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글 - 옷 안 사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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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글 - 옷 안 사 입기
  • 고민정(재가불자)
  • 승인 2020.12.02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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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부턴가 고급 옷과 좋은 가방에 대한 쇼핑이 시들해졌다. 갑자기 ‘이제 젊은 날들은 다 가버린 것인가’ 싶은 불안한 감정도 있었으나 뭔가 시원하고 가벼운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는 옷장을 정리해서 아름다운 가게로 가져가 필요한 이웃들에게 내 옷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지방대학교에 입학하여 교양 과목의 첫 강의를 듣던 때이니 오래 전 일이다. 늦은 나이로 대학에 들어가 등교를 하는데, “윤리학 강의실이 어디죠?”라며 후줄한 바지의 늙은 복학생인 듯한 남자가  말을 붙였다. “내가 마침 가는 곳이예요” 하고는 다소 퉁명하게 대답하고는 앞서 걸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강의실에 들어서자 교탁으로 걸어가 손에 들고 있던 낡은 가죽 가방을 올려놓고 인사를 했다. 한 학기 새로 만난 첫 교수님이었다. 후줄한 바지는 오래되어 각이 뭉개졌고, 오래된 안경과 쟈켓은 대학 새내기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분은 한 벌의 콤비만 즐겨 입었는데, 그것도 독일 유학시절 은사인 교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근 20여년이 넘은 옷이었다. 
그 첫 강의는 한 순간에 나의 허영과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었고,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나의 열등감을 일순간에 지우게 했다. 그 후, 교수님이 이끌고 있던 독서모임에 들어가 함께 많은 책들을 읽었다. 은퇴를 하신 교수님은 지금도 늘 검소한 옷차림을 하고 계시지만, 지금도 ‘삼년간 옷 안 사입기’를 실천하고 계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신이 지금 옷장에 있는 옷만 가지고도 죽을 때까지 입는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코로나19 사태로 집안에 갇혀 있는 날들이 늘다보니 옷장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물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옷 정리를 했지만, 옷은 항상 줄어들지 않았다. 차마 버리지 못한 옷부터 충동적으로 홈쇼핑에서 구입한 옷,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 의례히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몇 벌씩 새로 산 옷들까지. 
우리에게 과연 옷이란 무엇일까? 스님들은 본래 삼의일발(三衣一鉢)이 부처님 재세시부터의 기본적인 계율이었다. 코로나19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많은 옷들이 필요한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젠 정말 옷을 사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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