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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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2.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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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梅에 이르러서는, 會中의 高僧 七百 중에서, 오직 負舂居士가
한 수의 偈를 지으니, 의발을 傳하여, 6代 祖師가 되었다.

 

三傳ᄒᆞ야 而至黃梅ᄒᆞ야 會中高僧七百에 惟負舂居士╷ 一偈예 傳衣ᄒᆞ야 爲六代祖ᄒᆞ야 【諺解】 세 번 傳ᄒᆞ야 【세 번 傳허ᄆᆞᆫ 三祖와 四祖와 五祖왜라】 黃梅예 니르러 【黃梅ᄂᆞᆫ 五祖ㅅ 道場이라】 會中 高僧 七百에 오직 負舂居士╷ 【負舂ᄋᆞᆫ 돌 지고 바ᇰ하 디흘시라】 ᄒᆞᆫ 偈예 오ᄉᆞᆯ 傳ᄒᆞ야 六代祖╷ ᄃᆞ외야 ((혜가대사에서 다시) 세 번 전하여 【세 번 전함은 三祖와 四祖와 五祖이다.】, 黃梅에 이르러 【황매는 五祖의 도량이다.】 會中의 高僧 칠백에 오직 負舂居士가 【負舂은 돌을 지고 방아를 찧는 것이다.】 한 偈에 옷[法衣]를 전하여 (받아서) 육대 祖師가 되었다.)
三傳ᄒᆞ야 而至黃梅ᄒᆞ야 會中高僧七百에 惟負舂居士╷ 一偈예 傳衣ᄒᆞ야 爲六代祖ᄒᆞ야 【諺解】 세 번 傳ᄒᆞ야 【세 번 傳허ᄆᆞᆫ 三祖와 四祖와 五祖왜라】 黃梅예 니르러 【黃梅ᄂᆞᆫ 五祖ㅅ 道場이라】 會中 高僧 七百에 오직 負舂居士╷ 【負舂ᄋᆞᆫ 돌 지고 바ᇰ하 디흘시라】 ᄒᆞᆫ 偈예 오ᄉᆞᆯ 傳ᄒᆞ야 六代祖╷ ᄃᆞ외야 ((혜가대사에서 다시) 세 번 전하여 【세 번 전함은 三祖와 四祖와 五祖이다.】, 黃梅에 이르러 【황매는 五祖의 도량이다.】 會中의 高僧 칠백에 오직 負舂居士가 【負舂은 돌을 지고 방아를 찧는 것이다.】 한 偈에 옷[法衣]를 전하여 (받아서) 육대 祖師가 되었다.)

 

