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불교신문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한국불교태고종 동명리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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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신문 특별기획“제주 절오백”- 한국불교태고종 동명리 황룡사
  • 안종국 기자
  • 승인 2021.03.31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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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과 수난의 역사를 함께 해온 유서 깊은 황룡사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황룡사의 대웅전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황룡사의 대웅전과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탑.

 

한국불교태고종 황룡사(黃龍寺)는 명월진성 북문근처 한림읍 동명리 2046번지에 위치한다. 
한림읍의 중앙에 위치하며 명월물이 솟아나는 중산간 마을인 동명리. 비양도를 거점으로 쳐들어오는 왜구들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해 쌓은 명월성지를 남쪽에 두고 마을 한가운데로 옹포천이 흐르고 있는 평온한 마을에 자리한 것이다.

황룡사 대웅전의 불보살
황룡사 대웅전의 불보살

 

황룡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3월 7일 ‘논새물’에 초가 법당과 객실을 겸한 30평 건물을 짓고 광룡사(光龍寺)라 칭한 것이 시초다. 이때 창건주는 백양사의 금륜 스님으로 알려진다. 금륜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지낸 백양사의 만암 종헌(蔓庵宗憲, 1876~1957) 스님의 권유로 제주에 들어와 애월읍 고내리의 백양사 고내봉포교당 주지를 지냈다. 이후 근처인 수산봉으로 가서 원천사를 중창하는 등 불사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말기에 정국이 어수선해지면서 원천사에서의 불사가 어려워지자 한림읍 상대리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한림읍 상대리 945번지에 법당을 신축하며 사찰을 건립했다. 이것이 황룡사의 전신인 광룡사이다. 이때 신도회장인 현주선 거사가 많은 노력을 했다. 

해수관음보살이 뭇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듯.
해수관음보살이 뭇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듯.

 

광룡사는 창건 이듬해인 1946년 3월 21일, 기와법당 14평을 건축하고 그해 11월 11일 봉불식을 거행했다. 다음해 1947년 2월 29일에는 객실 2동과 법당을 증축하며 상대리와 인근 지역 신도들의 중심도량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4.3사건이 발발하면서 1948년 11월 29일 광룡사는 토벌대에 의해 해안지역인 동명리로 소개되었다. 이때 사찰은 토벌대가 모두 부셔버렸다. 당시 이 지역은 무장대가 거점으로 장악하고 있었고, 토벌대의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자행되었다. 그 결과 상대리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고, 광룡사 역시 허허벌판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토벌대는 광룡사 법당을 뜯어내고 요사의 초가지붕까지 걷어내며 사찰 건물을 모두 허물어 버렸다. 금륜 스님도 그해에 입적했다. 그러자 상좌인 법종 혜종 두 스님이 불상과 탱화를 모시고 월계사(현 금강사)로 가서 월동하였다. 

약사보살을 모신 단을 2014년에 조성했다.
약사보살을 모신 단을 2014년에 조성했다.

 

창건 당시 광룡사에는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세지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여러 탱화도 갖춰져 있었으나, 지금은 관음보살상만 초기의 유물로 남아 있다. 이 관음보살은 전남 목포 정혜원(定慧院)에서 이운해 온 것이다. 처음엔 수산봉의 원천사에 모셔져 있다가 광룡사로 옮겼다. 그러나 4.3사건으로 광룡사가 파옥되자 지금의 금강사인 월계사(月溪寺)로 다시 옮겨졌다가 현재는 제주시 충혼각에 봉안되어 있다. 
1949년에 양대덕화 임선 보살이 전북부안에서 스님과 사별하고 제주에 들어왔다. 양보살은 법종 . 혜종 스님과 같이 수원리에 김시찬씨 댁을 빌어 월계사에서 불상 탱화를 가져와 봉안하고 광룡사 재건을 추진하였다. 이때 당시 주지는 혜종 스님과 법종 스님이었으며, 1952년 음력 3월 동명리 204번지에서 법당을 재건하여 9월에 상량하고 1953년 정월에 기와법당을 완공하여 봉불식을 거행했다. 

명월물은 사찰 뿐만 아니라 명월성 주민들의 생명수였다.
명월물은 사찰 뿐만 아니라 명월성 주민들의 생명수였다.

 

고난의 세월을 보낸 광룡사는 점차 정국이 안정되자 사세확장의 필요성을 느끼고 1958년 11월 현재의 위치인 한림읍 동명리 2046번지로 이전 확장하였다. 
1962년부터 영종 스님이 주지로 임명되어 1963년에는 현재의 대웅전을 준공하였고, 사명도 황룡사로 개명하였다. 1966년에는 후불탱을 비롯하여 신중탱, 지장탱, 칠성탱, 오여래탱을 봉안하였다. 1988년 3월 27일에는 해수관음상을 봉안하고 1995년 법당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2014년(불기 2558)에는 약사여래상과 단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석가여래 진신사리 25과를 모시고 보탑을 건립했다.  
황룡사가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문수동에 문수암자 터라 불리는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4·3 당시 불상과 탱화를 모시고 월동했던 월계사(月溪寺)는 <신증동국여지승람><탐라지> 등의 기록과 출토된 부도(浮屠) 개석(蓋石) 등에 의하면 고려 때에 창건되어 조선 초기에 폐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도 하다.
황룡사 앞에는 명월물이 흐르고 도량 내에는 사시사철 생수가 용출한다. 여름에는 시원함을 더해 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단물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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