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눈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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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눈치 보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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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우수를 며칠 앞두고 능수매화가 활짝 피었다. 마치 수양버들처럼 수십 개의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모양새가 수백송이의 하얀 꽃과 어우러져 백발 미인의 뒤태를 연상케 한다. 
선비의 고매한 품격을 닮고자 18년 전 어린 묘목을 구해 남쪽 뜰에 심었는데, 어느새 수고와 수폭이 각각 여섯 자가 되는 거목이 됐다. 싸늘한 가지 끝에 눈빛 같은 꽃을 피우고 청향을 내뿜는다. 
매화는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아 안락함을 구하지 않고, 엄동설한에도   다른 꽃보다 앞질러 산하대지에 봄소식을 알린다. 이래서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는가 보다. 
옛 선비들은 매화의 덕목을 본받아 ‘나 같은 사람이 불의에 굴해서는 안 된다.’라고 자신을 존중하고 불의를 혐오함으로써 스스로를 부끄러움으로부터 지켜 왔다.  
부끄러움은 자신을, 두려움은 다른 사람을 각 존중함에서 나온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법이 세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을 받았고, 오늘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확립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지도층에서 이 두 가지 법이 쇠퇴하고 끼리끼리 ‘눈치 보기’의 경향이 있어 지성인들의 눈살이 찌푸려지고 있다. 특히 서초동의 대법원장이 판사의 탄핵과 관련하여 정치권의 눈치를 살폈다는 뉴스를 보노라면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여의도 정치에서 탄핵 대상으로 가시화된 판사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내자 사법적 판단을 미루고 정치 외풍을 인식하여 거절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진솔한 사과를 함이 없이 변명만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언행을 가리켜 올바른 부끄러움이 아닌 갈애에서 생긴 속임수(māya) 또는 교활한 지혜라고 말한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서양 문화권에서는 아무래도 남의 눈치를 살피고 신경 쓰며 사는 일이 적고 익숙하지 않다. 그 반면에 ‘눈치가 빠르기는 도가 집 강아지’라는 속담이 있듯이 눈치 보기에 익숙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써야 일상이 매끄러울 수 있을 것이다.  
눈치는 상대방의 기분이나 어떤 주어진 상황을 빠르게 알아차려 적절히 대처하는 능력 또는 그에 대한 눈빛이라는 뜻으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도 하다. 
군복무 3년 중 1년을 DMZ의 철책선 경계근무를 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계급사회에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상급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혹은 갑을관계에서처럼 비위를 맞춰야 하는 특수한 상황을 상정할 수 있을 터.
이처럼 눈치는 언제나 약자가 강자의 마음을 살피는 센스인데, 권부權府에서 서로 봐줄 건 봐주면서 오염된 꽃길을 걸어간다면 그 미세먼지의 독毒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눈치 보기를 새로 포맷함이 없이 허물을 꾸미려 들면 자기 자신을 크게 해친다. 하물며 구차미봉苟且彌縫 하면 앞서의 허물을 바로잡기도 전에 다음 허물이 잇따라 이르러 마침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도인이나 선비들은 자기의 길이 비록 북풍한설의 가시밭길이라고 하더라도 곁불은 안 쬔다며 끝내 화톳불 근처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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