【解說】 ⑴ 三傳: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보리달마께서 혜가대사로 전하고, 제2조 혜가대사로 부터, 제3조 승찬대사(僧璨)로, 다시 제4조 도신대사(道信)로, 또 다시 제5조 홍인대사(弘仁)로 3차례 전해진 것을 말한다. 
⑵ 黃梅: 第5祖 弘忍大師이다. 속세의 성은 周이다. 7세에 道信선사에게 출가하여 13세에 승려가 되었고, 651년에 도신선사의 법통을 이어 받았다. 그는 雙峰山 동쪽의 馮茂山에 道場을 만들어 東山寺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의 禪學을 ‘東山法門’ 혹은 ‘黃梅禪’으로 불렀다. 제자로는 法如, 神秀, 惠能 등이 있었고, 그의 법통은 육조 혜능에게 전해졌다.
⑶ 會中: ‘會(본문참고)’는 『說文解字』에서는 “合也。从亼,从曾省。曾,益也。(합하는 것이다. 亼을 따르고, 曾의 생략형을 따른다. 曾은 더한다는 뜻이다.)”라고 한다. 이 때 ‘从曾省’에서 ‘曾’은 ‘增’의 假借字이므로 ‘會’는 “모으고(亼) 더한다(曾)”는 뜻이라고 한다. ‘曾祖, 曾孫’ 등에 ‘益(더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그 예이다. 
또 亼과 口 사이에 물건이 가득 찬 모습을 그린 것으로 ‘會合’이 본의라고 하거나, 뚜껑(亼)과 그릇(口) 사이에 잘게 썬 고기가 있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 ‘膾’의 본래글자라고도 한다.
위에서 ‘會’는 ‘모으고 더하는 것’과도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會社’라는 단어도 본래 ‘토지신(社)에게 제사(示)를 지니기 위한 모임(會)’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므로, 이곳의 ‘會’도 ‘불법을 닦기 위한 모임’인 것이다.
⑷ 僧: 승가(僧迦)는 산스크리트어의 상가(saṃgha)의 음역이다. 『說文解字』에 의하면 ‘僧(*/*/     )’은 “浮屠道人也. 从人曾聲.   (부처를 믿는 사람. [뜻은] 人을 따르고 소리는 曾이다.)”이라 하였다. 즉 ‘僧’이라는 글자는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뒤, 순전히 부처를 믿는 사람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이 글자의 소리는 ‘曾’을 따랐고, 그가 사람이기 때문에 ‘人’을 붙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리부(聲符)인 ‘曾(본문참고)’은, 위에서 설명한 ‘增’의 假借字라는 說외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떡을 찌는 시루의 모양’으로 오늘날 ‘甑(시루 증)’의 본래글자라는 설이 있다. 즉 小篆을 기준으로 본다면, 아래는 솥의 모양을, 중간은 떡을 앉힌 모습을, 위는 김이 시루 위로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saṃgha’의 소리를 빌려 글자를 만들었다면 소리가 같거나 유사한 것이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필 ‘僧’을 써서 나타내었을까? 필자는 시루 속에서 뜨거운 김으로 떡을 찌듯 그렇게 어려운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어디에서도 그 근원을 찾을 수 없으며, 결코 확신할 수도 없으나, 그렇다고 달리 추정할 방법도 찾을 수 없다. 
아래에서는 평소 생각해 본 적이 있는 ‘佛’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설명해 본다.
佛: 『說文解字』에 의하면 ‘佛’은 “見不審也. 从人弗聲. (자세히 변별할 수 없다. [뜻은] 人을 따르고 소리는 弗이다.)”라고 하였다. 즉 이 글자는 뜻을 나타내는 ‘人(사람 인)’과 소리를 나타내는 ‘弗(아닐 불)’을 합쳐 만들어진 형성자로, 원래 ‘仿’과 함께 쓰여 ‘방불(彷佛)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였다.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고 나서는 ‘buddha’를 음역하기 위하여 이 글자를 빌려 써서 ‘불타佛陀(부도浮屠)’라고 표현하다가, 줄여서 ‘佛’만으로 ‘부처’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buddha’의 소리를 빌려 글자를 만들었다면 소리가 같거나 유사한 것이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필 ‘佛’을 빌려 썼을까? 어떤 이는 ‘부처님은 사람인 듯(人), 사람이 아닌 듯(弗)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는 ‘弗’의 본의가 아니다. 즉 ‘弗(본문참고)’은 ‘끈으로 사물을 단단하게 묶은 모양’을 그린 것으로 ‘바로잡다(矯正)’가 그 本義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한다면, ‘부처님은 사람(人)을 바로잡는(弗) 분’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筆者의 생각이지만 그럴듯하지 않은가?
⑸ 舂(찧을 용): ‘春’과는 다른 글자이다. ‘舂(본문참고)’은 ‘두 손(廾)으로 절구공이(杵저)를 쥐고 절구(臼구) 안에 있는 쌀을 찧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 本義는 ‘쌀을 찧다’라고 할 수 있다.
⑹ 偈: ‘偈’는 梵語 ‘가타(gātha)’의 音譯인 ‘偈陀(伽陀)’에서 유래했다. 흔히 이것을 ‘偈頌’이라고 하는데, ‘頌’은 ‘gātha’의 義譯(意譯의 잘못이다)이다. 그러므로 ‘偈頌’은 梵語와 漢語를 함께 쓴 것으로, 이것을 華梵雙唱이라고 부른다. ‘偈’는 운문으로 ‘經典’의 교리나 부처님의 功德을 기리는데 쓰는 시이다. 그 글자 수와 글귀의 수에는 규정이 있어 3자~8자를 一句로 하고 四句를 1偈頌으로 한다.
 ⑺ 華梵雙唱의 방식을 살펴본다. ‘가타(gātha)’의 音譯은 ‘게타偈陀(가타伽陀)’이고, ‘디야나(dhyana)’의 음역은 ‘선나(禪那)’이다. 지금이야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지만, 불교가 중국에 막 전래되었을 때, ‘偈陀(伽陀)’나 ‘禪那’라고 쓰면, 그것이 비록 한자로 쓰여 있지만, 중국인조차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중국어로는 어떤 것에 해당한다고 義譯한 글자를 더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音譯에 義譯한 글자를 더하여 ‘偈陀頌’과 ‘禪那定’과 같이 쓴다면, 二音節이나 四音節과 같이 짝수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중국어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음역한 글자를 줄이고 의역한 글자를 더하여 ‘偈頌’이나 ‘禪定’과 같이 한다. 잘 아는 ‘般若智慧’는 四音節을 맞춘 것이다.
상기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언해의 해석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한다.
【飜譯】[慧可大師로부터 다시 3祖 4祖 5祖 등에게] 세 차례 전하여, [5祖의 도량인] 黃梅에 이르러서는, 會中의 高僧 七百 중에서, 오직 [돌을 지고 방아를 찧은] 負舂居士가 한 수의 偈를 지으니, [五祖께서] 의발을 傳하여, 6代 祖師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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