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 - “인간은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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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 - “인간은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나”
  • 안종국 기자
  • 승인 2020.11.1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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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수 박사
전현수 박사

지난 11월 15일, 선덕사 불교인문학강좌에서 마음테라피에 대한 정신과전문의 전현수 박사의 강좌가 열렸다. 
전현수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한국과 미얀마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 집중수행을 체험하고 몸과 마음의 작동원리를 정신치료에 응용하면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불교정신치료 전문가이다. 2014년 가을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마쳤을 때 불교에 대한 의문이 모두 해소되어 불교정신치료의 체계를 정립할 수 있었다. 저서로 <정신과 의사의 체험으로 보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정신과 의사가 들려주는 생각사용 설명서>, <정신과 의사가 붓다에게 배운 마음 치료 이야기>, <울고 싶을 때 울어라>, <노동의 가치, 불교에 묻는다>가 있고, 번역서로 <붓다의 심리학>이 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강의에서 기자가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왜 괴로운 존재인가? 어떻게 그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본질적으로 괴로움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붓다의 사성제가 가장 중요하다.
고성제는 보통 8고(八苦)를 이야기하는데, 이 고통을 요약하면 오취온(五取蘊)이다. 오온인 색(몸), 수(느낌), 상(인식), 행(의도), 식(근본마음)은 고통을 유발하는 데, 우리의 정신은 마음과 마음부수로 이루어진다. 마음에는 해로운 마음과 유익한 마음이 있어 초기불교의 아비담마에서는 이를 상세하게 분석해 놓고 있다. 
바로 이 오온에 집착이 가해지면 오취온이 된다. 이렇게 내 것, 내 마음, 내 몸... 등등으로 취착하면 존재가 괴로움이 된다. 
우리는 괴로움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하는지가 또 다른 새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불교는 정신현상에 대해서 치밀하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다. 
내가 초기불교를 수행해본 결과 다른 철학은 치밀하지 못하고 엉성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힌두교의 요가수행으로 얻는 삼매의 목표는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부처님도 삼매는 법을 여실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그러나 삼매의 여실지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존재가 괴로운 이유는 몸과 마음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은 순간으로 보면 조건에 따라 움직인다. 인과의 법칙이 순간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스스로 콘트롤할 수가 없고,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모든 일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그래서 원치 않아도 살면서 원하지 않는 일을 당한다. 그리고서도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온갖 에너지를 소모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일어날 조건이 되어 있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후회란 탐·진·치가 있고, 정확하게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을 없애면 후회란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는 삼법인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다. 무상·고·무아를 보는 순간 모든 취착은 사라진다. 
삼법인을 보면 모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일어난 일일 뿐임을 보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과거에 살 필요가 없다. 단지 모든 후회하는 일들조차도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풍부해 지는 것이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도 먹고 살려고 열심히 사니 내가 거기에 치여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로 자연들의 길이 있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 뿐이다. 그러한 밖의 일들을 우리는 통제할 수 없다. 또 우린 계속 끝없이 윤회하며 고통을 받는다.
인간의 가장 오랜 화석이 약 300만년 정도 되었고, 불과 몇 만년정도 과거에야 인간이 지구의 강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에 인간만이 괴로움에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동물들도 아픔은 있지만 정신적인 아픔은 없다. 인간만이 정신적 외상을 갖는다. 
인간에 대해 불교의 정신과학은 대단한 성과를 축적했다. 인류사회는 그동안 발달한 물질과학만큼 정신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물질은 풍족한데 정신이 괴롭다. 
이러한 물질문명이 발달한 서양인들은 정신과학의 일환으로 불교의 마음챙김을 도입해서 심리학, 사회학, 철학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가 서양에 불교가 도입된 것이 서양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했듯이 불교는 완벽한 정신과학이다.
서양의 명상은 불교수행에서 종교색을 빼고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방법론이다. 그러나 사마타-위빠사나는 인간의 죽음과 진화에 대한 의문이 다 없어지고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궁극의 진리를 위한 방법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몸을 지닌 물질적인 것으로 육체적 고통을 없애지 못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없앨 수 있다. 초기불교는 사성제, 팔정도라는 완벽한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방법은 4승 십만겁의 시간을 통해 부처님이 체득해 낸 것이다. 
