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밖의 세상 ⑮ - 아, 정말 이국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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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밖의 세상 ⑮ - 아, 정말 이국적이네요!
  •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 승인 2020.12.23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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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치유해요. 
더 좋은 곳을 만들어 봐요. 
당신과 나,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살아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당신과 날 위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봐요.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노래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워한다는 <Heal the World>의 후렴구다. 안타깝게도 자신이 꿈꿨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내가 마이클 잭슨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에 다닐 때 텔레비전에서 방송한 <Beat It>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그 때만 해도 난 마이클 잭슨을 ‘예쁘장하게 생긴’ 흑인 정도로만 알았다. 
그 뒤, 마이클 잭슨이 자신의 형들과 함께 ‘잭슨 파이브’에서 활동했을 때의 앳된 얼굴을 보니 그는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그 때는 단지 마이클 잭슨이 커가면서 얼굴이 바뀌었나 보다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비례가 맞지 않는 인형 같은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가 꾸준히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백인이 되고 싶어 했든 그렇지 않았든, 수술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납작한 코와 펑퍼짐한 얼굴을 오똑한 코와 갸름한 얼굴로 바꾸었던 것이다. 곧, 백인의 가치 척도를 내면화해 자신을 핍박하고 억압했던 백인을 닮아갔던 셈이다. 
이진경 교수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신대륙 발견’을 꼽는다. “평화로운 삶과 하나가 된 위대한 사상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혹은 마야나 아즈텍 등의 거대한 문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유럽인(……)에 의해 때론 노예적 삶으로, 때론 전쟁으로, 때론 사기와 강탈로 몰살당했”다며 ‘신대륙 발견’이란 말을 “신대륙의 강탈·신대륙의 몰살·신대륙의 처형”(「아메리고 베스푸치, 신대륙에 도착하다」)이라고 바꾸고 싶다고 한다. 

신대륙 발견이란 신대륙의 강탈, 신대륙의 몰살, 신대륙의 처형으로 바꿔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신대륙 발견이란 신대륙의 강탈, 신대륙의 몰살, 신대륙의 처형으로 바꿔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반면 슈테판 츠바이크는「태평양을 처음 발견한 건달 발보아」에서 일개 건달에 불과한 발보아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추장의 도움으로 태평양을 보게 되는 광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바다, 지금까지 꿈만 꾸었을 뿐 아무도 보지 못한 전설의 바다, 여러 해 전부터 콜럼버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찾아 헤맸지만 찾지 못한 바다, 아메리카, 인도, 중국에서도 같은 파도가 넘실대는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덧붙여 “1513년 9월 25일, 비로소 인류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지구상의 마지막 대양을 알게 된 것이다”(『광기와 우연의 역사』)라고 쓰고 있다. 
잠시 생각해 보자.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자신이 앞에 쓴 “아메리카, 인도, 중국에서도 같은 파도가 넘실대는 거대한 바다”는 이 지구상에 없는 곳이란 말인가! 또한 아메리카, 인도, 중국에 사는 사람들은 인류가 아니란 말인가! 백인들의 침략으로 인해 90퍼센트에 가까운 원주민이 몰살당했고, 그나마 살아 남은 이들은 ‘보호구역’에 갇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살아가게 되었다. 그 뒤 제국주의에 이르기까지 백인들이 저지른 온갖 만행을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백인의 시선으로 황색인 우리를 보고, 서구 문화의 관점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평가한다.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

텔레비전에서 아기자기하게 예쁜 집이나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초록 들판을 보면 우리는 한마디씩 하곤 한다. ‘이야~ 꼭 동화 같다.’ 그런데 그런 풍경은『알프스 소녀 하이디』나『플란더스의 개』에서 본 것 아니던가. 곧 외국 동화에서나 본 것일 뿐 우리나라 동화엔 그런 풍경이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고 권정생 선생의『강아지똥』이나『몽실언니』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동화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강아지똥』이나『몽실언니』의 어느 곳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가. 
한국 아동문학의 선구자격인 방정환이나 현덕의 작품에서부터 지금 초등학생들의 글에 이르기까지 ‘동화 같은’ 장면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의 어느 동화가 소들이 들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푸른 물결 출렁이는 곳에서 풍차가 도는 장면을 그리는가. 세계 각지의 풍광과 주민들 생활을 전해 주는 프로그램에서 여행객이자 리포터가 외국 풍경을 보고 대뜸 하는 말은 백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우리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 정말 이국적이네요!” 이 얼마나 웃지 못할 코미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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