爐錘(善知識)를 두루 거쳤으며, 그 門庭의 規模는 넓고 크다. 이제 그 五家의 網要를 근원부터 살펴보니, 모두가 壇經에서 나온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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爐錘(善知識)를 두루 거쳤으며, 그 門庭의 規模는 넓고 크다. 이제 그 五家의 網要를 근원부터 살펴보니, 모두가 壇經에서 나온 것이로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2.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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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遍爐錘ᄒᆞ야 規模╷ 廣大ᄒᆞ니 原其五家의 綱要컨댄 盡出壇經ᄒᆞ니라【諺解】爐錘ᄅᆞᆯ 너비 디내야 【爐ᄂᆞᆫ 붊기오 錘ᄂᆞᆫ 마치니 善知識을 니ᄅᆞ니라】 規模╷ 넙고 크니 그 五家ᄋᆡ 綱要ᄅᆞᆯ 根源컨댄 다 壇經에 나니라 (爐錘를 널리 거치어 【爐는 풀무이고, 錘는 망치이니, 善知識을 이르니라.】 규모가 넓고 크니, 그 五家의 綱要를 根源할진대 다 壇經에서 나온 것이다.)
歷遍爐錘ᄒᆞ야 規模╷ 廣大ᄒᆞ니 原其五家의 綱要컨댄 盡出壇經ᄒᆞ니라【諺解】爐錘ᄅᆞᆯ 너비 디내야 【爐ᄂᆞᆫ 붊기오 錘ᄂᆞᆫ 마치니 善知識을 니ᄅᆞ니라】 規模╷ 넙고 크니 그 五家ᄋᆡ 綱要ᄅᆞᆯ 根源컨댄 다 壇經에 나니라 (爐錘를 널리 거치어 【爐는 풀무이고, 錘는 망치이니, 善知識을 이르니라.】 규모가 넓고 크니, 그 五家의 綱要를 根源할진대 다 壇經에서 나온 것이다.)

 

