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천 김대규 화백의 제주불교 화첩기행 [18] - 성불오름과 성불암지(成佛庵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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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천 김대규 화백의 제주불교 화첩기행 [18] - 성불오름과 성불암지(成佛庵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21.03.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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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리 대천동에서 성읍 쪽으로 조금 가면 중이 염불하는 모습으로 보인다는 오름이 있다. 이 오름이 성불오름(해발 361.7미터)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정의현(旌義縣)「불우조(佛宇條)」에서는 성불암과 관련해 ‘성불암재성불악(成佛庵在成佛岳)’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원진의『탐라지』제주목 정의현「불우조」에도 동일한 내용이 전해 내려온다. 성불암지는 애월읍 광령리 대각사 법무가 처음 발견하였다. 지금은 열반에 들었지만 법무는 이곳에서 기와편과 도자기편, 초석(礎石) 등을 발견하였다. 암·수 기와는 어골문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암자에서 이용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샘물 성불샘이(成佛泉)는 지금도 솟아나고 있다. 옛날에는 이 근처에 샘물이 없었기 때문에, 성불암 스님들은 물론 인근 지역 사람들까지 와서 물을 떠가곤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탐라지』「산천조(山川條)」에도 ‘성불악재현북십오리현성부근유차악유천(成佛岳在縣北十五里顯城附近惟此岳有泉)’이라 하여 정의현 부근에서는 오로지 성불오름에서만 물이 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수량이 많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서 정의현 사람들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데, 그 내용은 같은 책에 ‘개로천재현동삼리원출한라산동경장악한좌악포성동남류하이리유심성중무천거인개취흡우차천급성불천령착상하이정(介路川在縣東三里源出漢拏山東經獐岳閑坐岳抱城東南流下二里有深城中無泉居人皆取汲于此川及成佛泉令鑿上下二井)’이라 기록되어 있다.
개로천은 정의현 동쪽 600m 지점에 있는데, 한라산 동쪽에서 출원하여 장악과 한좌악을 거쳐 포성 동남으로 흐르다가 400m 되는 곳에서 깊은 못을 이룬다. 그러나 정의현 성중에는 샘이 없다. 주민들은 개로천과 성불천 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지금은 우물 두 개를 만들었다’라는 기록에서도 증명된다. 용출량(湧出量)도 풍부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졸졸 흐르는 정도이다.
성불오름의 성불암에 대해 김상헌의『남사록』에는 ‘수어사후제조정지위단이제여불청도행로상망천불봉일명행도동속칭영곡제봉괴석초발여중불굥수봉명이처일면설산(須於寺後除滌淨地爲壇以祭余佛廳途行路上望千佛峰一名行道洞俗稱靈谷諸峰怪石哨拔如衆佛供手峰名以處一面雪山)’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제주도편람』에도 ‘표선면 성불구(成佛邱)에 재(在)하니 금폐(今廢)’라고 되어 있다.
현재 성불오름 중턱 성불샘 위쪽에는 서북 방향으로 여러 기의 무덤이 있는데, 이 일대가 성불암지일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유물이나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아 성불암은 12세기경에 창건된 후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성불오름 중턱의 성불샘은 잘 보존이 되어 있으나, 성불암지는 우거진 잡목과 무덤들이 들어서 자료 조사에 어려움이 많다.
(출전 : 고영철의 역사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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