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대불련 제주지부 50년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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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대불련 제주지부 50년사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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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불련이 창립된지 어언 57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주대불련은 제주불교계의 인재들을 키워내며 지역사회 불교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제주대불련은 빈약했던 제주지역의 문화활동에 큰 바람을 불어넣었고, 제주지역 대학생들의 사회적 참여에도 선구적인 역할을 다하였다. 60~70년대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불법의 씨앗을 뿌리고, 80년대의 민주화과정에서도 소명의식으로 역할을 다해왔으나, 90년대 후반부터 활동이 끊기고 조직도 사라지다가, 최근에 재창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속에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제주지부동문회는‘제주대불련50년사’를 발행하여 지난 성과와 미래에 대한 의지를 담고자 노력하였다. 이에 본지에서는 발간된 제주대불련50년사를 근간으로 대불련 활동을 요약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알려보고자 한다. / 편집자
학생회관에서 개최된 불교사상대강연회 (1976. 5. 30.)
학생회관에서 개최된 불교사상대강연회 (1976. 5. 30.)

 

대불련이 1978년에 창간한 ‘베나레스’에는 당시 이운봉 지부장의 창간사에서 다음과 같이 1963~1978년동안 15년간의 활동을 평하고 있다. 

“선배들이 땅을 파고 씨를 뿌려 새싹이 돋고 거름을 주고 소독을 하며 한 나무를 키우면서 온갖 고난과 역경의 역정을 견뎌오기 15년, 이제 그 제법형들이 남긴 땀방울의 의미가 이 대불련이라는 정원 속에 뿌리박혀 희망과 의지에 찬 찬불의 노래로 꽃을 피우며 젊은 구도자로서의 열매를 맺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설법회, 수련대회, 강연회, 연구발표회, 자선위문사업, 부처님오신날 축제 및 예술제, 좌담회, 봉사활동과 체육대회 등을 통해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영원한 불타의 정법을 이룩해보겠다는 진리를 등불로 삼는 건전한 대학생으로서의 가치관을 펴왔다. 그러나 지난 발자취에서 법형들의 많은 노력은 엿보였지만, 발간물을 통해서는 포교와 전법이 이루어지지 못해 아쉬웠다. 이에 이 베나레스를 발간하여 의의와 불리(佛理)탐구의 방향을 잡게 되었다. 
이 대불련지 발간을 통해, 첫째, 대불련 회원의 질적 강화와 단체 활동 질서유지, 운영의 합리적 민주적 발전을 주도하도록 한다. 둘째는 교와 선을 통해 불타의 정법을 이해하고 회원상호 간의 교류를 증대한다. 셋째, 구도적인 행사개최로 내적인 정신수양, 불법연구로 인격도야 자기완성의 바른길을 찾도록 한다. 넷째, 불교를 통한 사회참여로서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대한 사명의식 갖도록 한다. 우리의 머리는 학문을 탐구하는 대학생으로서, 가슴은 반야를 갈구하는 불자로서, 팔다리는 이웃과 사회에 이바지하고 국가에 헌신 인류에 공헌하는 봉사인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선배들과의 단합으로 제주불교 발전에 기여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명감을 갖고 한국불교의 과제인 불교의 근대화에 등불이 되자.”

이 기고문에서 볼 수 있듯이,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대불련의 활동이 질적, 양적으로 팽창되면서 조직력의 강화가 문제로 제기되고 있고, 회원들에 대한 교육수준도 질적인 전환의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대불련은 당시의 제주불교계에 대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제주도 사회 전반에도 일정한 지식인으로서 책무가 있음도 밝히고 있다.   
이는 제대4학년 회원인 강형식 법우는 ‘대불련의 방향성’이라는 기고문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불법을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불교가 한민족의 사상이요, 한민족의 문화이면서 한국불교역사 이치도 호국불교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대불련은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잘 인식하여 확고한 신앙심 이외에 모든 조직에서 맡은바 임무에 충실히 하는 연합의식을 고취하여 신라 화랑 못지않게 호국에 힘써야 한다. 그래서 이 나라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대불련이 되어서 불교에 귀의하게 된 것에 긍지를 갖고 바른 견해로 모든 일에 선봉자가 되자“

