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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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0.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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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19)
(사진 1) 선방굴 구조인 서위 때 만들어진 제285굴 전경
(사진 1) 선방굴 구조인 서위 때 만들어진 제285굴 전경

둔황 막고굴을 중국 불교 미술의 보물창고라고 한다. 4세기부터 천 년 넘게 만들어진 490여 개의 석굴에 조성된 수많은 불상과 화려한 벽화, 그리고 장경동에서 발견된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천 여 년 동안 숨겨져 있던 많은 유물과 문헌 자료들은 중국과 중국 주변 민족의 역사, 언어, 문화, 문학, 예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자료이다. 20세기 초 장경동이

(사진 2) 서위 때 만들어진 제285굴 본존인 미륵불상
(사진 2) 서위 때 만들어진 제285굴 본존인 미륵불상

발견된 후 둔황의 많은 유물들은 둔황 밖으로 유출되었고 그 유출된 유물과 문헌 자료를 교류, 연구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둔황학이다. 한 지역의 유물과 문헌 자료를 연구하는 데 그 지역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너무 거창하다고 반문할 수 있지만 보기 힘든 10세기 이전의 자료라는 점, 중원지역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천 년 이전의 수많은 불상과 벽화에서 전하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전혀 지나치지 않다. 물론 둔황이 변방에 위치해 있다 보니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이라든지 낙양 등 중원 지역에 비해 양식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안과 낙양에 있던 당나라와 그 이전의 사찰에 있던 불상과 벽화는 문헌으로나 확인할 수 있을 뿐 실제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그 시대의 생생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둔황 막고굴이 갖는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둔황 막고굴이 있는 명사산은 굵은 사암 계통의 바위로 이루어졌다. 운강석굴이나 용문석굴처럼 정으로 조각해 불상을 만들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무로 심을 만든 후 그 위를 짚 등으로 감은 다음 말총, 짚 등이 섞인 진흙을 발라 상을 만들고 마른 다음 그 위에 채색을 한 소조상을 제작해 봉안하였다. 불보살상 주변 벽과 천정에는 채색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건조지역이어서인지 천 년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잘 남아있어 굴 안에 들어가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사진 3) 북위 때 만들어진 중심탑주굴 구조인 제254굴 전경
(사진 3) 북위 때 만들어진 중심탑주굴 구조인 제254굴 전경

 

현재 남아 있는 석굴의 구조는 중국식 표현으로 크게 선굴(禪窟), 중심탑주굴(中心塔柱窟), 전당굴(殿堂窟)로 나눌 수 있다. 선굴은 승방굴(선방굴)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의 비하라에 해당하는 승려의 생활공간이나 수행하는 굴을 가리킨다. 중심탑주굴은 인도 석굴의 예불당(차이티야)에 해당하는 것으로 굴 가운데 천정까지 연결된 탑을 둔 구조이다. 탑에 감을 파서 불상을 봉안한다. 마지막으로 전당굴은 말 그대로 굴 안쪽 벽에 예불할 불단을 마련한 구조로 둔황석굴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만들어진 굴 형식이다. 이 전당굴은 입구에서 안쪽까지 연결되는 천정을 어떤 구조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뉘기도 한다.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말처럼 이와 같은 막고굴의 굴 구조를 이해하고 보면 훨씬 흥미로운 순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4)  제254굴 중심탑주 남벽의 교각미륵보살상
(사진 4) 제254굴 중심탑주 남벽의 교각미륵보살상

먼저 선굴의 구조를 살펴보자. 대표적인 선방굴인 제285굴(사진 1)은 북쪽 벽의 공양자상 가운데에 명문(大代大魏大統四年歲次戊午八月中旬造)이 남아 있어 서위 대통 4년인 538년에 처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천정과 벽의 벽화 내용이 매우 다양하여 일찍부터 관심을 받은 굴인데, 특히 천정부의 벽화에는 복희와 여와, 풍신과 우사, 뇌공과 전모, 사신, 도철 등 불교와 거리가 있는 중국 신화와 관련된 주제들이 그려져 있어 주목된다. 이런 그림이 그려진 이유로 이 굴을 조성하는데 후원한 과주자사 원영(元榮)이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도 후원하였기에 불교사원 속에 도교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 굴은 6미터가 넘은 정방형이며 안쪽 중앙에 미륵상(사진 2)을 좌우의 작은 감에는 승려상을 봉안하였다. 굴 좌우 벽에는 각각 네 개의 작은 감을 만들었는데 승려들이 참선 수행하는 공간이다. 중앙에는 사각형의 낮은 단을 만들어 굴 안에서 탑돌이처럼 돌 수 있게 했다. 예불을 드릴 불단과 수행하는 선방, 벽면에 그려진 불교적인 벽화와 천정의 도교의 이상세계를 통해 선방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것을 석굴에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심탑주굴은 한쪽이 긴 직사각형 형태가 많은데 그 중심 또는 조금 안쪽으로 치우친 부분에 사각기둥을 세운 구조이다. 이러한 형태는 인도의 말발굽 모양의 석굴 중심에 스투파(사리탑)을 안치하고 탑돌이 하는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각 벽에는 감실과 벽화로 장식되었다. 이런 구조를 한 이른 시기의 석굴로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사진 3)을 들 수 있다. 너비 6.6미터, 깊이 9.5미터, 높이는 4.6미터의 큰 굴이다. 중심주 앞은 사람들이 모여 예불을 드릴 수 있는 공간이

(사진 5) 서위 때 만들어진 전당굴인 제249굴 전경
(사진 5) 서위 때 만들어진 전당굴인 제249굴 전경

며, 그 곳의 천정은 사람 인자, 즉 시옷자 형태로 설계되었다. 사람들은 중심주 앞에서 예불했거나 중심주를 돌면서 예불했을 것이다. 중심주 전면에 있는 큰 감에는 의자에 앉은 미륵불이 조성되었고, 다른 세 면에는 이층의 불감에 불상을 봉안하였다. 그 중 남벽 윗부분에는 다리를 꼬고 앉은 교각보살(사진 4)이 봉안되었는데, 둔황에서 만들어진 교각보살은 도솔천궁에 있는 미륵보살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둔황석굴에 가장 많은 형태의 굴인 전당굴의 이른 시기의 예로 천정 벽화로 유명한 서위 때 만들어진 제249굴(사진 5)을 들 수 있다. 굴 정벽에 큰 감을 만들고 미륵불상을 안치하고, 그 좌우 벽에는 보살상을 안치하였다. 단이 다른 굴에 비해 낮은 게 특이하다. 양 벽에는 천불도를 그렸고, 천정에는 아수라, 서왕모와 동왕공, 뇌공과 전모, 풍신과 우사 및 수렵도 등이 그려졌는데 제285굴의 천정과 유사하다. 불교 석굴에 중국 신화 및 도교적인 요소를 표현한 것을 통해 제작 당시 중국의 종교 양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490여 개의 둔황 석굴을 다 볼 수는 없다. 극히 일부만 공개하기 때문이다. 특별 요금을 내면 추가로 더 볼 수 있지만 그 역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공개되지 않은 것은 둔황 관련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둔황에 가게 된다면 먼저 공개되는 굴에 대한 정보를 알고 그 굴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가자. 아는 만큼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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