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22) 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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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중국불교유적 순례 (22) 감숙성(甘肅省) 둔황(燉煌) 막고굴(莫高窟) (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1.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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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북벽 시비왕 본생이 보이는 장면
(사진 1)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북벽 시비왕 본생이 보이는 장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을 불전도라고 한다. 석존의 전기를 그린 불전도와 비슷하지만 부처님이 되기 이전 생애 이야기, 즉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전생담(또는 본생담, 자타카, Jataka)이라 한다. 전생담은 부처님 열반 후 그를 기리는 과정에 부처님을 초인간적으로 절대시하면서 나타난 것으로 본다. 당시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여준 깨달음의 경지는 현생의 수행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먼 과거세부터 끊임없이 쌓아온 공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없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없는 선행과 공덕을 그린 이야기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민간에 전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모아 완성된 것이 팔리어로 쓰인 『본생담』이다. 여기에는 석가모니가 석가족의 왕자로 태어나기 이전인 전생에 천인, 국왕, 왕자, 바라문 등으로뿐만 아니라 원숭이, 코끼리, 사슴, 토끼 등의 동물로서의 생을 누리며 행한 다양한 공덕을 다룬 총 547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불교 조각과 그림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인도의 산치 대탑이나 아잔타 석굴,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의 1, 2층 회랑에는 수많은 전생담의 이야기들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생담을 표현한 불교 미술의 예가 아주 드물다. 다만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에 네 장면이 표현된 것과 일본 호류지(법륭사)에 소장하고 있는 다마무시즈시(玉蟲廚子)의 수미좌 양 측면에 마하살타본생과 바라문본생이 그려진 예가 있어서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 등 이른 시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전생담이 미술로 표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2)  북량 때 조성된 제275굴 북벽에 그려진 시비왕 본생도
(사진 2) 북량 때 조성된 제275굴 북벽에 그려진 시비왕 본생도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굴이 만들어지고 불화가 그려진 둔황 막고굴은 중국 불교 회화의 역사관이라 해도 될 정도로 다양한 주제의 불화가 그려졌다. 불화는 시대에 따라 유행한 주제가 달라지는데, 당나라 이전까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인 불전도가 많이 그려졌고, 당나라 때가 되면 불전도보다 경전의 내용을 그린 경변상도가 유행하였다.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가 건국하는 시기까지 둔황이 속한 사주 지역은 절도사 장의조(張議潮)를 거쳐 조의금(曹議金)과 그의 아들들에 통치되는데, 이 시기에 당나라 말기에 주춤했던 석굴 조성이 다시 활발해진다. 이때 자신들이 후원해서 만든 석굴을 장엄하는 소재로 다시 불전도를 선택한다. 이전에 그려진 불전도가 주로 중요한 사건에 초점을 맞춰 그렸다면 이때는 불전도는 배경에 산수와 건축물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당나라 이전과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까지 만들어진 둔황 석굴에는 불전도와 함께 전생도도 그려졌는데, 인도나 인도에서 둔황으로 오는 실크로드 도상에 있는 키질, 베제클릭 석굴 등에 비해 그려진 그림의 수가 적고 주제도 다양하지는 않다. 

(사진 3)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북벽의 시비왕 본생도
(사진 3)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북벽의 시비왕 본생도

 

 막고굴에 전하는 전생담으로는 비릉갈리왕(毘楞羯梨왕), 건니파왕(虔尼婆王), 시비왕(尸毗王), 쾌목왕(快目王), 월광왕(月光王), 살타태자(薩埵太子), 선사태자(善事太子), 수다나태자(須達拏太子), 수도제태자(須闍提太子), 독각선인(獨角仙人), 바라문(婆羅門), 섬자(晱子), 구색록(九色麓) 본생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에 특히 여러 굴에 등장하는 주제로는 시비왕 본생과 살타태자 본생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불도를 구하기 위해 몸에 천 개의 쇠못을 박은 비릉갈리왕, 눈이 먼 백성에게 자신의 눈을 보시한 쾌목왕, 자신의 목을 원하는 이를 위해 목숨을 보시한 월광왕, 게를 듣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설산동자의 이야기인 바라문본생 등과 같이 불법과 보시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내용이다.  