여기서는 대불련이 종교적 신행과 공부를 넘어 나라와 국가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대자적인 관점이 드러나고 있다. 즉 당시의 대불련은 안분지족하는 불교내부활동이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 불교가 협소한 산중불교, 그들만의 신행불교라는 비판에 대비하여, 매우 그릇이 큰 대승적인 호방함이 호기롭게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같은 호에 실린 제주대 3년 장공수 법우도, ”대불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며 배운 것을 일반 민중에게 교화하여 전국토가 석가모니의 진리로 충만한 세계를 건설하려고 일어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에서도 그 의지와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불교계의 재산다툼과 대불련의 활성화를 위한 특정 종단내로 들어가서 결합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도 거론하고 있어 현실적 고민이 깊었음을 알리고 있다. 
이 당시 1972~75년까지는 불교인체육대회나 4부 대중 등반대회, 불교예술제 등으로 불자들의 단합과 공동체성 확보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외에도 수련대회를 통해 기복불교에서 수행에 대한 목적을 강화하였고,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를 대불련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보살도의 전개라는 점을 발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요 활동으로는 1974년 2월에 합동 제주교도소 위안회, 3월17일 신입생 환영야외법회, 4월27일 불교인체육대회, 5월29일 관음사주지배 전도 대학생 바득대회, 10월21일~24일, 광령계곡 야유회, 12월 21일~24일, 동계수련대회가 열렸다.
1975년도에는 5월18일, 초파일봉축기념 연합체육대회개최와 5월 29일, 관음사주지배 전도 대학생바둑대회, 8월7~10일 마곡사에서 개최된 연합회 다도수련대회참가,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또 1976년도에는 5월6일 6해역사 위문공연으로 4.8축제공연이, 5월30일에는 무진장법사를 모시고 불교사상 대강연회가 개최됐다. 8월12일부터 17일가지 전북 소양에서 열린 연합회 제4차 화랑대회에는 제주대불련에서 15명이 참가했고, 9월12일, 불자합동수계식과 9월26일 대불련친선체육대회가 조천초교운동장에서 개최되었다. 10월3일에는 제1회 합동통일산상법회가 한라산에서 열리고, 12월22~25일에는 불우이웃돕기 이동판매활동이, 12월 28~29일에는 동계수련회가 관음사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도내 대학 중에 1977년 3월 10일 실업전문대지회가 창단됨으로서 제주지부 조직의 강화가 이루어졌으나, 지부내 조직력은 다소 미흡했던 터라 지회를 이끌어야 하는 지부의 리더십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고민도 함께 이루어진 시기였다. 
1977년도의 주요활동은 4월16-17일에 원명사에서 간이수련대회, 5월1일 관음사주지배 배구대회가 열렸고, 5월21일 제9차 불교사상강연회가 최지선 관음사 주지를 모시고 열렸다. 이외에도 9월17일 중추절 불우이웃돕기 일일찻집과 11월 12일 석대효 스님을 모시고 불교사상 강연회가 열렸다. 
1978년도에는 부처님오신날 행사와 각종 야유회, 배구대회, 간이수련대회, 산상법회 등의 활동 이외에도 이전의 활동과 함께 불교음악감상회가 열리는 등 다채로와졌고 동계봉사활동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이 더욱 늘어났다.
1979년은 유신정권말기로서 어수선한 시국이었고 1980년은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점철된 대전환기였다. 
1978년 1월에는 베나레스지를 창간해 회원의 참여기회를 넓혔으나 지속적인 발행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1981년 9월에야 제2호가 발행되는 등 지속성이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그러나 76~80년까지는 대불련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이때는 특히 제주지부 내에 조직과 수련도장 마련, 회원의 자질향상을 위한 교리사업의 전개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979~80년은 사회적 격변기였다. 10.26으로 박정희대통령이 피살되고, 신군부에 의한 광주민주화운동의 촉발은 이후 거센 사회민주화운동으로 권력에 의한 학생활동의 통제와 탄압이 가속화되었다. 계속되는 휴강으로 활동은 침체되었고, 유신정권 말기부터 경직된 사회분위기는 불교계도 구심력과 지도력의 부재가 지속되었다. 불교종단에서는 젊은 불자, 청년불교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해지만, 지도력과 지원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1981년9월에 간행된 베나레스 2호에 실린 기고문에서는 제주지부의 문제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회원들의 자질이 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지도가 미비하고 참여하는 회원뿐만 아니라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임원들도 다소 미숙한 면이 있다. 또 법회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조직적인 연계성도 내실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현장에서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어린이법회지원이나 각 사찰의 청소년조직 활성화 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고, 일반인들과의 접촉면적을 넓혀서 지식인으로서의 개학생불자의 소명의식도 강하게 보이고 잇다는 점은 학생운동의 엘리트의식의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 정리 : 안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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