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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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6]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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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 위거(韋璩)가 法海禪師에게 命하여, 발타라(跋陀羅) 예언과
혜능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 그것을 제목 붙여 법보단경(法寶壇經)이라고 하였다.

 

南遯十餘年이리시니 一旦애 以非風幡動之機로 觸開印宗正眼ᄒᆞ시니 
【諺解】 南 녀긔 열나ᄆᆞᆫ ᄒᆡᄅᆞᆯ 수멧더시니 ᄒᆞᄅᆞᆺ 아ᄎᆞᄆᆡ ᄇᆞᄅᆞᆷ과 幡괘 뮈디 아니ᄒᆞᄂᆞᆫ 機로 印宗 正眼ᄋᆞᆯ 다텨 여르시니 【印宗ᄋᆞᆫ 法師ㅅ 일후미라】(남녘에서 여남은 해를 숨어 있으시더니, 하루아침에 바람과 번(幡)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機緣으로 印宗의 바른 안목[正眼]을 다치어(건드려) 여셨다(열어 주셨다) 【印宗은 法師의 이름이다.】)

【解說】 ⑴ ‘遯’은 ‘달아나다. 피하여 숨다’라는 뜻이다. ‘遯’은 『說文解字』에 의하면 “逃也. 从辵从豚.”라고 하였다. 흔히 ‘달아나다’라는 뜻의 글자로는 ‘逃’를 常用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굳이 僻字인 ‘遯’을 쓴 이유가 있을까? ‘遯’은 ‘从辵从豚’로서 ‘사거리(行)의 왼쪽 면(彳)에 발(止)이 놓인 辶(辵)’과 ‘豚(돼지 돈)’이 합쳐진 글자이다. 즉 글자의 모양으로 유추하건데 돼지가 길거리에서 발로 도망가고 있는 모양을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大’가 본래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그림으로써 ‘크다’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반드시 사람이 큰 것만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려진 사물과 전혀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즉 일반적으로 ‘炊’는 ‘불을 부는 것’에 사용하고, ‘吹’는 악기를 부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6祖 혜능스님께서 5祖 弘忍대사에게서 衣鉢을 받아 도망하여 남녘에서 10여년을 숨어 지내는 것이 마치 돼지가 도망하여 숨어있는 것과 같은 신세였다는 의미가 그 단어에 內在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⑵ ‘十餘年’은 11년보다 많고 20년보다 적은 것을 나타낸다. 만약 10년보다는 많고 11년보다는 적은 것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十年餘’라고 써야 옳다. 
⑶ ‘一旦’은 ① ‘하루아침’ ② ‘어느 때’ ③ ‘잠시, 잠깐’ 등의 뜻이 있으며, 여기서는 ①과 ②를 참조하여 ‘어느 아침’으로 해석한다.
⑷ ‘機’는 ‘機緣’을 나타내며, 機緣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희구하는 동기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도통하는 사람은 그 사람 마음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응하는 機가 있기 때문이다. 불법을 받을 인연이 그 사람에게 본래 있었다는 뜻으로 기연이라 한다. 
⑸ 觸開’는 動補구조의 복합동사나 連動詞로 간주할 수 있다. ① 動補구조의 복합동사라고 한다면 ‘觸’은 ‘건드려 움직이다’라는 뜻이 되고, ‘開’는 그 결과가 열린 것이 되므로, ‘그 결과가 활짝 열리도록 촉발시켜주었다’라는 의미가 되며, ② 連動詞라고 한다면, ‘촉발시켜 열어주셨다’라는 의미가 된다.
諺解는 그것을 連動詞로 보고 “印宗 正眼ᄋᆞᆯ 다텨 여르시니 (印宗의 바른 안목[正眼]을 다치어(건드려) 여셨다(열어 주셨다))”라고 해석하였다. 언해의 해석대로라면 ‘건드린(觸)’ 者도, 열어준(開) 者도 혜능대사이지만, 동보구조로 해석한다면, 건드린 者는 혜능대사이지만, 열린 것은 印宗의 바른 안목[正眼]이 된다. 여기에서는 後者를 따라 해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언해의 해석을 아래와 같이 수정한다.
【飜譯】남녘에서 10여년을 숨어 있으시더니, 어느 아침에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幡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機緣으로, 印宗[法師]의 바른 眼目(正眼)을 촉발시켜 열리게 해주셨다. 

