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신문 31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월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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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신문 31주년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월성사
  • 이진영 기자
  • 승인 2020.11.04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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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달을 따르듯, 불법을 따르는 월성사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월성사 대웅전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월성사 대웅전

멀리 서쪽 바닷길을 따라 한 시간 넘게 달리다 보면 너른 밭들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저녁노을이 아름답다는 수월봉과 고산의 너른 밭을 바라보면서 가을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처님의 원만한 마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도량, 고산 월성사(주지 상덕 스님)가 있어 더욱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각종 시설을 완비한 극락전
각종 시설을 완비한 극락전

 

제주 서쪽 끝 고산은 여러모로 동쪽의 수산과 대비된다. 두 곳 모두 뫼 산(山)을 지명으로 쓰며, 고산은 서쪽 끝이고 수산(혹은 성산)은 동쪽 끝이다. 동시에 고산은 일몰로 유명하고 성산은 일출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둘은 대비가 되는데, 고산에는 과거 서아막이 있던 곳이고 수산에는 동아막이 있었다. 한해의 마지막 날에는 수월봉이나 당산봉에 올라 시나브로 서쪽 수평선으로 져가는 저녁 해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리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제주에서 가장 넓고 비옥한 들판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시사철 농번기가 아닌 때가 없을 정도로 늘 바쁜 곳이다.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다가 신창을 지나 구 도로를 따라 고산 육거리를 지나면, 단청을 곱게 차려 입은 대웅전이 정갈한 자태를 뽐내는 월성사를 만날 수 있다.

고산 월성사의 이력을 증명하듯 줄지어선 비석들
고산 월성사의 이력을 증명하듯 줄지어선 비석들

 

풍수설에 의하면 수월봉은 반월형이고, 월성사 터는 별의 형국으로 반달 뒤에 별이 따라가는 형국에 있는 절이라 하여 월성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짐작컨대, 뭇 별들로 상징되는 신하들이 임금인 북두성을 감싸고돌며 호위한다고 여긴 것에 비긴 것인지 모른다. 월성의 월은 부처님의 법이고 별이란 불법을 믿고 따르려는 우리 중생들인 것이다.
월성사는 지난 1932년 관음사 주지 안도월 스님과 제주불교 중흥조 안봉려관 스님이 화주 고인경 씨와 고효열 여사의 지원을 받아 법당을 짓고 불법을 홍포하게 된 것이 창건의 역사다. 당시 대흥사 제주포교소 고산출장소였던 월성사는 서부지역의 불교 홍포를 위해 힘을 기울이던 중, 지난 1960년 월봉 스님에 의해 중건됐다. 이런 월성사의 이력은 대웅전 옆으로 30여개의 비석들이 줄지어 서서 증언하고 있다. 대중들의 공적비를 비롯해 각종 비석들은 월성사의 역사 뿐 아니라 제주불교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스님들의 행적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

 

이처럼 월성사는 도내에서 창건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지만 제대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재 월성사 주지 상덕 스님은 “월성사가 제주불교의 중흥을 이끌었던 사찰이자 전통사찰로 지정된 성스러운 사찰이기 때문에 중창 불사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님은 지난 1998년 주지 부임 후 허물어져 가는 사찰을 지금의 여법한 도량으로 다시 일으키고, 신도들의 호응을 얻기까지에는 스님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결 같은 모습으로 한 자리에서 묵묵히 부처님을 모시고 도량 가꾸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스님이 이곳 고산 월성사에 온 지도 벌써 25년 세월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절이 너무 낡아서 그냥 다시 떠나려고 했다는 스님은 바람이 불면 보따리를 쌌다가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보따리를 풀어서 일하는데 매달렸다고 하니, 그 고생이야 이루 말도 다할 수 없었으리라. 결국엔 일곱 채의 초가를 허물고 전통방식으로 대웅전과 요사채를 짓고 신도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현대적인 장례식장까지 갖추어 어디를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도량으로 만들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단다.

고산 평야를 울리던 범종
고산 평야를 울리던 범종

 

스님은 주지로 부임하면서 이곳 월성사를 불자들의 쉼터이자 안식처로 조성하겠다는 원력을 세웠고, 결국 지난 2004년 극락전을 완공했다. 극락전은 전통목조형태로 지었는데 정갈하게 풀을 먹인 광목을 바닥재로 사용하는 등 전통양식을 그대로 재현, 은은한 멋이 배어 나온다. 1․2층 330㎡ 규모로 조성된 극락전은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조리시설 등이 완벽하게 준비돼 있을 뿐 아니라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 특히 시신 안치실 등도 마련됨에 따라 사찰에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기도하는 등 신도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스님은 “서울에 있을 때 신도들과 주변 가족이 상(喪)을 당하면 언제든지 달려가 시다림 기도를 올려주며 가족들의 슬픔을 달려주었다”며 “그러나 제주지역은 불교식 장례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시다림 기도를 시작으로 입관기도는 물론 장지에서 기도를 지속적으로 봉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고산지역은 천주교와 기독교의 교세가 클 뿐 아니라 장례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며 “불교 홍포 및 불교식 장례 등을 통한 극락왕생 기원을 위해서도 장례 공간이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며 극락전 불사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스님은 “사찰은 수행처이기도 하지만 누구든지 위로 받을 수 있는 어머니 품 같은 안식처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며 “모든 이들에게 평온함을 전하는 도량으로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스님의 책상 위에는 방금 갈아놓은 듯한 먹물이 보였다. 서예를 하시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틈틈이 사경을 하는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이라는 소임까지 맡고 있다. 작년 제주지역 비구니 스님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를 받은 스님은 앞으로 3년 동안 제주비구니회 제주지회를 이끌게 됐는데, 제주지회장은 당연직으로 전국비구니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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