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 생로병사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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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 생로병사의 고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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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시인, 수필가
곽경립시인, 수필가

중국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1~761)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살던 시기에 활동했던 저명한 시인이었습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왕유의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라고 평했듯이 왕유는 뛰어난 화가인 동시에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비파연주의 명인이었습니다. 또한 명나라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왕유를 문인화의 시조, 즉 중국 남종화의 시발점이라고 했습니다. 후인들은 선종禪宗의 지침서인『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 마힐摩詰을 자신의 자字로 삼고, 불교의 선취사상을 자연풍광으로 끌어들여 정취情趣와 선禪의 심오한 경계를 시적언어로 표현한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불렀습니다. 세속적 다툼에서 벗어나 자연에 묻혀 한적한 생활 속에 청정심淸淨心을 고양하고 재가자在家者로서 붓다의 길을 따르고자 했던 왕유의 선취사상禪趣思想이 담긴 시 한편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삶의 본질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秋夜獨坐(추야독좌)  가을밤 홀로 앉아

獨坐悲雙鬢(독좌비쌍빈)   홀로앉아 흰머리 늘어감을 슬퍼하니
空堂欲二更(공당욕이경)   텅 빈 마루에 밤은 이경이 되어간다.  
雨中山果落(우중산과락)   비는 내리고 산 과일열매 떨어지는데
燈下草蟲鳴(등하초충명)   등잔불 밑에서 풀벌레 울고 있구나. 
白髮終難變(백발종난변)   흰 머리 검게 변하기는 어려운 일
黃金不可成(황금불가성)   쇠를 가지고 황금을 만들 수도 없다.
欲知除老病(욕지제노병)   생로병사의 고통 없애는 법 알고 싶다면
惟有學無生(유유학무생)   오직 무생의 이치를 배워 깨달을 수밖에

왕유에게 자연은 자기수양의 과정을 밟아가는 방편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연에서 자아를 체득하고 인식된 사실들을 시어로 재현함으로써 갈등과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왕유의 자연시중에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불가에 심취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불교적 경지를 담은 시들이 많습니다. 
윗시 또한 그러한 시중에 하나입니다. 왕유王維는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비는 내리는데 산속에 과일은 저절로 떨어지고, 가을 풀벌레는 계절의 순환을 느끼는 듯 울고 있습니다. 우주공간의 모든 실체는 우리가 보고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조금씩 변해 갑니다. 그러기에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의 존재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변해가는 무상無常의 중심에서 시인은 생로병사의 고뇌를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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