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족쇄를 풀어줄 창밖의 108要談”17 - 우-조띠까 사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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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족쇄를 풀어줄 창밖의 108要談”17 - 우-조띠까 사야도
  • 황경환 (21세기불교포럼 공동대표, 전 울산불교방송 사장)
  • 승인 2020.12.09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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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환- 21세기불교포럼 공동대표, 전 울산불교방송 사장
황경환- 21세기불교포럼 공동대표, 전 울산불교방송 사장

우-조띠까 사야도께서는 “바쁘지 마십시오. 심신을 이완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십시오. 바쁘다는 것은 제 정신을 잃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다. 붓다께서도 바쁜 것에 대한 경계의 말씀을 “압빠낏죠 짜 살라후까웃띠 살라후까웃띠(Appakicco ca sallahukavutti)”, 즉 바쁘지 말고 단순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다.
우조티카 사야도, 『여름에 내린 눈』중에서

들뜨고 분주한 이 세상의 속성 
고(苦)의 근저에 이것이 있다고 
나는 말하리.
불사(不死)에 깃든 
마음의 평화를 얻어라.
자아(自我)는 잡다한 
구성요소가 모인 무더기일 뿐,
세계는 신기루처럼 공허할 뿐이다.
『참된 길동무』(고요한 소리 발행, 보리수잎 시리즈 38) 중에서

인식(認識)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막론하고 실체 없는 신기루에 비유되어 나타난다(S22:95). 그러므로 우리는 자아(自我)니 진아(眞我)니 영혼(靈魂)이니 일심(一心)이니 하는 잘못된 인식이나 고정관념을 여의고 이런 인식은 참으로 텅 비고 공허하고 실체 없는 것이라고 사무치게 새겨서 필경에는 무상.고.무아임을 꿰뚫어 염오.이욕.해탈을 완성하고 이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열반의 길을 가는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것이다.

‘모른다’와‘바란다’

‘모른다’와 ‘바란다’의 연료가 연기(緣起)를 끝없이 회전시킨다. 세간의 역겨운 비린내가 내 코에 들어오면 출세간의 문은 내 발 앞에 당도하고, 세간의 속된 것들이 향기가 되어 내 코가 현혹되면 불타는 화백이 나의 궁전이라네.
염오.이욕.소멸.해탈.해탈지견(厭惡.離慾.消滅.解脫.解脫知見)은 ‘모른다’와 ‘바란다’의 원인과 조건이 결합한 연기(윤회)의 바퀴를 멈추게 한다. ‘모른다’는 무명(無明)이고, ‘바란다’는 갈애(渴愛)와 취착(取著)이라네.
부처님께서는 이 연기(윤회)의 회전을 멈추게 하는 도구를 계.정.혜 삼학의 팔정도(八正道)로 설명하셨다.

ㅡ장부경전 대품 제15, 대인연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연기의 이치를 꿰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얽히게 되고, 베 짜는 사람의 실타래처럼 엉클어지고, 문자 풀처럼 엉키어서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깔라마 숫따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추론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다 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 받아들이지 마라. 
『깔리마 숫따』(A3:65)

부처님 재세시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믿음들의 종파를 가지고 나름대로 수행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전에 의하면 그 종파의 수가 무려 60여 개에 달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어떤 가르침과 어떤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이요, 법이라고 할까에 대한 의구심은 당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 꼬살라 국의 깔라마 마을에서 깔라마 인들에게, 부처님께서 여기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말씀하신 내용이 깔라마 숫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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