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 - 출가와 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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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 - 출가와 재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17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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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석(편집인)
김 승 석(편집인)

눈을 지그시 감고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집중한다. 그런데 불청객 동박새의 짹짹거림이 청각을 자극한다. 춘분을 앞두고 활짝 핀 동백꽃의 꿀을 배부르게 먹고 즐거운 듯 지저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눈을 감고 고요함 속에 몰입하자 불타는 집의 문빗장을 여는 소리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출가재일(음력 2월 8일)이 얼핏 떠올라서 그런가 보다.『숫따니빠따』의「출가의 경」(Sn3:1)에서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의 출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재가의 삶은 번잡하고, 티끌 쌓이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출가는 자유로운 공간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보고 세존께서 출가했던 것입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이 고따마 붓다께 출가 경위를 여쭈자 세존께서 석가족의 가문에서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재난을 살피고, 그것에서 벗어남을 안온으로 보고 출가하였다고 말씀하셨고, 사리뿟따 경(S45:3)에서는 선우善友를 사귀어서 팔정도를 닦는 것은 출가하여 청정범행을 닦은 것의 전부라고 강조하셨다.
나처럼 평범한 대다수의 미성숙한 인간 올챙이를 빠알리 어로 ‘뿌툿자나(puthujjana)라고 부르는데, 속물이라는 뜻이다. 이 속물도 팔정도를 실천하면 성자가 될 수 있다.
제주도 섬 마을에서 태어나 출가사문이 된 분들이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 나라 안팎으로 사표가 될 만한 큰 스님들이 계시다. 세계불교의 초대법왕에 추대되신 일붕 대선사는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화두를 남기셨다. 
불교 대중화의 밑거름이 된 조계종 포교원 설립의 초석을 다지고 ‘일곱 가지(절, 돈, 솜옷, 모자, 목도리, 내복, 장갑)가 없는 칠무七無 스님’으로 칭송받은 무진장 포교원장께서 80년대 중반 새내기 법조인들에게 청렴에 대해 여러 차례 법문해서 필자와 인연이 남다르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대 신심으로 108만 배의 기도를  성취하시고 제주 약천사 대작불사를 완성하신 혜인 스님, 그리고 “중은 중다워야 한다.”는 명언을 남긴 적명 스님은 적멸에 드셨다. 
간화선의 중흥을 위해 지금도 ‘석종사’에서 주석하고 계신 혜국 스님은 젊은 시절 해인사에서 10만 배 정진을 마친 뒤 장경각에서 오른손 세 손가락을 불태워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결연한 뜻을 세운 일화로 유명하다. 
‘왓차곳따’ 바라문이 부처님께 물었다. “가정을 갖고 그 속박(소유)을 떠나지 않고서도 죽을 때 해탈을 이룰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그렇지 않다. 가정의 속박을 떠나지 않고 죽을 때 해탈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중부 71경)고 말씀하셨다.
출가와 재가의 차이는 소유의 유무에 있고, 성자와 범부의 차이는 해탈·열반을 향한 정진의 강도에 달려 있지만 정진으로 점화되고 노력으로 지펴진 돈오頓悟의 불꽃이 광휘롭게 빛나는 데는 어떠한 차이점도 없다. 
출가사문이 될 만큼 과보가 성숙하지는 못했지만 전생의 공덕으로 불법에 대한 신심의 뿌리가 튼튼하고 해탈의 사다리를 하나씩 올라가겠다는 마음을 낸 재가자들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로다.   
내가 존경하고 재가 수행의 거울로 삼고 있는 역사적 인물로는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인 맛치까산다의 ‘짓따’ 장자, 사섭법으로 회중을 잘 섭수하는 자들 가운데서 으뜸인 알라위의 ‘핫따까’, 다문 제일의 ‘쿳줏따라’ 청신녀 등이 있다. 
이분들은 세속에 머물면서도 오히려 출가자보다 더 높게 정신적 향상을 성취하여 부처님의 재세 시에 아라한의 아래 경지인 불환도 내지 예류도라는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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