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南嶽과 靑原이 시중들기를 가장 오래도록 하였으며,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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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南嶽과 靑原이 시중들기를 가장 오래도록 하였으며,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진하였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2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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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如 안재철 교수의 육조법보단경 읽기 [8]

 

 

 

惟南嶽과 靑原괘 執侍最久ᄒᆞ야 盡得無巴鼻

【諺解】오직 南嶽과 靑原괘 뫼ᅀᆞ오미 ᄆᆞᆺ 오라 귿고 업소ᄆᆞᆯ 다 得ᄒᆞᆫ 젼ᄎᆞ로 ((그 중) 오직 南嶽과 靑原의 모심이 가장 오래어 그릇의 손잡이 없음[無巴鼻]을 다 얻은 까닭으로,)
 

【解說】⑴南嶽:南嶽懷讓(677~744)을 가리킨다. 唐 金州 安康 사람으로 속성은 杜씨이다. 六祖스님을 섬긴지 15년이 지나 남악 반야사에 들어가 30년을 교화하여 크게 선풍을 떨쳤다. ①남악회양(南嶽懷讓)의 문하에서 洪州宗의 마조도일(馬祖道一) ➔ 백장회해(百丈懷海) ➔ 황백희운(黃檗希運) ➔ 臨濟宗의 임제의현(臨濟義玄) ➔ … 양기방회(楊岐方會) ➔ …오조법연(五祖法演 ➔ 원오극근(圓悟克勤) 등이 나왔고, ②또 남악회양(南嶽懷讓)로부터 백장회해(百丈懷海)를 거쳐 황백희운(黃檗希運)과 다른 계파로 위산영우(潙山靈祐) ➔ 앙산혜적(仰山慧寂) 등이 나왔는데, 潙山靈祐의 潙와 仰山慧寂의 仰을 따라 潙仰宗이라 한다.
⑵ 靑原: 靑原行思(?~740)를 가리킨다. 吉州 安城 사람으로 속성은 劉씨이다. 법명은 行思. 六祖의 법을 받고 길주 청원산 淨居寺에 있으면서 크게 종풍을 떨쳤다. ①청원행사(靑原行思)의 문하에서 석두희천(石頭希遷) ➔ 천황도오(天皇道悟) ➔ 용담숭신(龍潭崇信) ➔ 덕산선감(德山宣鑑) ➔ 설봉의존(雪峯義存) ➔ 雲門宗의 운문문언(雲門文偃) 등이 나왔고, ②또 덕산선감(德山宣鑑)으로부터 설봉의존(雪峯義存)을 거쳐 … ➔ 法眼宗의 법안문익(法眼文益) 등이 나왔으며, ③ 또한 청원행사(靑原行思)로부터 석두희천(石頭希遷)을 거쳐 약산유엄(藥山惟儼) … ➔ 동산양개(洞山良价) ➔ 조산본적(曹山本寂) 등이 나왔는데, 曹山本寂의 曹와 洞山良价의 洞을 따라 曹洞宗이라 한다. 
⑶ 南嶽과 靑原의 문하에서 나온 위의 臨濟宗 潙仰宗 雲門宗 法眼宗 曹洞宗이라 한다. 이외에도 육조의 문하에서는 영가현각(永嘉玄覺)과 하택신회(荷澤神會) 등이 나왔으며, 다시 하택신회(荷澤神會:670~762)의 문하에서는 몇 대를 지나 荷澤宗의 규봉종밀(圭峰宗密) 등이 나왔다.
⑷ ‘執侍’는 ‘侍’만으로도 ‘곁에서 시중들다’라는 뜻이 있을 터인데, 언뜻 보기에 ‘시중들다’는 뜻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執’을 썼을까? 정말 ‘執侍’가 ‘시중들다’는 뜻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執’은 ①‘붙잡다, 체포하다’ ②‘의거하다’ ③‘다루다, 종사하다’ ④‘행하다, 시행하다’ ⑤ ‘처리하다, 결단하다’ ⑥‘주관하다, 조종하다’ ⑦‘장악하다, 통제하다’ 등의 뜻이 있어서, ‘執侍’를 ‘곁에서 시중드는 것(侍)에 종사하다(執)’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시중들다’라는 뜻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侍’만으로도 충분히 ‘시중들다’라는 뜻을 나타낼 수 있음에도 굳이 ‘執侍’이라고 한 것은 뒤의 ‘最久’가 두 글자이기 때문에 글자 수를 맞춘 것일 것이다. 