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연말 엉터리 운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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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연말 엉터리 운수 보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0.12.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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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 _ 시인, 본지 객원기자
김승범 _ 시인, 본지 객원기자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이다. 경자년 쥐의 해가 저물고 신축년 소의 해를 앞두고 있다. 소라고 하니 불쑥 정지용의 ‘얼룩백이 황소’가 떠오른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 ⌜향수⌟ 1연

마지막 연에는 명절풍속을 넣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외우고 싶은 명시다. ‘금빛 게으름’은 애매하여 개념이 잡힐 듯 말 듯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며 아삼아삼해진다. 한해가 벌써 아니, ‘벌써?’이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어느새 달력의 마지막 장이 달랑거리고 있다. 하지만 마냥 아쉬워 할 일만은 아니다. 개인의 삶이나 나라의 삶이나 다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하기도 하다.
뒤돌아보니 아웅다웅했어도 그래도 살만했었다. 지금 당장 힘든 사람들은 생각해보라. 어제 죽은 이들이 얼마나 살고 싶어 했던 ‘오늘’인가. 이렇게 좋은 오늘을 두고 마냥 후회하며 살아가기에는 억울하지 않은가. 아무튼, 기쁜 오늘 힘내고 파이팅! 하자. 머지않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번 겨울에도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다는 것, 올해의 축복인 것이다. 
일본 시인 ‘이싸’가 노래한 하이쿠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게 물리다니.”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에도 모기에게 물릴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요즘 명리학 공부를 다니고 있어서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추미애와 윤석열에 대해서 엉터리 사주풀이를 한번 해본다. ‘추미애’는 추하지만 아름다운 면이 있고 애처롭기도 하다. ‘윤석열’은 윤기가 나지만 석두처럼 성질도 있고 고집스럽다. 열정이 지나쳐 결국은 꺾일 것이다. 추미애와 윤석열이 왜 이렇게 싸우는지, 이젠 오히려 정이 들었을 법도하다. 미운 정? 고운정? 애증의 정? 가만 들여다보면 전생에 부부였을지도···. 
사람과 바람의 물결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이니, 세인들은 걱정하지 말고 “다 지나가리라” 하고 기다리면 될 일이다. 나라의 운이 쇠하고 어지러워도 때가 되면 영웅이 나타나게 돼 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이순신 같은 영웅이, 우리나라를 제대로 안정시키고 발전시킬 위대한 인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과히 걱정하지 마시고 하얗게 쏟아지는 눈이라도 감상하며, 뜨거운 군고구마 호호 불며 한 입 베어 먹으며 ‘소확행’이라도 찾기를 바란다.
석용산 스님의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 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젊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오순도순 살다가 예쁜 딸을 낳았다. 그 딸이 첫돌을 지나 말을 배울 때, 엄마는 아기를 어르며 물었다. “예쁜 딸아! 너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나의 딸이 되었니?” 엄마의 물음에 아기는 놀랍게도 또렷하게 대답을 했다. “저는 전생에 엄마의 계집종이었는데, 심부름을 시킬 때마다 심부름 값을 준다 하고 주시지 않아, 그것이 업이 되어 돈 받으러 나왔지요.” 깜짝 놀란 엄마는 장난 반 의심 반으로, 돈 두 푼을 아기 이마에 올려놓으니 아기는 그 길로 죽고 말았다. 우화같이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모르니, 타인을 대할 때는 항상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화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쌀쌀한 날씨 속에 갇힌 한라산의 눈도 보이고, 소나무 사이로 아직 다 못 딴 귤을 매단 귤나무가 보인다. 필자도 귤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는 밥 빌어다가 죽도 못 쒀먹을 지경이다. 귤 값이 좋지 않아 아직 다 따지도 못했는데, 귤 값은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올해는 수확해도 ‘파치’값이요, 안 따면 나무에서 썩을 판이다. 아내도 힘들게 해봤자 고생만 하는데 내년에는 아예 귤 농사를 짓지 말자고 부추긴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다. 나도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 지금까지 몇 컨테이너 따서 팔았지만, 고작 십삼만 원 벌었다. 이참에 주위에 인심이나 쓰자고 오십 박스는 무료로 지인들한테 보냈다. 귤값 보다 택배비가 더 들고 귤 값이 쌀 때 보내주면 고맙다는 생각도 덜 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늘 해오던 고마움의 표시라 택배를 부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겁다. 참 농사 해먹겠다. 내년에는 귤 농사 접고 빌려주려고 했더니 연 오십만 원 준단다. 이걸 어떡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은행에 갔더니 ‘디디알’인가 뭔가 태워야 된다고 하고, 그렇게 한다고 해도 대출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소득증명원을 떼어 오라고 하니 기가 막히다. 일 년에 십삼 만원 벌었다는 영수증을 갖다 주랴? 참 그것도 없다. 현찰 받은 것도 있고 하니 통장에 아마 삼만 원쯤 찍혀있을 거다. 아무튼 우라질 세상이다. 이삼십 년 빌려 쓰고 갚고 하면서 단 한 번도 이자를 밀려 본 적도 없는데, 이제 와서 증빙을 내놓으라니? 그동안 근근하게 농사가 잘 될 때도 있었고, 가끔 땅과 집을 운용하여 돌리면서 세금도 잘 내고, 은행이자 꼬박꼬박 갚아서 한 푼 밀린 적이 없건만, 이젠 은행을 조이니 나라가 원망스럽다. 그렇다고 살 사람도 없는 땅을 한 평씩 잘라서 팔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은행 문을 나오면서 직원에게 한마디 했다. “굶어죽으렌 햄쑤과?” 
국민은 영 죽을 맛인데…. ‘추하다 추미애, 윤석열, 참 아시덜이라시민 그만 싸우라 덜, 영 고라시믄 좀직허다.’ 둘만의 싸움인지, 검찰 저항의 프레임인지?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우직한 얼룩백이 황소를 생각해본다. 내년은 올해보다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우직한 황소걸음을 그 누가 막으랴? 퇴고하는 걸 바라보고 있는 아내한테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고구마나 쏠망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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