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③ - 세상일이야 나무꾼에게나 물어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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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③ - 세상일이야 나무꾼에게나 물어볼 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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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립 - 시인, 수필가
곽경립 - 시인, 수필가

왕유王維(701-761)는 훌륭한 시를 짓기 위하여 먼저 마음을 닦아 모든 사념邪念을 버린 후 사물을 바라봅니다. 사물을 바라볼 때는 편견을 버려야 참된 진실[眞體]을 볼 수 있고 마음에 품은 형상[意象]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 마음[情]을 사물[象]에 실으면 뜻에 이르게 되고[境], 사물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연상聯想이 시인의 정취와 융화되어 ‘나와 사물을 모두 잃은 무아無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를 불가에서 깨달음의 세계[妙悟]라고 한다면, 왕유는 자연 풍광을 선의 이치와 의미 속으로 끌어들여 그림위에 색칠을 하듯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시 속에 깨달음의 세계를 넓혀갔습니다. 따라서 왕유의 시 속에는 자연과 선취禪趣가 하나로 어우러진 오묘奧妙한 경계境界를 느낄 수 있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럼 왕유의 시 한편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藍田山石門精舍  
남전산 석문정사                                  

落日山水好   낙일산수호
漾舟信歸風   양주신귀풍
玩寄不覺遠   완기불각원
因以緣源窮   인이연원궁
遙愛雲木秀   요애운목수
初疑路不同   초의로부동
安知淸流轉   안지청류전
偶興前山通   우흥전산통
拾舟理輕策   습주리경책
果然愜所適   과연협소적
老僧四五人   노승사오인
逍遙蔭松栢   소요음송백
朝梵林未曙   조범림미서  
夜禪山更寂   야선산경적
道心及牧童   도심급목동
世事問樵客   세사문초객
暝宿長林下   명숙장림하
焚香臥瑤席   분향와요석
澗芳襲人衣   간방습인의
山月映石壁   산월영석벽
해질녘 산천이 너무 아름다워
배 띄워놓고 바람에 맡겨둔다.                          
기묘한 풍경에 길 먼 줄 모르겠고                       
기왕 가는 길 물 다하는 곳까지 가본다.                
구름멀리 우뚝 솟은 나무들 쳐다보다                   
처음엔 길을 잘못 들었나 했는데                       
어찌 알았겠는가, 맑은 개울 굽이돌아                   
우연인 듯 앞산 언저리로 통하는 것을                   
배를 두고 지팡이 짚고 뭍으로 오르니                   
과연 알맞게 한적한 곳에는                             
노승 네다섯이                                         
솔 그늘 아래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새벽염불 그윽했던 숲은 날 밝지 않은 듯                
한밤의 참선기운 남아 산 더욱 고요하다.                
불심이 목동의 마음까지 이르고 보니                    
세상일이야 나무꾼에게나 물어볼 뿐                     
날이 저물어 큰 나무 숲속에 묵으며                     
향불 피워놓고 돗자리 깔고 누웠더니                    
물가에 꽃향기 옷 속으로 스며들고                      
산위에 뜬 달이 석벽을 가만히 비춘다.                  
(*시 내용의 일부를 삭제하였음)

 

시인은 산수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선취禪趣가 일어나는 분위기로 만들어 시어로 묘사해냄으로써 선정禪定의 경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특히 ‘새벽염불이 그윽했던 숲속 고요한 곳은 아직도 날이 밝지 않은 듯 참선 기운이 남아있고’, ‘물가에 꽃향기는 사람 옷 속으로 스며들고, 산 위에 뜬 달은 석벽을 그윽하게 비추는’ 자연 속에서 불가의 이치理致에 심취하여,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되어[物我一體],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음이 없는 선의 경계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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