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밖의 세상 ⑩ - 행복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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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밖의 세상 ⑩ - 행복의 발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0.1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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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_ 자유기고가
박인수 _ 자유기고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했던 시다. 그 당시엔 무슨 생각에 이 시를 인용했을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도, ‘난 널 사랑한다. 그래서 난 지금 행복하다’쯤이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일 테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더 큰 행복이지 싶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행복인가.
행복.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일단 행복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과거에 아무리 행복했더라도 지금 불행하다면 그건 행복이 아닐 테고, 아무리 미래에 큰 꿈을 꾸고 있더라도 지금 불행하다면 그것 역시 행복은 아닐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행복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현재 행복한 일은 없지만 지금부터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은 나의 주체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며 물심양면으로 풍족하게 해 준다 하더라도 나의 능동적인 행위 없이 수동적으로 받기만 한다면 진정 행복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서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라고 노라가 선언한 까닭이다.
행복은 또한 지속적이어야 한다. 지속적이지 않은 것은 쾌락일 뿐이지 행복이 될 수 없다. 지속할 수 없는 것을 행복이라 믿는 까닭에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거나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승진에 목매달거나 쉼 없이 즐거움을 추구해야 하는 따위는 우리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한다. 
다시 한 번 의문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이란 어떤 상태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괴롭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괴롭지 않은 상태란 무엇인가. 평상심일까,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의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듯이, 누구나 생로병사나 희노애락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싯다르타도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부처가 될 수 있었는데 하물며 일반인들이 아무나 쉽사리 생로병사나 희노애락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법륜 스님은 아침에 눈을 떠서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 오늘도 살았네!’ 하고 기뻐하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하기 싫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다. 또한 오감이 건강한 것이 행복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눈으로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귀로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코와 입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요즘 맑고 푸른 하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산행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퍽 행복한 일이다. 경제 위기와 코로나19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상 유래 없이 계속된 장마로 외출이 쉽지 않았던 지난 여름을 떠올려 보면 이렇게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본다는 것이 더없는 행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하늘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2018년에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이지 못하면 그 이후엔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 재앙을 막기 어렵다고 한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 및 환경과 동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음을 감안할 때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함은 물론 건강한 환경을 되찾아야 한다. 
행복은 늘 우리 주위에서 서성거린다. 때문에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헤매게 된다. 행복은 애써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활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사랑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하듯이, 행복도 볼 수 있을 때 봐야 한다.
청마 유치환의 「행복」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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