초기불교에서 더 넣고 뺄 것 없다. 초기불교는 과학이다. 관찰을 통해서 온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고 완벽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교를 믿음이나 종교로 보지 않았다. 이것이 맞는 것인지, 안맞는 것인지 진리실험의 방법으로 보았다.  
붓다 당시에도 회의론자, 불가지론자, 쾌락주의자, 단멸론자, 우연론자 등등 육사외도의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4부 니까야를 2년에 걸쳐 숙독한 결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과의 법칙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업설이 인과의 법칙에 따라 원인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되었다. 
생각은 모두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내가 생각한다고 착각한다. 모든 생각은 찰나이다. 그 찰나에 일어나는 생각은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진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서로 경쟁적으로 조건지으며 생각을 일으킨다. 
뇌도 마음이 있어야 뇌가 있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물질을 생산한다. 업에서 만든 물질과 존재가 생긴다. 붓다의 윤회를 소개한 자타카(본생담)을 읽어보면 윤회의 입체적 과정이 확연히 이해된다.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교수행이다. 이 수행에서 통상적인 감각기관으로 하는 수행으로는 삼매에 들 수 있다. 삼매는 본삼매와 근접삼매(불안정한 삼매), 순간삼매가 있다. 
우리의 몸을 살피는 사대수행(지수화풍)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에서 사대의 12가지 특징을 관찰한다. 4대요소의 12가지 특징을 보는 것이다.  
땅의 요소에서는 단단함, 거칠음,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 등을 관찰한다. 물의 요소에서는 흐름, 응집을, 불의 요소에서는 따뜻함, 차가움 등을 관찰한다. 바람의 요소로는 지탱과 움직임을 관찰한다. 

선덕사 설법전에서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 불교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선덕사 설법전에서 전현수 박사의 마음테라피 불교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이 요소들을 균형있게 보면서 단단함, 거침, 무거움, 부드러움, 매끄러움, 가벼움, 흐름, 응집, 따뜻함, 차가움, 지탱, 움직임의 실재를 알아차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한 5가지 조절 능력(五力)과 7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의 균형 잡기를 하면, 전생과 다른 존재를 볼 수 있다. 
관찰은 그래서 삼매를 얻어 지혜의 눈으로 보는 것이며, 궁극적 실행을 보는 것은 위빠사나이다. 
이러한 과정은 거시적 관찰에서 미시적 관찰로 가는 것이며, 마치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으로 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주제로 돌아가서, 우리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괴로움이란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비결은 서로 좋은 것을 찾는 길이다. 자연과도 마찬가지로 서로에게 좋은 길을 찾는 것이다. 코로나와 기후문제는 큰 문제다. 모든 것은 기브 앤 테이크다. 일방이 타방을 괴롭히면 결국 그 댓가가 필연적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보물창고를 여는 지름길이다. 현재에 있으면 마음은 한곳만 보게 된다. 모든 과거의 괴로움들은 자연히 잊게 된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에는 유익한 마음과 해로운 마음이 있다. 해로운 마음은 탐·진·치의 마음이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물질을 만들어 낸다. 또 모든 마음은 과보를 가져온다. 화내는 마음은 해로운 과보를 가져온다. 마음은 매우 짧은 순간에 속행을 통해 마음과 마음부수가 연달아 따라온다. 
우리는 윤회에서 오는 괴로움을 해소하는 것이 불제자의 지상과제다. 그 윤회의 족쇄는 유신견, 회의적 의심, 계금취견, 감각적 욕망, 적의(진심), 색계집착, 무색계집착, 자만, 들뜸, 무명(치심)등 10가지이다. 이것을 순차적으로 수행을 하면서 없앨 수 있다. 그 길은 바로 예류자(수다원)의 길, 한번만 윤회하는 일래자(사다함)의 길, 돌아오지 않는 불환자(아나함)의 길, 그리고 윤회를 종식하는 아라한의 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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