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읍 금산공원 자락의 기도도량 월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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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읍 금산공원 자락의 기도도량 월인사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10.2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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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신문 31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월인사

제주는 오래전부터 깊은 신앙이 뿌리 내려져 있었다. 제주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내면서 지혜롭게 삶을 가꿔갈 수 있는 힘은 신앙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는 마음은 곧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으로 이어지면서 제주 사람들은 자연과 사람을 아끼고 존중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제주의 정신을 더욱 빛나게 만든 것이라면, 제주의 오래된 사찰들이었다. 그래서 절오백이 있게 되었고, 그 절오백은 지금도 제주사람들의 마음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제주불교신문이 31주년을 맞아 다시금 제주를 묵묵히 지탱해온 힘, 제주 절오백의 줄기를 따라가 보려 한다. / 편집자

제주현무암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웅전
제주현무암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웅전

 

휘영청 밝은 달이 뜨면 달은 천 개의 강에 찍힌다[月印千江]. 불법이 모든 이들에게 비춘다는 비유이겠다. 납읍남로를 따라 한라산 방향으로 오르다보면, 왼쪽으로 야트막한 동산에 울창하게 우거진 숲, 금산공원이 보인다. 예로부터 양반들이 모여 사는 고장으로 알려진 납읍리는 예부터 서당이 있어 많은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는 등, 사대부들의 마을이었다. 또한 난대림식물 20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 금산공원은 예부터 선인들이 글을 짓고 시를 읊던 선조의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명문대학이나 고시 등 어렵다는 각종 시험을 통과한 이들이 숱해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든 동네가 이곳 납읍이다.

월인사로 들어가는 호젓한 오솔길
월인사로 들어가는 호젓한 오솔길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지를 잇고 있는 사찰인 월인사(주지 종선 스님)는 그 금산공원 자락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월인사가 앉은 이곳은 신선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으로 ‘강선이 빌레’라는 지명을 갖고 있는데, 야트막한 언덕 오르막을 오르는 길은 호젓하다. 감아 도는 오솔길 양편으로는 노랗게 물들어가는 밀감이 가을 햇살에 야무지게 여물어가고 있다. 

일주문을 대신해 드리운 넝쿨
일주문을 대신해 드리운 넝쿨

 

일주문을 대신한 대문위로 드리워진 넝쿨이 참배객을 맞아준다. 일주문 안으로 들어서자 사시사철에 푸름을 잃지 않은 제주 야생의 심나무 두 그루가 마치 사천왕처럼 마주 보고 우뚝 서서 가람을 수호하고 있다. 심나무에 푸른 이끼가 두텁게 앉아가는 모습이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우듯 세월이 흔적이 구름처럼 번져있다. 깨끗함도 더러움도 새것도 헌것도 본래는 없는 것이니 이것이다 저것이다 분별하지 마라. 변한다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일 뿐, 나무는 마치 그렇게 무정설법 하듯 참배객을 맞아준다. 마당으로 올라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주 현무암으로 벽체를 세우고 석회로 곱게 모양을 내고 동기와를 올린 대웅전이다. 대웅전 양쪽으로 요사채가 대웅전을 호위하듯 둘렀다. 대웅전에는 세 분이 부처님을 모셨다. 크지 않는 전각이나 화사한 단청으로 천상의 세계를 부족함 없이 담아낸 모습, 그러면서 치장을 절제한 듯 보이는 비구니 스님의 법당이다. 

대웅전 전경
대웅전 전경

 

종선 스님이 1988년 이곳의 주지로 부임하기 이전까지 몇 몇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사찰을 운영했지만 명맥만 유지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종선 스님의 기억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사찰이었지만, 중간에 방치되어 넋들이고 침을 놓는 이가 사는 등 도량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불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재가불자들의 도움으로 대웅전을 수리해나가고 요사채를 세워가며, 지금 같은 가람다운 면모를 키워 나왔다고 한다. 근황을 여쭈니, 코로나19로 아무 행사도 외출도 하지 못해 처음에는 갑갑했었는데, 다시 예전에 공부했던 화엄경을 다시 꺼내 보신다면서 공부와 기도가 잘되니 지금은 더 편안하다고도 했다. 스님은 안봉려관 스님의 손상좌인 양인흥 스님을 은사로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에서 출가해 경북 운문사와 수원 봉령사 강원을 졸업 한 후, 10여 년 동안 전국의 선방에서 안거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고자 정진해 왔다. 또한 스님은 2016년부터 4년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 지회장이라는 소임까지 맡아보는 등, 사찰 밖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소박하면서 단정한 월인사
소박하면서 단정한 월인사

 

납읍리 월인사 절 마당에서 뛰놀던 납읍초등학교 아이들은 이제 초로의 중년을 훌쩍 넘겼다. 그러나 월인사는 여전히 한 해 제일 먼저 수확한 감귤을 부처님께 올리는 아름다운 불자들의 동참하고 있는 청정한 도량이고, 이곳 월인사에는 법랍 50을 목전에 둔 종선 스님이 아직도 화엄경을 읽으시며 주석하고 계신다. 출가 수행자가 실천 행을 닦는 것은 나를 넘어서서 중생을 위한 것이다. 참된 깨달음은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 세상 만물이 품고 있는 불성이 싹 틀 때까지 선각자가 되어 앞길을 비쳐주기 위함일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 흐려지고 어리석은 이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를 일갈하며 형형한 눈빛으로 정법을 전하고 있었다. 

스님의 꼼꼼한 손길이 곳곳에 머물고 있다.
스님의 꼼꼼한 손길이 곳곳에 머물고 있다.

 

이곳 월인사는 가람으로서 엄정함과 시골사찰로서의 소박함과 넉넉함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감귤과수원과 금산공원 원시림을 사이에 두고 어울려 있는 전각과 요사채 그리고 땅을 차별하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 거기에는 스스로를 밝혀 맑게 정화해가는 지혜가 있었다. 그 지혜로 모든 생명은 절로 제 빛을 찾아 발현한다. 그래서 월인사 도량은 늘 꽃 공양이 만발이다. 천 여 종이 야생화가 뿌리를 내렸다하지만 마치 하나의 뿌리에서 돋아난 꽃들처럼 조화롭다. 가람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노송들은 견고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무엇에도 탓하지 않고 일궈낸 울창함은 수행자의 기상과 닮아있다. 월인사는 아름답지만 절제되어 있어서 걸음 하나도 함부로 내려놓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도량 곳곳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대웅전에는 세간을 살아가는 순박한 이들이 간절한 발원이 천장가득 이슬처럼 주렁주렁 맺혀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모든 이들의 간절한 기도를 받아주는 도량, 월인사의 일주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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