 

居士╷ 由是로 祝髮登壇ᄒᆞ야 應跋陁羅懸記 ᄒᆞ야 開東山法門ᄒᆞ시니 
【諺解】居士╷ 일로브터 머리 갓가 壇의 올아 【壇ᄋᆞᆫ 戒 니ᄅᆞ는 ᄯᅡ히라】 跋陀羅ㅅ 먼 記ᄅᆞᆯ 應ᄒᆞ야 東山法門을 여르시니 【東山ᄋᆞᆫ 五祖 겨시던 뫼히라】 (居士가 이로부터 머리를 깎아 壇에 올라 【壇은 戒를 이르는(말하는) 곳이다.】 발타라(跋陀羅)의 먼 예언[記]을(에) 응해서 東山 法門을 여셨다【東山은 五祖가 계시던 산이다.】)

【解說】 ⑴ ‘祝髮’은 ‘剃髮하다(머리털을 자르다)’라는 뜻으로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⑵ ‘懸記’는 부처가 먼 미래의 修行者가 이룰 證果(깨달음의 결과)나 成佛할 것을 기록한 예언을 말한다. 龍樹菩薩이 出世할 것을 예언한 것 따위가 있으며, 예언을 두루 이르는 말로 쓴다. 
발타라(跋陀羅)의 먼 예언[記]이란, “其戒壇ᄋᆞᆫ 乃宋朝求那跋陁羅三藏이 創建立碑曰호ᄃᆡ 後에 當有肉身菩薩이 於此애 受戒ᄒᆞ리라 ᄒᆞ시고 (그 戒檀은 宋朝의 구나발타라삼장(求那跋陀羅三藏)이 創建한 것으로, [그 때] 碑를 세워 말하기를, ‘後日에 반드시 한(어느) 肉身菩薩이 여기에서 戒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셨다.)”을 말한다. 즉 육조께서는 法性寺 戒壇에서 계를 받으셨는데, 발타라가 그 戒壇을 창건하고, 肉身菩薩이 수계할 것을 예언한 것을 말한다. 
⑶ 東山: 五祖弘忍 대사께서 蘄州 黃梅縣의 黃梅山에 주거하셨다. 그 산이 縣의 동쪽에 있으므로 東山이라 이르며 五祖의 法門을 칭하여 東山의 法門이라 한다.
상기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언해의 해석을 아래와 같이 확정한다.
【飜譯】居士는 이로 말미암아 머리를 깎고 壇에 올라(계를 받아), 跋陀羅의 예언에 符應하여 [五祖가 계셨던 東山에서] 東山法門을 여셨다. 

 

韋史君이 命海禪者ᄒᆞ야 錄記語ᄒᆞ야ᄂᆞᆯ 目之曰ᄒᆞ샤ᄃᆡ 法寶檀經이라 ᄒᆞ시니라 
【諺解】韋史君이 海禪者ᄅᆞᆯ 命ᄒᆞ야 그 말ᄉᆞᄆᆞᆯ 記錄ᄒᆞ야ᄂᆞᆯ 일후믈 니ᄅᆞ샤ᄃᆡ 法寶壇經이라 ᄒᆞ시니라 (韋史君이 海禪者에게 명하여 그 말씀을 기록하거늘 이름을 이르시되, ‘法寶壇經’이라고 하신 것이다. 

【解說】⑴ ‘韋史君’은 韶州 太守 韋璩이다. 史君은 보통 使君이라고도 쓰며, 太守의 異名이다. 
⑵ ‘海禪者’는 대사의 법을 이은 韶州 法海선사를 말한다. 
⑶ 錄記語: 언해는 ‘錄記語’를 “그 말ᄉᆞᄆᆞᆯ 記錄ᄒᆞ야ᄂᆞᆯ(그 말씀을 기록하거늘)”이라고 해석하여, 마치 ‘錄記’를 ‘기록하다’라는 동사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기록하다’라는 뜻은 ‘記錄’라고 씀에도 불구하고 굳이 ‘錄記’라고 순서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언해가 해석한 것과 같이, ‘記’는 동사 ‘錄’과 함께 써서 ‘錄記’라는 병렬구조의 복합동사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記語’와 같이 쓰여, 명사 ‘語’ 앞에서 限定語(관형어)가 되어, ‘예언의 말씀’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까? 아니면 ‘記’와 ‘語’가 각각 ‘예언’과 ‘말씀’을 나타내는 것일까?
사실 ‘記’가 동사로 ‘기록하다’라는 의미일 때는 그것의 목적어로 ‘言’을 써서 ‘記言’이나 ‘記說’이라고 쓰이는 예는 사전에서 찾을 수 있지만,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記語’라는 말은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錄記語’에서의 ‘記’는 위의 ‘應跋陁羅懸記語’에서와 같이 명사로 ‘예언’을 나타내는 것이며, ‘語’는 혜능 스님의 법문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기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언해의 해석을 아래와 같이 수정한다.
【飜譯】[그 때에] 韋使君이 海禪者(法海禪師)에게 命하여, [발타라(跋陀羅)] 예언과 [6조 혜능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 그것을 제목 붙여 法寶壇經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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