두 글자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상용하는 ‘侍奉’을 쓰지 않고, 오히려 ‘執侍’를 쓴 것은 어떤 이유이며, 둘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래에서는 먼저 ‘執’과 ‘奉’의 本義를 살펴, 그것들의 차이를 유추해본다.
執              은 꿇어앉은 죄인의 양팔을 쇠고랑으로 묶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죄인이 속박을 당하고 있는 것이고, 奉               은 두 손으로 벼나 보리를 받들어 神과 祖上들에게 올리는 모양으로 자발적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혹시 ‘侍奉’는 모시는 것을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고, 반면 ‘執侍’는 모시는 것을 ‘속박되어 반드시 한다.’는 의미가 강조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상용되는 ‘執事’의 常用되는 뜻은 ① ‘주인 가까이 있으면서 그 집일을 맡아보는 사람’이거나 ②웃어른에게 올리는 한문 투의 편지 겉봉에 쓰는 말로, 편지 받는 이를 높이어 감히 직접 받아 보라고 하기는 어려우니, 그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 받아서 전하여 달라는 뜻으로 쓰고, ③또 佛家에서는 여러 가지 잡무를 처리하는 것으로, 禪宗의 知事에 해당하는 소임 등을 나타낸다. 
이것들을 통하여 ‘侍’나 ‘侍奉’ 등을 쓰지 않고 굳이 ‘執侍’라고 쓴 이유로 삼는다.
⑸ 惟南嶽 靑原 執侍最久 盡得無巴鼻 故: 언해는 이것을 “오직 南嶽과 靑原괘 뫼ᅀᆞ오미 ᄆᆞᆺ 오라 귿고 업소ᄆᆞᆯ 다 得ᄒᆞᆫ 젼ᄎᆞ로 ((그 중) 오직 南嶽과 靑原의 모심이 가장 오래어 그릇의 손잡이 없음[無巴鼻]을 다 얻은 까닭으로,)”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南嶽과 靑原이 오래도록 시중 든 것과 그릇의 손잡이가 없다[無巴鼻]는 것은 무슨 연유로 연결되는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어떤 이유로도 잘못 해석되고 있는 것을 변호할 수 없다.
⑹ 문제는 ‘盡得無巴鼻’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먼저 諺解에서는 ‘巴鼻’를 ‘귿고(그릇의 손잡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그것은 ‘巴壁, 巴臂, 巴避’ 등과 같이 ‘根據, 原因, 由來’ 등의 뜻도 있다.
‘巴鼻’는 ‘巴壁, 巴臂, 巴避’ 등과 그 뜻이 같은 것으로 보아 連綿詞로 보인다. 連綿詞란 ‘巴鼻’에서 ‘巴’와 ‘鼻’가 모두 脣音聲母인 것과 같이 同一한 聲母(初聲)로 그들이 雙聲관계이거나, 때로는 동일한 韻母로 疊韻관계이거나, 聲母와 韻母가 완전히 같은 同音인 것 등을 말하며, 이런 連綿詞는 각 글자로 나뉘면 뜻이 없어지며, 오로지 발음으로 인하여 그 뜻을 얻는다. 따라서 이것들은 書寫形式이 고정된 것이 아니고 동일한 발음이면 어떤 글자를 사용하여도 같은 뜻이 된다. 예를 들면 ‘彷佛’이라고 쓰던지 ‘髣髴’이라고 써도 같은 뜻이 되는 원리와 같다.
사실 現代漢語에서 ‘把柄(欛柄)’은 ①‘손잡이, 자루’ ②‘[협박·교섭·강요 따위에 이용당할 수 있는] 약점, 꼬투리, 증거’ ③‘말의 근거, 論據’ 등의 뜻이 있으며, ‘巴鼻, 巴壁, 巴臂, 巴避’ 등과 발음이 유사하다. 