【解說】⑴ ‘歷’ 은 ‘止’와 ‘秝(나무 성글 력{역})’, 또는 ‘止’와 ‘林’을 따르는 회의자라고 하거나 ‘止’를 따르고, 소리는 厤을 따르는 형성자(從止, 厤聲)라고 한다. 어느 것이든 걸어서(止) 숲(秝, 林)을 지나가는 것을 그린 것으로, 本義는 ‘지나가다(過)’라고 한다. 즉 여기에서는 그것을 ‘겪다(경험하다)’라는 의미이다. 
⑵ 遍은 ‘彳’을 따르고, 소리는 扁(從彳 扁聲)인 형성자로, 본의는 ‘帀(두를 잡)’이라고 한다. 즉 여기에서는 ‘두루두루 겪다’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徧’은 ‘遍’과는 같은 글자이지만 ‘偏’과는 다른 글자이다. 왜냐하면 ‘彳’은 사거리라는 뜻의 ‘行 ’의 왼쪽 부분을 그린 것이고, ‘辶’은 사거리의 한 부분에 발(止)을 함께 그린 글자이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하는 행위와 관련되지만 ‘偏’의 偏旁인 ‘人’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⑶ 爐錘: 쇠를 단련할 때, 풀무로 쇠를 달구고 망치로 두들겨 단련하는 것을, 宗師가 衲子를 接引하는 것에 비유하여 풀무질·망치질(爐錘 또는 鞴爐鉗鎚)이라고 한다.
⑷ ‘原’을 諺解는 ‘根源컨댄(根源할진대)’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는 아마 ‘原’이 ‘근원’이라는 명사인데, 동사와 같이 해석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根源이라는 명사를 動詞化하여 그렇게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자는 품사가 결정되어 있지 않고, 문장에서 그 성분에 따라 품사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雲集’에서 ‘雲’은 결코 명사가 아니고 ‘구름처럼’이라는 부사이며, “曲肱而枕之(팔을 굽혀 그것을 베다)”에서 ‘枕’는 결코 ‘베개’라는 명사가 아니고 ‘베다’라는 동사인 것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以’는 단지 ‘써 이’라고 하여 介詞로 간주하고, ‘而’는 ‘말이을 이’라고 하여 連詞(접속사)라고 간주하지만, ‘以’는 동사는 물론이고 명사 등도 될 수 있고, ‘而’ 역시 連詞뿐아니라 代詞와 介詞, 심지어는 本義를 따라 ‘수염’이라는 명사가 되기도 한다.
한문을 해석할 때, 訓하는 뜻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誤譯하는 경우가 많다.
⑸ ‘其五家’에서 ‘其’는 三人稱代詞이다. 상용되는 三人稱代詞로는 ‘其’외에도 ‘之’와 ‘彼’ 등이 있는데, 그 쓰임은 다르다. 
‘其’는 문장에서 주어나 限定語(冠形語)로 쓰이는 반면, ‘之’는 목적어로 쓰이며, ‘彼’는 주어나 목적어 한정어 등에 두루 쓰인다. 특히 ‘其’와 ‘彼’가 한정어로 쓰일 때는 지시하는 바가 다르기도 하다. 예를 들면 ‘其詩’라고 한다면 ‘그 詩’나 ‘그의 詩’라는 뜻이 되지만, ‘彼詩’는 단지 ‘그 詩’일 뿐이고, ‘彼’를 써서 ‘그의 詩’라는 뜻을 나타내고자 한다면 ‘彼之詩’라고 써야한다. 
아무튼 이것들은 ‘其’의 본의가 ‘키(簸(까부를 파), 箕(키 기))’, ‘之’의 본의가 ‘나아가다(出)’, ‘彼’의 본의가 ‘다른 곳에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으로 각각 다른데, 어떤 연유로 모두 三人稱代詞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것들은 그것의 모음이 모두 같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관계를 두 글자가 疊韻관계에 있다고 하며, 이와 같이 소리가 같거나 유사한 글자를 빌어 뜻으로 삼은 것을 假借라고 한다.
⑹ ‘綱要’를 『禪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要者는 何오 如 網之有綱하고 衣之有領하야 使人一擧而徑得其直遂者 是也라 萬目이 非不網也이나 遣綱擧目이면 網必不張이요 萬縷가 非不衣也이나 捨領擧縷면 衣必不振이니라 (요체란 무엇인가? 마치 그물에 벼리가 있으며, 옷에 옷깃이 있는 것과 같아서, 사람이 한 번 들어, 장차 도달코자 목표하는 것(성불)에 재빨리 이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것이다. 수많은 그물눈이(그물코가) 그물 아닌 것은 아니지만, 벼리를 놓아두고 그물코만 들면, 그물은 반드시 펴지지 않을 것이며, 수많은 실오라기가 옷 아닌 것은 아니지만, 옷깃을 버려두고 실오라기만 들면, 옷은 결코 펴지지 않으리라.)” 
이것에 따르면 ‘要’는 실마리(벼리)가 되는 그물의 벼리(綱)이며, 옷의 옷깃(領)과 같이 가장 긴요한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要(*/*/(古文))  ’는 사람이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본뜬 것으로 허리(腰)가 본의라고 한다. 즉 허리는 몸의 가장 중요한 것이며, 마치 그물의 벼리(綱)와 같고, 옷의 옷깃(領)과 같다는 뜻이다. 
*“使人一擧而徑得其直遂者”에 대한 해석은 쉽지 않으니, 필자가 번역한 책을 참고하여 아래에서 설명한다.
⑴使人一擧而徑得其直遂者: ‘使’는 사역동사로 뒤에 있는 “‘人’으로 하여금 ‘一擧而徑得其直遂’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⑵ ‘徑得’의 ‘得’은 ① 동사 뒤에 쓰여 可能이나 허락을 표시하거나, ② 동사 뒤에 쓰여 동작이 이미 완성되었음 등을 표시한다. 여기서는 가능을 표시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徑得’에서 ‘ ‘徑’은 동사로 해석되어야 한다. 
⑶ ‘其’는 副詞로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때 써서, ‘장차’, ‘막…하려 하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문] 必有凶年 人其流離. (李華) (반드시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장차 떠돌게 될 것이다.)
⑷ ‘直遂’는 ① ‘바르게 통하는 길’ ② ‘직접 목표에 도달하다, 순조롭게 성공을 획득하다’ ③ ‘單刀直入的으로 명쾌하게 표현하다’ 등의 뜻이 있으며, 여기에서 ‘直遂’는 동사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이것은『禪要·註』에서 “直遂者는 以祖師禪三要 是成佛之捷徑故也 (直遂란 祖師禪의 三要가 成佛의 捷徑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문] ③ 徑行直遂. (원하는 대로 일을 해서 순조롭게 목표에 도달하다.) 
徑情直遂.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목표에 도달하다.)

위의 설명들을 참조하여 번역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飜譯】爐錘(善知識)를 두루 거쳤으며, [그 門庭의] 規模는 넓고 크다. [이제] 그 五家의 網要를 근원부터 살펴보니, 모두가 壇經에서 나온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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