(사진 4)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남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 중 호랑이가 태자의 시신을 먹는 장면
(사진 4) 북위 때 만들어진 제254굴 남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 중 호랑이가 태자의 시신을 먹는 장면

 

먼저 시비왕 본생은 제석천이 비수갈마(毘首羯磨)와 함께 구시국(拘尸國)의 시비왕을 시험하기 위해 제석천은 매로, 비수갈마는 비둘기로 변한다. 매에 쫒긴 비둘기가 대중들 앞에 있던 시비왕의 겨드랑이 아래로 들어가자 매가 비둘기를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시비왕은 자기 품에서 벌벌 떠는 비둘기를 내놓지 않는다. 그러자 매가 자기도 비둘기를 잡아먹지 않으면 죽는 불쌍한 중생인데 왜 비둘기만 불쌍히 여기느냐고 따진다. 시비왕은 비둘기 대신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다. 매가 그 살이 비둘기의 무게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자 저울을 가져와 베어낸 살과 비둘기의 무게를 단다.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자 다시 다리 살을 도려내어 올려놓았는데도 수평이 되지 않는다. 결국 왕의 두 다리와 몸 전체를 저울에 올리고서야 비로소 비둘기의 무게와 같아졌다. 시비왕의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에 찬탄한 제석천과 비수갈마천은 하늘로 돌아가 왕의 몸을 회복시킨다는 이야기다. 

(사진 2) 북주 때 만들어진 제428굴 동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도
(사진 2) 북주 때 만들어진 제428굴 동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도

 

 이러한 시비왕 이야기는 제275굴, 제254굴(사진 1), 제302굴, 제85굴 등에 그려졌다. 북량 때 그려진 제275굴(사진 2)의 경우 반가한 시비왕의 왼쪽 다리 살을 베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북위 때 그려진 254굴의 그림(사진 3)에는 중앙에 시비왕이 자리하고 오른쪽 위에 하얀색 비둘기를 묘사하였고, 275굴에서처럼 시종이 왕의 종아리 살을 베어내고 있다. 종아리 살을 베는 시종 옆에는 하얀색의 매가 표현되었다. 시비왕 주변에는 슬퍼하며 만류하는 대신들의 모습이 의연한 시비왕과 대조된다.  
살타태자 본생도 시비왕 본생 못지않게 가슴이 뭉클한 내용이다. 인도의 한 왕국에 세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그 중 막내가 살타태자이다. 어느 날 두 형과 함께 말을 타고 숲속에 들어갔는데 굶주려 죽어가는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들을 보고 자신의 몸을 주겠다고 결심하고 형들을 궁으로 돌려보낸다. 형들이 돌아가자 옷을 벗어 호랑이에게 먹게 하였으나 기력이 쇠한 호랑이들이 먹지 못 하자 대나무 가지로 자신의 목을 찔러 피를 내고, 절벽 위로 올라가 호랑이 앞에 몸을 던진다.  

(사진 6) 북주 때 만들어진 제428굴 동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도
(사진 6) 북주 때 만들어진 제428굴 동벽에 그려진 살타태자 본생도

 

 이 살타태자 본생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둔황에서는 제254굴, 299굴, 301굴, 428굴, 302굴, 417굴, 419굴, 72굴 등 여러 굴에 표현되었다. 제254굴(사진 4)의 경우 쓰러진 태자의 몸 주위에 달려 붙은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428굴(사진 5)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각 장면이 단순한 형태의 산 모양과 나무로 구획되어 묘사되었는데 전체 이야기는 3단에 S자 순서로 진행된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태자와 떨어진 후 호랑이들이 태자의 몸을 먹는 장면(사진 6)이 한 화면에 그려졌는데, 표현은 단순하지만 그 내용이 지닌 바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코로나 문제로 어려운 오늘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시비왕 본생과 살타태자 본생담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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