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마음 평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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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마음 평온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1.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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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요즘 걷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쩍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리함이 없어서 부작용 염려도 거의 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 끌리는가 보다. 
제주에는 계절 또는 취향에 따라 걷고 싶은 좋은 길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여행 작가들은 북한산 둘레 길, 지리산 둘레 길, 제주의 올레 길을 우리나라의 3대 명품 길로 꼽는다. 
본디 길은 인간의 의식주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으로 인류의 생존사와 함께 생성, 발전해왔다. 산 사람들이 높은 산을 힘들여 넘지 않고 산자락 비탈을 따라 이동하는 교역로인 둘레 길에도, 이웃과 이웃,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올레 길에도 우리네 삶의 역사와 정취가 서려 있다.
나 자신도 주말엔 만사 제쳐 놓고 내자와 함께 건강 유지를 위해 걷기 운동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유명한 길보다 조용한 곶자왈 숲길을 걷는다. 행선行禪을 통해 정진력을 키우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잘 닦아진 ‘데크’ 길보다 돌과 나무뿌리 때문에 발 디딤이 조금 불편한 흙길이나, 평탄한 길보다 약간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되는 거친 숲길을 선호한다.
밖에 길이 있어야 하듯 우리의 몸 안에도 길이 있다. 혈관은 혈액을 통해 몸의 각 세포에 영양소와 산소를 공급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고속도로가 파손되면 물류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듯이 혈관이 망가지면 급격히 노화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걷기 운동은 뇌 건강 유지에 좋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최소한 3주간 만보 이상을 걸어야 효과가 나타나고, 12주가 지나면 새로운 근력이 생겨난다고 강조한다. 뇌가 마음의 체험을 특정 방향으로 끌어당겨서 비행기의 자동항법처럼 건강한 삶을 유지하도록 신경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뇌에 마음을 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나 자신도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경전을 열독하면서 금쪽같은 법구를 메모하였다가 이를 외우고, 또 기억이 희미해지면 다시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10여 년이 흐르자 좌선 상태에서 눈을 살며시 감고 법구들을 되살리면 마치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의 길을 트려면 집중된 주의력, 열린 알아차림, 해코지 않음 등의 마음 훈련이 반복적, 지속적으로 실시돼야 한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괴로움에 대해서 극성을 떨고, 즐거움에 대해서 의기양양 하는 길들어지지 않은 마음의 경향성을 체험했을 것이다. 
마음은 본질적으로 조건에 따라 유익하거나 해로운 과보심을 일으키고, 또 자아가 없기 때문에 강압적인 억압만으로 마음을 완전히 제어하기는 불가능하다. 내 마음에 새겨진 여러 갈래의 옛길을 알고 볼 수 있는 지혜의 힘을 키워야 길[道]이 아닌 곳으로 걷고 있는 위험을 자각할 수 있고, 유익한 길로 진로로 바꿀 수 있을 법하다.
세존께서 다섯 감각능력[五感]과 의식을 갖춘 이 한 길 몸뚱이 속에 세상과 세상의 열림과 닫힘, 그리고 피안으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천명하셨다.
일흔 고개를 넘어서자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두리번두리번 동요하는 마음의 경향은 다소 누그려졌다. 하지만 진리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아늑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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