⑺ 或者는 ‘無巴鼻’를 “本性 活物이 현전하여 개념과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을 손잡이가 없어진 것으로 비유한다.”고 한다. 즉 “모가 없고 뚜렷하게(圓) 밝아 손댈 수 없으며, 對待가 끊인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한 바와 같이 ‘巴鼻’가 連綿詞인 것을 모르고 牽强附會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⑻ 상기의 설명에서와 같이 ‘巴鼻’를 ‘근거, 유래’라고 하더라도, ‘盡得無巴鼻’를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문장성분을 잘 파악하여야 한다. 즉 ‘盡得無巴鼻’는 그 해석을 아래의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盡’은 副詞語로 動詞 ‘得’을 꾸미고, ‘無巴鼻’는 ‘得’의 目的語라고 하면, “모조리 ‘無巴鼻를(유래 없는 것을)’ 얻다.”로 해석할 수 있고, ②‘盡’은 술어, ‘得’는 動態助詞, ‘無巴鼻’는 目的語라고 하면, “‘無巴鼻를(유래 없는 것을)’ 다하였다.”나 “‘無巴鼻를(유래 없는 것을)’ 다 할 수 있다.”로 해석할 수 있으며, ③‘盡’은 술어, ‘得’는 構造助詞, ‘無巴鼻’는 補語라고 하면, “‘無巴鼻할(유래가 없을)’ 정도로 다하였다.”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③을 따라 “유래가 없을 정도로 [지극 정성을] 다하였다”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文義에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⑼ ‘沒巴鼻’이 의미하는 것에 관하여는 많은 사람이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실학자 星湖 李瀷은 그의 저서『星湖僿說·詩文門』중, ‘鼻祖耳孫’이라는 항목을 설명하는 말미에, “《어록(語錄)》의 설명에 따르면 ‘沒巴鼻’라는 글자가 있는데 역시 알기 어렵고, 宋나라 사람의 詞에도 沒鼻ㆍ沒巴란 말이 있는데, 巴는 의미(義)가 없다. 이는 본시 뱀이 서린 형상으로, 머리는 감추고 꼬리만 드러났다는 것이니, 아마도 역시 俗語의 ‘無頭無尾’와 같은 것일 것[語錄有没巴鼻字亦難曉宋人詞有没鼻没巴之語巴無義此本蛇盤之形蔵頭露尾也恐亦如俗語無頭無尾也]”라고 하고 있다. 위에서 ‘無頭無尾’라는 설명은, 곧 ‘無巴鼻’의 ‘巴’는 꼬리(尾)로 끝, ‘鼻’는 ‘鼻祖’에서와 같이 ‘처음’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無巴鼻’를 처음(시작)과 끝이 없음, 즉 ‘시작과 끝을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불교의 깊은 妙理’라고 이해하고, 위 문장구조분석법에서 ①을 따라 “시작도 끝도 없는 불교의 妙理를 모두 얻어서”라고 해석하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이나, 이는 결국 이 ‘巴鼻’라는 단어가 連綿詞임을 몰랐거나 혹은 간과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상기의 설명들을 참고하여 해석을 아래와 같이 수정한다.

【飜譯】[그 중에서도] 오직 南嶽과 靑原이 [대사에게] 시중들기를(시봉의 소임을 맡아) 가장 오래도록 하였으며, [이전의 어떤 경우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하였다(흠잡을 곳 없이 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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