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필 거사의 사찰사경 - 통도사 구룡지(通度寺九龍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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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필 거사의 사찰사경 - 통도사 구룡지(通度寺九龍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0.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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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통도사를 지을 때 그곳에 구룡지라는 큰 못이 있었다. 이 못에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율사가 주문과 경을 읽으며 용들에게 이 못을 떠나 달라고 했지만 용들은 응하지 않았다. 율사가 종이에 ‘화(火)’자를 써서 하늘로 날리며 법장으로 못 물을 저으니 못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용 세 마리는 이미 죽었는데 그것을 집어던지니 부딪친 바위에 피가 묻어서 후세 사람들이 이를 용혈암이라 했다. 나머지 다섯 마리는 통도사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달아났으므로, 그곳을 오룡곡(五龍谷)이라 부른다. 마지막 눈 먼 용은 이 절을 수호할 것을 맹세하고 조그마한 못을 만들어달라고 애원했다. 통도사 대웅전 바로 옆의 연못이 그것이다.
사찰의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용들이 대부분 불법과 국가를 수호하는 선룡(善龍)인데 비해, 통도사 창사에 나타나는 용은 절의 창건을 방해하는 독룡이다. 
우리나라 재래 민간신앙에서 용은 물을 지배하는 수신(水神)으로 신앙되면서 많은 용신신앙(龍神信仰)을 발생하게 하였다. 용왕굿·용왕제·용왕먹이기·용신제·기우제의 하나인 토룡제 등은 그 예가 된다.
자장이 통도사를 지을 때 방해가 되었던 용은 바로 재래신앙 속의 용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통도사가 있는 영취산의 상류에는 신라시대부터 용신제를 모시는 가야진사가 있어, 이 지역이 재래 용신 신앙이 강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용혈암과 구룡지의 유래」는 초기 불교의 전파 후에도 세력을 잃지 않았던 재래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와의 갈등, 그리고 결국 재래신앙이 불교로 습합(習合)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설화로 해석할 수 있다.
신라시기 구룡지의 원형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러 시대를 거치며 개·보수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때 정비된 것이다. 구룡지가 위치한 곳은 삼성각과 산신각 사이로 약 4~5평의 규모이며, 연못을 가로지르는 아담한 다리가 있다.
[출전: 디지털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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