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에세이 - 지식을 넘어 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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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에세이 - 지식을 넘어 지혜로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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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유 현

스펜서(Spencer, D. E.)는 교육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생활을 준비시키는 데 있으며, 자아계발과 사회생활의 발전에 가장 적합한 지식을 이용하는 힘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가치 있는 다섯 가지 지식 중 첫 번째가 과학이다.
자연과학의 힘으로 현대 인류는 물질문명의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핵무기를 더 많이 갖고, 또 경제대국이 된 선진국들은 자기중심적 취착을 함으로써 오히려 무한 경쟁과 투쟁의 역逆 기능을 낳고 있다. 
의학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스스로를 변형시켜 불과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동일한 기술로는 잡을 수 없게 면역된 변종을 낳고 있어서 의학은 쉴 새 없이 새 기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회과학은 우리의 주변 환경과 외적 조건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내적이거나 개인적 삶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으며, 심리과학은 인간의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바가 없지 않으나 심리적 불안의 요인이 무엇인지 아직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왜,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과학은 욕망의 수단이라는 그물에 걸린 것만을 탐구할 뿐, 인간의 삶에 드리워진 불만족과 불확실성의 인과관계를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무한 질주를 한들 인간의 창의력·지성·감성·인성 등 인간 자존의 영역을 뛰어 넘을 수도 없을 것이고, 유튜브youtub의 알고리즘이 식자識者의 흥미를 느낄만한 여러 가지의 영상들을 모아 소개해 주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지만 그 영상만으로 진가眞假를 가려낼 수 없는 법이다. 
금화의 색상과 모양을 살펴보고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순금인지, 가짜인지 등을 알려면 금세공사의 혜안이 있어야 하듯 앎知과 봄見의 두 손이 합장되어야만 지혜가 샘솟는다.
인문학은 과학과는 다른 시선으로 기능적 지식의 한계와 모순을 간파하고 진·선·미의 세 가지 가치를 강조하면서 진로를 이탈한 현대 문명의 고삐를 틀어쥐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거룩한 마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랭보(Rimbaud)는 시인을 견자見者에 비유했다. 현상의 배후에 숨어 있는 진실을 꿰뚫어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일 게다. 수필가는 어떤 사람일까. 처염상정處染常淨의 연꽃처럼 풍진 세상에 발을 딛고 양팔을 하늘로 뻗치며 철학적 통찰과 미학적 관조로 체득한 앎을 글로 표현하는 언어의 건축사가 아닐까. 
통찰 지혜는 안으로, 밖으로 안팎으로 행해져야 한다. 먼저 내 안을 깊이 관찰하고 남의 마음을 관찰하며 ‘지금·여기’ 삶 속에서 서로 부딪치는 상호 관계를 역동적으로 관찰한다. 
누구나 소망하는 보편적 지식은 일상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지만, 다른 한편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는 독소 역할도 동시에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혜가 열려야 ‘있는 그대로’ 사물의 진상, 즉 연기緣起를 보게 된다.
혜향慧香은 계향戒香과 정향定香이 갖추어져야 무르익는다. 따라서 지혜 없는 계율은 금욕에 불과하고, 지혜 없는 성냄의 억제는 우울증을 만들고 지혜 없는 선정은 무기無記 공空에 빠지게 한다.  
마치 우주선이 초음속으로 지구의 대기권을 돌파하듯이 시공時空의 상대성을 초월하는 지혜의 향기가 충만할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글의 향기가 온 누리에 진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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