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20) - 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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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20) - 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0.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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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서위 때 그려진 제269굴 수렵도,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와 비슷해 흥미롭다.
(사진 1) 서위 때 그려진 제269굴 수렵도, 고구려 벽화의 수렵도와 비슷해 흥미롭다.

둔황 막고굴은 중국 불교 미술의 변화를 가늠케 하는 시금석이다. 둔황에서는 4세기부터 천 년 넘게 외부에서의 큰 피해 없이 석굴이 만들어졌다. 둔황은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지만 사막을 건너 온 대상(隊商, 카라반)들에게는 그 험한 사막의 끝을 의미하는 곳이었고, 중국에서 서역으로 나가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머나먼 길의 시작점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잠시 머물며 자신들의 안전한 여정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어려운 여정에 행운을 빌기 위해 막고굴을 찾았다. 사주(沙州) 지역의 역대 지배자와 귀족, 부자들은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굴을 파고 불상을 만들고 벽화를 그렸다. 그렇게 막고굴은 천 년 넘게 이어왔다. 

(사진 2) 북위 때 그려진 254굴 남벽의 항마 장면
(사진 2) 북위 때 그려진 254굴 남벽의 항마 장면

 

막고굴에 전하는 진흙으로 만들고 화려하게 채색한 불상과 다양한 구조의 석굴, 벽화 및 장경동 등에서 발견된 문서와 그림, 서적들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는 보물이다. 개인적으로 둔황 예술의 백미는 벽화라고 생각한다. 불상이나 석굴 및 문서류는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벽화의 경우는 다르다. 왜냐하면 사찰의 벽에 그려진 그림은 전란이나 폐불과 같은 국가의 정책으로 소실되었고, 그 외에도 화재와 보수 등으로 인해 손상되어 천 년 넘게 온전히 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그림은 상대적으로 좀 더 오랫동안 보존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전하는 예가 흔하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둔황 막고굴에 그려진 벽화는 천오백 년 전 처음 그려지기 시작해서 그 후 천 년 가까이 계속 그려진 것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오랜 기간으로 인해 채색이 벗겨져 색이 희미해졌지만 건조한 지역이어서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 이 둔황 벽화를 통해 중국 불교 회화의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벽화 속에 불보살뿐만 아니라 다양한 천인과 공양인의 모습, 그들을 통해 각 시대의 건물과 의복 등 풍속을 알 수 있는 정보의 보고이기도 하다. 서위 시대에 그려진 제269굴(사진1)에는 고구려 벽화 그려진 것과 비슷한 수렵도가 그려졌다. 아래 부분에 그려진 단순한 형태의 산과 나무 모습도 유사해 흥미롭다.    

(사진 3) 254굴 남벽 항마 장면 중 보살을 유혹하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마왕의 딸들
(사진 3) 254굴 남벽 항마 장면 중 보살을 유혹하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마왕의 딸들

 

 부처나 보살, 때로는 승려를 봉안한 석굴을 화려하게 장엄하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려 넣는 게 좋았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시대에 따라 선호하는 주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각 시대에 공통적으로 천정은 연꽃과 구름 그리고 하늘을 나는 천인인 비천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다. 날씬한 몸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생동감 있는 비천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그 외에 벽면에 그려진 벽화의 주제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벽화들의 주제를 분류해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인 불전도는 주로 당나라 초기까지 그려졌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 외에 본생담이 그려진 곳도 적지 않다. 아마 초기에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석가모니를 있게 한 인연에 관심이 더 집중되었다. 그리고 넓은 벽에는 천불이나 설법도가 그려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 경변상도는 당나라의 전성기인 성당과 후기인 만당대에 유행하였다. 

(사진 4)  초당 때 그려진 209굴 서쪽 천정의 승상입태와 유성출가 장면
(사진 4) 초당 때 그려진 209굴 서쪽 천정의 승상입태와 유성출가 장면

 

둔황 초기 굴 중 불전도가 그려진 대표적인 굴로는 제254, 260, 263, 428, 431, 290굴 등을 들 수 있다. 제254굴 남벽에는 항마성도상(사진2)이 그려졌다. 중앙에 앉아 있는 보살상 좌우에는 세 명의 여인들이 그려졌는데, 보살을 유혹하여 깨달음을 막기 위해 마왕이 보낸 마왕의 딸이다. 왼쪽은 보살을 유혹하는 젊은 모습(사진3)이고, 오른쪽에는 늙은 모습으로 변한 딸들이 그려졌다.  
이처럼 초기 석굴에 그려진 불전도는 대개 코끼리를 타고 마야부인의 태로 들어가는〈승상입태〉, 룸비니에서의〈탄생〉, 위대한 가출인〈유성출가〉, 보리수 밑에서 마구니들을 물리치는〈항마〉, 다섯 비구에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초전법륜〉그리고 오랫동안 불교를 전파하고 사라나무 아래서 생을 마치는〈열반〉등이다. 초당 때 그려진 209굴 서쪽의 감 윗부분에는 좌우에〈승상입태〉와〈유성출가〉장면(사진4)이 그려졌다. 특히 오른쪽 출가 장면에는 경전의 내용대로 싯다르타 태자가 탄 말의 발굽을 사천왕이 받치고 나서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진 5) 10세기에 만들어진 제61굴 전경
(사진 5) 10세기에 만들어진 제61굴 전경

 

둔황의 수나라와 당나라 초기까지 만들어진 석굴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주제는 〈승상입태〉와〈유성출가〉이다. 석굴의 입구나 불상을 봉안하는 감의 윗부분 양쪽에 대칭으로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나라 전성기 이후에는 부처님의 전기인 불전도보다 경전의 내용을 그린 경변상도가 많이 그려졌다. 당나라 때 현장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들이 한문으로 번역되었고, 이를 공부한 학승들이 많아지면서 경전의 중요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유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나라 때 장안에 있던 많은 사원의 벽에도 다양한 경변상도들이 그려졌었다고 전한다. 
둔황 석굴과 장안의 사원에 변상도로 그려진 경전은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약사경, 미륵경, 금강경, 법화경, 부모은중경, 금광명경, 유마힐경, 능가경 등이고 이와 함께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과 관련된 그림들도 많이 그려졌다. 

(사진6) 제61굴 탄생 전후의 모습을 그린 병풍화
(사진6) 제61굴 탄생 전후의 모습을 그린 병풍화

 

10세기가 되면 당시 사주지역을 다스리던 절도사 조의금과 그의 아들들에 의해 당나라 말기 주춤했던 막고굴이 다시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이때 만들어진 굴들로는 제25, 53, 55, 61, 269, 469굴을 들 수 있는데, 특히 61굴(사진5)에는 33폭의 불전병풍화가 그려졌다. 총 128 장면의 부처님 생애와 관련된 그림(사진6)이 화려하게 장엄되었다. 각 장면의 배경에는 산수와 건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원경의 경물들을 좀 더 작게 그려 공간감을 부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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