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네 박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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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네 박자 인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0.1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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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트로트(Trot) 열풍이 안방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던 트로트가 이제 TV를 틀기만 하면 나온다. 집 밖에서도
온통 트로트 얘기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트로트가 나이든 한 많은 여인네들의 한풀이 노래를 넘어 중장년층은 물론 1020세대도 트로트를 즐기는 이유는 뭘까. 일상적인 삶의 피로감과 우울증을 떨쳐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 19뿐만 아니라, 고통만 양산하는 과거청산과 개혁, 진영 논리를 내세운 패거리 문화와 그칠 새 없는 정쟁政爭, 지도층의 위선과 거짓 등으로 정말 삶이 힘들고 짜증나는 요즘이다. 트로트가 다시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트로트는 풍진風塵 세상을 버텨낼 수 있게끔 서민들의 무겁고 힘든 마음을 다독여준 정서적 동반자이며 의지 처였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노래는 ‘임영웅’의 음색과 만나면서
트로트에 담긴 한恨의 정서에 품격을 더해주고, 까칠하고 메마른 노인네 마음에 감미로운 선율을 흐르게 하여 음치인 나 자신까지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송대관이 부른 ‘네 박자’는 ‘뽕 짝 뽕 짝 뽕 짜자 뽕 짝’하는 트로트 특유의 리듬패턴에 따라 누구나 흥얼거리는 중독성 강한 가사이다. 사랑도 있고 눈물도 있고 이별도 있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네 박자 꿍 짝과 닮았다.  
신경을 안정시켜주고 긴장을 풀어주는 고전풍의 음악과 달리, 록 음악이나 트로트는 사람들의 정서를 흥분시킨다. 노래에 심취해 있는 동안의 즐거움과 안도감은 일종의 어수선함이자 흥분이다. 그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그것이 좀 더 계속되거나 반복되기를 바란다. 노을의 아름다움이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이유로 그 아름다움을 피하려 하지 않듯이.
가무 공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면 해로운 마음씨의 일종인 ‘들뜸’이 일어난다. 이런 마음 상태는 항아리 속에 있는 물이 바람이 휘저어 흔들리고 출렁거려 파문이 생기는 것과 같다. 
들뜸을 가라앉힌 상태가 ‘고요, 적정’이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인적이 드문 고요하고 한적한 숲속의 거처에 머물기를 즐겼다. 고요함은 마음이 청정한 사람들의 기운을 돋우고 정진력을 끌어올려 주기 때문이다.
한때 유명한 춤꾼이었다가 아라한이 된 딸라뿌따(Tālaputa) 존자 이야기(상응부 S42:2)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가 세존을 찾아뵙고 이렇게 여쭈었다. “무대에서 진실이나 거짓으로 대중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배우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파안대소하는 천신들의 동료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을 저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맞습니까?” 
세존께서 답하셨다. “배우는 무대에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하고 탐·진·치의 올가미에 묶여있는 중생들을 자극하는 것들을 공연하여 그들로 하여금 더욱 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물들게 만든다. 그들 자신도 스스로도 도취하고 방일하고 남들도 도취하게 하고 방일하게 만든 뒤,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파안대소하는 지옥(무간지옥의 한 부분)에 다시 태어난다.”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가슴앓이와 쓰라림의 고(苦)와 한(恨)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의 네 글자이다. 이런 심리적인 고(苦)는 무상(anicca)한 것이다.
불교는 네 박자 인생살이의 너머에 있는 ‘지고至高의 행복’을 이야기하면서 고(苦)의 멸(滅)과 그 소멸로 가는 도(道)의 성스러운 진리, 두 박자 쿵 짝의 수행을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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