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밖의 세상 ⑬ - 예쁘게 세상을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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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밖의 세상 ⑬ - 예쁘게 세상을 산다는 건
  •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 승인 2020.11.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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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데이터 스모그(Data Smog). 데이비드 솅크가 동명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유래한 말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정보가 인터넷에 지나치게 많이 퍼져 흡사 공해(스모그)처럼 누리꾼들에게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정작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을 수 없을뿐더러 사실이 아닌 가짜 정보까지 판치게 된 것이다.
데이터 스모그가 발생하는 원인은 유포자(생산자) 탓이 가장 크긴 하지만 접속자(소비자) 책임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정보 유포자는 광고하기 위해 ‘이것저것’ 마구 뿌리게 될 터인데, 접속자 또한 할인 쿠폰이나 마일리지를 받기 위해 혹은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유포자의 행위에 동의하게 된다. 결국, 이 둘의 욕구가 만나 데이터 스모그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데이터 스모그는 블로그에서도 발견되는데 적지 않은 블로그가 직접적인 광고를 하는가 하면 배너 광고를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독자가 필자가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썼다. “일간신문이 그들에게 독자투고란을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직업을 가진 유럽인치고 직업체험담이나 항의, 르포르타쥬와 이와 유사한 것들을 발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원칙적으로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필자와 독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1세기쯤 지난 한국 사회에선 SNS, 그 가운데서도 특히 블로그의 대중화로 나타나고 있다. 블로그는 개인적인 성격을 지닌 동시에 사회적인 성격도 지닌다. 만약 블로그에 쓴 글을 비공개로 설정해 놓는다면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가 되겠으나, 공개로 설정해 놓는다면 그 순간 타인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사회적인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현재 거의 모든 블로그가 공개로 돼 있다. 
이렇듯 사회적인 글쓰기인 블로그는 대개 맛집이나 좋은 책과 영화, 가 볼 만한 곳 들을 소개한다. 따라서 블로그를 통해 보는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더없이 살기 좋은 세상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과연 그런가? 
강수지가 부른 <시간 속의 향기>란 노래엔 “예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행복한 건 없겠지~”란 구절이 나온다. “예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고, 그것만큼 “행복한 건” 없을 터이다. 여기서 잠깐 질문을 반대로 던져 보자. 예쁘게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들 예쁘게 살기 싫어서 추하고 힘들게 사는 것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시작부터 ‘흙수저’로 태어난 사람은 예쁘게 살고 싶어도 그게 쉽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예쁘게 세상을 산다는 건 어떤 삶일까? 우선 자기 자신이 행복해야 함은 물론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왕이면 남에게도 행복을 주는 삶이라면 금상첨화일 터.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대개의 노동은 자아실현과는 동떨어진 고역이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없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데, 어찌 예쁘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예쁘게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 예쁘게 살 수 있을까?
노래는 “우리 때로는 힘이 들고 외롭지만~”이란 구절로 이어진다. 늘 힘이 들고 외로운 것이 아닌, 때때로 힘이 들고 외롭다면 (삶에서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살 만할 것이다. 그런데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몸이 아파도 노동하지 않으면 당장 굶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겐 때때로 힘들고 외로운 것조차 그저 꿈일 수밖에 없다. 암흑의 중세를 물리친 이성의 근대, 곧 자본주의 체제가 이룩해 놓은 결과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예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건 선택이 아닌 조건일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돈이 없다면 인간적인 존중은 말할 것도 없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품위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에선, 낙오자로 취급되기 마련이다. 
예쁘게 세상을 산다는 건 분명 행복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실적 조건이 그렇지 못한데 예쁘게 세상을 살아가라고 훈계하거나 세상의 예쁜 부분만을 떼어내서 보여주는 것은 해악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선 글을 쓰는 행위든지 글을 읽는 행위든지 모두 다소간 고통을 수반하는 불편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본위가 아닌 자본이 본위가 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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