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④ - 맹성의 꺼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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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담겨진 선취禪趣여행 ④ - 맹성의 꺼진 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10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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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王維(701-761)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운명이라 생각하며 자연에 몰두함으로써 세상일을 잊으려 했습니다. 이때부터 왕유의 시풍詩風은 그윽하고 고요하며(幽靜), 속세를 떠나 조용하고 편안한(閑逸) 깊은 흥취(情趣)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풍의 변화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좌절이 원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선학禪學의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종이 한창 발흥하던 당唐나라시대에는 심오하고 미묘한 대승불교의 ‘돈오頓悟’사상이 사대부문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철학의 이치와 예술의 정취가 풍부한 선종을 가까이하면서 선의 고아한 풍취를 시속에 담아놓음으로써 시의 품격을 높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선사상이 시인들의 작품소재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시적 깨달음이라는 묘오妙悟주의가 생겨나고, 선이 고대중국의 시 발전에 공헌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왕유는 종교적 이치만을 담아내는 딱딱함에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일상 속에 마주치는 자연의 순환과 아름다운 풍광을 선의 경계로 끌어내어 삶의 방편으로 그려놓았습니다. 그러면 시 한편을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맹성의 꺼진 터                                           孟城坳 맹성요

새집을 맹성 초입에 마련하고 보니                    新家孟城口 신가맹성구
오래된 나무숲엔 늙은 버들만 남아있다.             古木餘衰柳. 고목여쇠류
훗날 여기에 다시 올 사람은 누구일까                來者復爲誰 래자부위수
공연히 이곳에 살았던 옛 사람이 슬퍼진다.          空悲昔人有. 공비석인유

왕유는 중년에 지금의 산시성(陝西省)인 남전현藍田縣 산림에 별장(輞川莊)을 매입하여 은둔 반 벼슬 반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산수에 살면서 마음을 불가에 두고 예불과 행을 닦는 동시에 세속생활도 한 것입니다. 
시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면 미래의 누군가가 현재의 나를 생각하겠지.’ 이처럼 세상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스무 글자에 불과한 짧은 절구 속에 인생의 무상無常을 전부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체가 무상하여(諸行無常), 생겨났다 사라지는 생멸(是生滅法), 반복되는 세계의 현상을 시인은 공연히 슬퍼하고 있는 것입니다.『구당서舊唐書』에는 “왕유는 만년에 계율을 지켜서 무늬가 있는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분향, 독좌, 참선으로 일을 삼았다.”라고 시인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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