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밖의 세상 (16) - 끝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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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밖의 세상 (16) - 끝만 좋으면 다 좋은 것인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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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박인수 _ 자유기고가(비정규직 노동자)

갑돌이와 을식이가 죽어서 함께 염라대왕 앞에 갔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너희는 살아서 잘못을 얼마나 했느냐?”
갑돌이는 자신은 잘못을 너무 많이 했다고 했고, 을식이는 자신은 잘못한 게 별로 없다고 했다.
염라대왕은, 갑돌이에게는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고, 을식이에게는 작은 돌멩이를 한아름 주워 오라고 했다.
갑돌이는 커다란 돌덩이를 낑낑대며 힘들게 가져 왔지만, 을식이는 작은 돌멩이 한아름을 비교적 수월하게 주워 왔다. 
둘은 다시 염라대왕 앞에 앉았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수고들 했다. 이제 그 돌을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라.”
갑돌이는 커다란 돌덩이를 가져온 자리가 기억나서 힘들었지만 금방 제자리에 가져다 놓은 반면, 을식이는 작은 돌멩이를 여기저기서 주워 온 터라 각각의 돌멩이를 주운 자리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앞 중화요리집에서 조촐한 모임을 가졌을 때, 우리의 초대에 응해 주신 고2 때 담임선생이 해 주신 말씀이다. 담임선생은 이야기를 끝맺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느 쪽이 되고 싶니?”

박정희 시대 성장제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대한 저항에는 탄압으로 일관했다.
박정희 시대 성장제일주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대한 저항에는 탄압으로 일관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담임선생은 칠판에 ‘유종의 미’라고 크게 써 놓고는 뜻을 설명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그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으나 마음 한쪽엔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한참 지나 생각해 보니, 그 때 담임선생의 말은 절차와 과정이 어찌 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결과주의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종의 미‘란 본래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잘하여 맺은 좋은 결과‘ 또는 ’일단 시작한 일은 끝까지 마무리를 잘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그 뜻이 어떻게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 와전된 것일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만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언젠가 TV프로그램 <1박2일>에서 ‘복불복’이란 것을 보고 무척 놀랐는데, 더욱 놀랐던 것은 비록 오락 프로그램이지만 그런 행위를 보고 사람들이 마냥 웃는 것에 있었다. 복불복은 이제까지의 절차와 과정을 모두 무시하는 그야말로 비민주적인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곧, 이제까지 9번을 이겼어도 마지막 10번째 ’복불복 게임‘에서 진다면 결국 최종적으로 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배나 가중된 벌칙을 받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선생도 그렇고, <1박2일>에서 ’복불복 게임‘을 고안해낸 이도 그렇고, ’복불복 게임‘을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보는 시청자도 그렇고, 그 밑바탕에는 한국 사회가 1960~70년대 개발독재로 이룩한 고도성장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승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한 것과 맥을 같이 하여 박정희는 경제 개발 논리를 앞세워 부정축재자들에게 공업화 추진의 책임자 자리를 맡긴다. 1960~70년대의 고도성장은 기업에 대한 막대한 양의 특혜와 공해 산업(과 처리) 눈감아주기, 그리고 노동자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과정을 무시한 성장 제일주의가 사람들 피부 깊숙이 스며들어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해괴한 논리를 주장한다든가 ’복불복 게임‘을 고안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러스트 | 박건웅
일러스트 | 박건웅

 

다시 저승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쯤 을식이는 자신이 주운 돌멩이들을 모두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을까, 아니면 아직까지 돌멩이 주운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까. 적어도, 을식이는 돌멩이의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의 잘못조차 알지 못했던 태도를 반성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나 잘못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태도다. 
유종의 미의 참뜻은 결코 끝만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면 우선 시작이 중요하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 2021년 새해 결심이 이미 작심삼일로 끝나버렸는가? 그럴지라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실패했다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자긍심을 가지면 된다. 우리는 거듭 실수하며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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