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1) - 자애 수행 경(It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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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 뽑은『이띠웃따까』(Itivuttaka, 如是語經) (11) - 자애 수행 경(It1:2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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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각묵 스님은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로 지난 30여년간 초기 불교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널리 알리는 초기불전들을 한글로 옮기는 번역불사를 꾸준히 전개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통한 불교교리의 대중화에 기여해 왔다. 1957년 밀양 출생으로 1979년 화엄사에서 도광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82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부산대 수학교육과 3학년 재학 중 출가 7년간 제방선원에서 수행하였고, 1989년부터 10년간 인도로 유학(산스끄리뜨, 빠알리, 쁘라끄리뜨를 수학)하여, 인도 뿌나대학교 산스끄리뜨어과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대림 스님과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여, 팔리어 삼장을 번역하였으며, 조계종 교수아사리, 실상사 화림원 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 이것은 참으로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니 아라한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재생을 가져오는 공덕을 짓는 토대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은 그것들을 능가하고 빛나고 찬란하고 광채를 발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종류의 별빛이라 하더라도 그 모두는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달빛은 그것을 능가하고 빛나고 찬란하고 광채를 발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재생을 가져오는 공덕을 짓는 토대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은 그것들을 능가하고 빛나고 찬란하고 광채를 발한다.” 

이러한 뜻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2. 이 경에서 이것을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무량한 자애를 닦는 마음 챙기는 자는 
족쇄들이 엷어지고 재생의 근거가 파괴됨을 보노라. 
단 하나의 생명일지라도 성 안 내는 마음으로 
자애를 보내면 유익함이 있나니 
모든 생명들에게 광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성자는 공덕을 짓노라.
중생의 숲으로 된 땅을 정복한 왕이라는 선인은
제사를 지내려고 하나니
말을 바치는 제사와 인간을 바치는 제사
말뚝을 던지는 제사와 소마 즙을 바치는 제사
대문을 열고 크게 공개적으로[無遮] 지내는 제사로다. 
그러나 이것은 자애로운 마음을 잘 닦는 자에게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마치 모든 별들의 무리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리.
죽이지도 않고 남을 시켜 죽이지도 않고
정복하지도 않고 남을 시켜 정복하게 하지도 않으며
모든 존재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가진 자
그에게는 어떠한 증오도 없노라.”

이러한 뜻 또한 세존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처럼 저는 들었습니다.  

【해설】

죽음이란 12연기에 따라 가합(假合)했던 오온이 흩어지는 것이고, 재생은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가 실타래처럼 엉킨 유정(有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악처(惡處)가 아닌 인간과 천상을 포함한 선처(善處)에 재생하는 공덕의 세 가지 토대라 함은 보시로 이루어진 것, 계행으로 이루어진 것, 수행으로 이루어진 것의 세 가지이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 이르시길, 세 가지 공덕의 토대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하셨다. 이런 마음의 해탈은 초기불전의 여러 경들에서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四無量心]으로 정형화되어 나타나는데,『디가 니까야(장부)』의「삼명 경(D13)」에 실린 자애관 수행의 전형적인 정형구는 이렇다.
“자애[慈, mettā]와 함께한 마음으로 … 연민[悲, karunā]이 함께한 마음으로 … 더불어 기뻐함[喜 ,muditā]이 함께한 마음으로 … 평온[捨, upekkhā]이 함께한 마음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 나타난 마음 수행법의 대부분이 자신의 의식을 내면으로 향하는데 비해서, 이 자애관은 의식을 밖으로, 외부 세계로 그리고 외부 존재들에게 투사한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주석서에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 상태가 되려면 4종선 가운데 제3선까지, 또는 5종선 가운데 제4선까지의 증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재생의 근거’라 함은 ➀ 무더기[蘊], ➁ 오염원[五蓋], ➂ 업 형성력, ➃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쾌락을 뜻한다. 다섯 무더기가 취합해 있으면 소유가 있고, 갈애가 뒤따르고 여기에 괴로움이 놓이기 때문에 이것들은 다시 태어남(재생)의 근거가 된다는 뜻이다.
‘자애’는 자기뿐만 아니라 일체의 존재들의 안전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고, ‘연민’은 동정심으로 다른 존재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려는 마음이다. ‘더불어 기뻐함’은 질투함이 없이 남들의 성공을 기뻐하고, 궁극적으로 진리를 남들과 공유함으로써 법열(法悅)을 함께함이다. 지혜(반야)를 바탕으로 희로애락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완전하고도 요지부동산 균형을 이룬 마음이 ‘평온’이다. 평온은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절정이자 그 극치이다. 
자애수행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하기 위해서이다. 초기경의 여러 곳에서 발심 수행자들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을 계발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으면 열한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고 설하셨다. 그 열한 가지란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인간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그를 해치지 못하고, 빨리 마음이 삼매에 들고, 안색이 좋아 지고, 최상의 경지(=아라한)를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죽어서 범천(Brahma)의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자애가 충만할 때 선정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특히 성냄에 얽매이는 것으로부터 해탈케 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일러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이라고 부르고 있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이 수행법의 영역에 들어오게 되면 이는 깨달음을 실현하는 위빠사나의 기초가 되는 강한 힘을 낳는 토대가 된다. 
『청정도론』에서는 자비수행을 시작할 때 먼저 자신을 향해 자애를 거듭 거듭 닦아야 하고,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난 뒤 다음 사람에게, 즉 아주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 무관한 사람, 원한 맺힌 사람의 순서대로 그 대상을 영상화 혹은 관상하는 방법으로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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