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필 거사의 사찰사경 - 통도사 금강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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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필 거사의 사찰사경 - 통도사 금강계단
  • 문승필
  • 승인 2020.10.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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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금강계단
통도사 금강계단

 

국보 제290호. 높이 300cm, 너비 990cm. 646년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경주 황룡사탑, 울산 태화사탑과 함께 봉안한 곳으로 매년 초하루와 보름날에 계(戒)를 설했다고 한다. 금강계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받은 계법이 금강(金剛)과 같이 단단하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삼국유사〉권3 전후소장사리(前後所藏舍利)조에 의하면 사리가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강계단의 석함 안에는 구렁이와 두꺼비가 있다고 했으나 1235년(고종 22) 김이생(金利生)과 경석(庚碩)이 군사를 시켜 석종을 들어 보았더니 작은 석함의 유리통 안에 사리 4개가 있었다고 한다.
<양산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 梁山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는 1379년(우왕 5) 왜구의 침입으로 주지 월송대사(月松大師)가 불사리를 송경(松京)으로 옮겨오자 왕과 왕비가 예를 다하여 공경하여 사리의 분신(分身)을 얻었다고 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통도사의 사리가 왜구에 의해 도난당했는데 백옥(白玉)거사가 적의 포로로 있다가 사리를 다시 찾아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또한 사명대사 유정(惟政)은 임진왜란을 피해 사리를 대소 2함(函)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는 휴정(休靜)에게 보냈으나 자장의 뜻을 받들어 1함을 되돌려 보내어 1603년 통도사 계단을 중수한 뒤에 봉안했으며, 나머지 1함은 태백산 살나사(薩那寺 : 葛盤寺·淨岩寺)에 안치했다. 그러나 〈건봉사석가치상립탑비 乾鳳寺釋迦齒相立塔碑〉에 의하면 사명대사가 왜구로부터 다시 찾은 통도사의 사리는 금강산 건봉사와 대구(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용연사(龍淵寺) 석조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특히 용연사의 경우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하여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주목된다. 1652년(효종 3)에 정인대사(淨人大師)를 중심으로 중수되기 시작하여 1705년에는 성능대사(性能大師)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고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조는 정방형으로 된 2중 석단 위에 석종형 부도가 안치되어 있는데 그 안에는 과립 3매, 불아(佛牙), 정골지절(頂骨指節)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출전: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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