 생일날이다.
딸아이가 임신을 하였고 임신성 고혈압으로 자연분만은 힘들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대로 수술대 위에서 세상에 나온 아이.
태중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의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도 소중하고 소중한 아이의 세상출현이 너무도 감동스러웠다.
“나도 이제 할머니 되었네?”
“당신도 이제 할아버지네요” 하하하 “우리가 벌써 할머니 할아버지?”
익숙하지 않은 호칭으로 서로를 불러보며 허허허 웃었었는데, 어느새 내가 나를 할머니라 칭하며 손자 녀석을 부르고 있다.
“민재야~~할머니 왔다~~”
“민재야~~할머니는 우리 민재 보고 싶은데 우리 민재는 할머니 안보고 싶니?” 
손자 앞에서는 아주 따뜻한 그야말로 자상한 할머니가 되어있는 나.
그러보고 보니 문득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가 생각난다. 늘 따뜻하였고 늘 인자한 미소를 보이셨던 할머니. 다시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이 뭉클 거린다.
어린 시절 아주 어린 시절, 난 아주 명랑하고 아주 활달하고 옛말로 요망진 아이였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 마을에서 동생 친구들과 동네꼬마 녀석들을 죄다 모아놓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였으니까.
또, 유독 아기를 좋아하였고, 등에 아기를  업고 지나가는 아기엄마를 볼 때마다 업혀있는 아기에게 달려가서 얼르고 달래고 때로는 아기를 내려달라고 해서 안아주고 업어서 놀아주기를 좋아 하였고, 동네 아기 보는 일을 또 도맡아서 하기도 하였었다.
“너 그렇게 아기를 좋아하면 어른이 되어서 아기를 못 낳는단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아기를 좋아 했었다. 그런 나를 흐뭇하게 웃으시며 지긋한 미소로 바라보시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꼬리처럼 따라 들어오는 영상 한 장면이 있다,
아주 저학년 때 일이다. 늘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고 자치기하고 방치기 놀이하고 숨바꼭질하며 동네방네 뛰어 다니며 놀던 어느 날, 그날은 놀다가 숨바꼭질로 놀이를 바꾸었었다.
할머니 댁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난 할머니 방으로 숨으러 들어갔고 할머니 벽장 위에 괴짝 사이 이불이 개켜 올려 져 있는 그 사이로 숨으로 들어갔다.
괴짝 위에 조그맣게 종이에 똘똘 뭉쳐진 뭉치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뭉치 안에는 동전들이 종이 안에 돌돌 말아진 쌓여져 있었다. 난 그 돈 뭉치를 들고  옛날 상점으로 내 달렸다.
길 다란 통 안에 얼음주머니 놓고 팔던 ‘아이스께끼’ ‘자야’라는 과자와 ‘라면땅’ 이라는 과자를 샀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소중하게 돌돌 말아 싸둔 뭉칫돈을 죄다 내가 다 써버렸던 것이다.
할머니는 돈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또 그 돈이 어디 갔는지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지금도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그때의 죄책감으로 가슴밑바닥이 저려온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인자하고 따듯한 할머니의 미소와 함께 떨쳐 버릴 수 없는 그 고백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그 장면을 지워 버릴 수 없다. 할머니의 기억처럼, 할머니에 대한 추억처럼.
내 손자 녀석은 이 할머니를 무지하게  좋아한다. 요즘 시대가  좋은 때라 서로 얼굴을 보면 서 통화를 할 수 있다.
영상 통화란 걸 할라치면 “어~? 할머니다.” 하면서 반가워 날뛰는 손자 녀석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어쩌면 우리 민재도 내가 할머니를 기억 하는 것처럼  인자한 할머니로 기억해 줄지도 모른다. 손자 녀석의 재롱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세상 부러울 것 하나 없이 부자가 된 느낌이다.
저 녀석에게 할머니에 대한 어떤 기억을 만들어 줄까?
‘물외 자라듯 잘도 자란다.’ 라는 말처럼 하루하루 볼 때마다 쑥쑥 자라나는 손자 녀석을 보면서 세월이 유수 같음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민재 몇 살? 하면 손가락을 펴 보이며 씨익 웃는 손자 녀석... 어느새 저렇게 많이 자랐지? 손가락을 펴 보이는 손도 어느새 아기 손 이었던 그 손이 제법 큰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 인연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인연으로 할머니, 손자로 만났을까? 어떤 인연으로든 내 손자로 만났으니 난 이아기가 내 손자로서 무한 행복한 아이이기를 바라고 빌어본다. 지혜로운 아이이기를 바래본다.
한 세상 살아내기기 녹녹치 않음에 어떠한 환경, 어떠한 어려움에도 지혜롭게 해쳐나가는 건강하고 밝은 아이가 되길 바란다.
가족들 간에 더 자주 더 많이 더 화기애애하게 안부를 묻고 더 궁금하게 하는 어떤  매개체가 된 손자 녀석. 그 대화의 중심에는 항상 손자 녀석이 있다.
그런 손자 녀석이 너무도 이쁘고 고맙고 대견하기만 하다. 지금 이 순간 이 마음처럼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하나의 건강한 가족이 되어 주기를  할머니인 나는 간절하게 기도해본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인자하고 따뜻한 할머니이고 싶다. 나도 이제 할머니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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